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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Mar 15. 2023

19. 부동심(不動心)

- 흔들리지 않은 마음

일과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 대충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어 돌이켜보면, 하루종일  무언가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해결하고, 사이사이에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용서하기도 하며 혹은 화해하기도 하며, 또한 일어나는 욕구를 채우기 위해 무언가를 먹고 마시고 즐기며 하루를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삶에 파묻혀 살았을 뿐, 매일매일의 반복되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생각, 매일 일어나는 감정, 매일 채워야 하는 욕구들. 늘 살아가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이렇게 늘 비슷한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도 삶을 대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동안에, 내면 깊숙한 곳에서 알 수 없는 막연한 두려움과 어두운 우울함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인간의 의식은 그 깊이를 알기 힘들다. 내가 나인 이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 자신도 모르면서 세상을 안다고 생각하고, 자기 스스로를 안다고 착각하고, 다른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욕망인 나’에 기초한 삶에 충실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현재 ‘나’라고 인식하는 의식의 깊은 곳에는 나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나’가 존재한다. 

그렇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나’가 존재하는 영역에서, 많은 생각과 판단이 이루어진다. 이렇게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영역’에 숨어있는 욕망에 근거해서,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데, 이것이 중생심인 것이다. 이 영역은 내가 나로 인식하는 현재의식의 영역보다 수만 배 이상 큰 잠재의식의 영역인 것이다. 이렇게 잠재의식의 영역에 존재하는 중생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생각은 현재의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경우도 많다.      


우리의 마음은 바닷속에 흐르는 해류와 같다. 겉에서 보기엔 별 변화가 없는 것 같은데, 바다 밑에는 수많은 해류가 흐르고 있다. 서로 작용하고 반응하며 흐르고 섞이며 움직인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은 늘 흐르고 섞이며 멈추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흘러가는 마음의 바다에 나를 그대로 두면, 내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렇듯 어디로 흘러갈지 모르는 잠재의식의 어느 지점에 마음 하나를 심어 놓아야 한다. 이렇게 심어 놓은 마음이 부동심이다.     


우리의 마음은 늘 흔들린다. 작은 자극엔 작게, 큰 자극엔 크게 흔들린다. 흔들린다고 계속 흔들려서는 안 된다. 유연한 마음을 가지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오히려 유연하기 때문에 마음에 중심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중심이 흔들리게 되고, 그 중심이 흔들리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을 잃어버린다. 바다 밑 해류 속에 자신을 던져놓는 것과 같은 것이다. 흔들리는 마음은 중심을 잃은 마음이고, 유연한 마음은 중심을 둔 채 변화하는 마음이다. 경계에 부딪혀서 중생심이 일어나면 사람의 마음은 갈대처럼 변한다. 애초에 먹은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중생심에만 머물게 되는데, 이때 필요한 것이 부동심이다. 사람들은 보통 본능적인 욕구와 사회적인 욕망이 일어나면, 그 욕구와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감각에 의한 고통과 쾌락, 감정에 의한 좋음과 싫음, 생각에 의한 옳고 그름에 쉽게 빠져든다. 이렇게 욕망에 빠져든 마음은 이미 물들어버린 마음이다. 이렇게 물든 마음은 필연적으로 시기와 질투에 빠지게 만들고, 시기와 질투를 넘어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잘못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이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중생심에 사로잡혀 헤매게 되는 것이다. 부동심은 흔들리지 않는 마음과 더불어 돌아올 수 있는 기점이기도 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경계에 부딪혀 중생심에 잠식당하더라도 부동심이라는 중심점을 통해 극복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심은 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움직이지 않는 마음이란 외부의 자극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말한다. 온갖 경계에 부딪혀 중생심이 일어나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변하지 않는 마음이란 감각이, 감정이, 생각이, 욕망이 나를 침범했을 때, 감각이나 감정, 생각, 그리고 욕망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중심점을 의미한다. 이 중심점이 현재의식과 잠재의식을 관통해서 일관되게 움직이지 않는 마음을 부동심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중심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깨달음으로 가는 수행의 시작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들은 불 속에서도 물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갖기를 발원한다. 결국 부동심은 마음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시작인 동시에 과정이면서 목표가 된다. 

그래서 부동심이 없는 마음챙김이나 명상, 수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마음챙김을 하는 과정에서 마음은 항상 대상에 물들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렇게 물드는 과정을 눈치채기는 쉽지 않다. 이미 대상에 물들어 버린 마음인 줄 모르고, 마음챙김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여 자신은 마음공부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아주 많다. 마음을 챙긴다고 하면서 마음이 경계에 물든 것을 모른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챙김이라고 할 수 없다. 자신은 마음을 챙긴다고 하지만 이미 물들어버린 상태인 것이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흔들리지 않는 지점을 만들고, 그 지점을 기점으로 마음이 대상에 물들더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부동심을 어느 정도 얻고 나면, 일상에서 부딪치는 사소한 마찰에서 자유로워진다.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에 의해 쓸데없는 감각과 감정과 생각에 일어나지 않는다. 외부의 자극을 자극으로만 알아차릴 뿐 그 자극으로 발생하는 감정이나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 근거가 된다.

또한 부동심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작은 깨달음들을 얻을 수 있다. 이런 작은 깨달음들과 부동심은 다음에 익힐 자비심의 기초가 된다. 마음공부가 어느 정도 익고 흔들림이 어느 정도 멈췄을 때, 마음을 세상에 펼치면서 자비심을 익혀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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