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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들과 바람 May 01. 2019

선덜랜드를 위한 기도

   넷플릭스의 다큐 <죽어도 선덜랜드(Sunderland 'til I die)>를 보았습니다. 미리 약속된 영광을 향해서 가는 그런 낭만적인 이야기가 아니었고 분투와 땀, 좌절과 열정, 그리고 깊은 애정으로 채워진 다큐였습니다. 축구, 특히나 영국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권해드리고 싶은 시리즈입니다.


   보기에 따라서 저에 대해 그렇게 안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승부욕이 그래도 조금 강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일단 무엇인가를 하면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하는 것보다는 우선 제대로 할 것들을 하면서 재미를 찾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그저 웃기 위해 대충대충 하는 것은 그리 잘 참지 못해 불타오르곤 합니다. 대개 스포츠가 승부인 경우가 많기에 결국 승패가 갈리곤 하는데, 그래도 다행히 뒤끝이 긴 편은 아니라 끝나면 내용과 결과를 곧잘 잊습니다.


   응원하는 팀들도 어쩌다 보니 잘 이기고 역사가 깊은 팀들입니다. 이따금씩 보는 야구에서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는 것 빼고는 그래도 우승 경쟁을 벌일 수 있는 팀을 좋아합니다. 대회 후반부에 만약 순위가 결정되어 더 이상 목표로 두고 싸울 근거가 없는 경기는 거의 챙겨보지 않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2위로 확정되었을 때도, 한화 이글스의 가을 야구 탈락이 확정되었을 때도 그 시즌의 마지막 경기들은 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보니 그리 좋은 팬은 아니라고 느껴지기도 하는군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는 Big 6라고 불리는 팀들이 있습니다. 이 구단들은 역사가 깊거나 구단의 재정이 거대하여 공격적인 투자들로 리그의 대권을 노리는 팀들입니다. 아주 가끔 거짓말처럼 보다 작은 구단이 우승을 하기도 하지만 이는 대단히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에 동화(fairy tale)라는 표현을 자주 합니다.


   영국 축구의 대단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점은 우승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팀들도, 어쩌면 패배가 일상인 팀들도 정말 많은 서포터들이 경기장을 찾아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응원한다는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다른 다큐 중에는 Torquay United라는 영국의 하부 리그 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작품이 있습니다(글을 기준으로 현재 6부 리그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인상적인 장면은 다큐가 시작할 때 클럽의 오래된 서포터인 노인이 등장해 하는 말입니다. "토키 유나이티드가 이기리라 생각하면서 경기장에 오는 사람은 멍청이라고 생각해요.(Anybody who goes to a football match expecting Torquay to win is an idiot, I think.)" 물론 그들이 그렇다고 클럽의 모든 실패를 다 품어주는 것은 아니고 지옥의 파수꾼처럼 무서운 얼굴로 불같이 화를 많이 내기도 합니다만, 더 중요한 것은 어쨌든 그들이 경기장에 찾아오거나 펍에 함께 모인다는 사실입니다. 정신 건강을 위해 아예 경기를 보지 않았다면 화를 내지도 않았겠지요. 지독한 사랑, 이라고 해야 할까요?


   프리미어 리그의 역사가 긴 많은 클럽들은 지역의 노동자 계급(working class)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리버풀, 선덜랜드 등이 모두 그 예입니다. 맨유의 United라는 이름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고된 나날들 속에서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동네의 축구 클럽을 응원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활력을 갖게 하는 것 중 하나였고 축구는 자연스레 그들의 삶에, 공동체에, 문화에 오랜 습관 같은 분리될 수 없는 무엇으로 스며들어 갔을 것입니다.


   작중에는 오늘날의 축구계에 대해 "모든 것이 돈에 달렸다.(It's all about money.)"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실제로 선수 한 명으로 인해 2천억 원이 넘는 돈이 오가는 게 최근의 축구판입니다. 축구 클럽들은 마치 다국적 기업처럼 세계 각지의 사람들을 자신의 고객으로 만들고자 경쟁하고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가나의 어린 소년, 남미의 젊은 여성 같은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서포터가 된 것에는 그 영향이 분명 있을 것입니다. 가끔 이와 같은 축구의 세계화가 영국 축구계의 양극화를 심화시켜 그 생태계를 망가뜨리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선덜랜드처럼 도시의 산업기반이 무너져 그 지역 클럽의 성취가 사람들의 경제적, 문화적 활력과 직결되어 있을 때 그 우려는 배가 되곤 합니다.


   다큐를 보고 난 이후 선덜랜드 축구팀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 집니다. 그들 역시 빨간 유니폼을 입어서만은 아닙니다. 죽어서도 클럽의 서포터인 그와 같은 사람들의 환희와 꿈과 눈물과 사랑이 결국 축구일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 이미지 출처 :

https://medium.com/@benerdelyi/is-sunderland-til-i-die-a-smart-marketing-move-46b9fb653427

https://www.whatahowler.com/sunderland-til-i-die-re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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