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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지 유 Dec 14. 2022

참호 일기

2022. 12. 04.

악의 문학에 꽂히는 중이다. 선한 것들은 꼴 보기 싫다.

어니스트 베커가 시한부 선고를 받고, 죽음 직전에 쓴 <죽음의 부정>을 읽고 있는 중이다.


서문을 간단히 추려보면 그의 철학은 네 가닥의 끈으로 엮은 매듭이라 할 수 있다.  


첫 번째 가닥은 세상이 끔찍하다는 것.

우리가 살아가는 창조 세계의 유기체가 벌이는 일상적 활동에 대해 베커는 이렇게 말한다.

“온갖 종류의 이빨로 물어뜯고, 식물의 줄기와 동물의 살과 뼈를 어금니로 짓이기며 기뻐하고, 육질을 게걸스럽게 식도로 내려보낸다. 먹이의 정수를 자신의 체제에 통합하면 악취와 가스를 내뿜으며 잔여물을 배설하는.....”


두 번째 가닥은 인간 행동의 기본적 동기는 자신의 기본적 불안을 다스리고 죽음의 공포를 부정하려는 생물학적 욕구다.

인간이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죽을 운명인 세상에서 결국 무력하고 버려진 신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공포의 근원이다. 무에서 생겨나 이름, 자의식, 깊은 내적 감정, 삶과 자기표현에 대한 고통스러운 내적 열망을 가지는 것. 이 모든 것을 가지고도 죽어야 한다는 것.’


세 번째 가닥, 죽음의 공포가 어찌나 압도적인지 우리는 이 공포를 무의식에 묻어두려 한다.


네 번째 가닥, 악을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우리의 영웅 기획은 더 많은 악을 세상에 불러들이는 역설적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갈등은 나의 신과 너의 신이 대적하는 생사의 투쟁이다..... 최고를 향한 욕망이 최악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저자는 서문을 “당분간 글쓰기를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소비할 수 없을 만큼 글이 과잉 생산되고 있으니까요. 이미 세상에는 진실이 어찌나 많은지요!”라고 말한 오토 랑크의 문장으로 포문을 연다.

서문부터 마음에 든다.   


아직 인간이 인지하지 못한 진실 가운데 대표적 하나를 꼽으라면 죽음을 꼽겠다.

모두 죽음을 무의식에 묻어둔 채 외면하며 살기 때문이다.  

하지만 죽음이야말로 더 나은 삶을 위해 반드시 직시하고 고찰해야 할 대상이 아니겠는가?

죽음이 없다면 삶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


때론 흐릿해야 직시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얼마 전 꾸었던 꿈이 다시 떠올랐다.

삶이란 단지 꿈에 불과하다고 하면 지금 내 삶은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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