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날들과 바람 May 29. 2019

무의미의 축제

   Casey Martin이라는 미국의 한 골프선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건강상 순환계에 문제를 가지고 있어 홀과 홀 사이를 걷는 것이 어려웠는데, 때문에 그는 PGA 대회 예선에서 카트를 타고 이동할 수 있도록 대회 측에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나 PGA Tour 측이 이를 거부하자 그는 이와 같은 처사가 미국 장애인법(Americans with Disability Act of 1990)에 어긋난다며 그들에게 소송을 제기했고 이 사건은 연방 대법원에까지 올라갑니다. 대법원은 7 대 2의 숫자로 Martin 측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사건의 주된 쟁점 중 하나는 카트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골프라는 경기의 "본질적"인 측면을 바꾸냐의 여부였습니다.


   사건 자체도 흥미로운 것이지만 나에게 훨씬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반대의견을 낸 두 명의 법관 중 하나인 Antonin Scalia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는 Martin 측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그 근거로 조금 다른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 일부를 발췌하여 옮기면 이렇습니다.


   "하지만 오로지 유희(amusement) 외에는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 것이 바로 경기(game)의 본질이기에 (이것이 경기와 생산적 활동[productive activity]을 구분하는 기준이다) 그것의 자의적인 규정 중 어느 것도 '본질적'이라 말하기 어렵다."


   작은 골프공을 잔디 위의 구멍에 넣는 행위가 누군가의 실재적이고 생존적 필요를 충족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고 애초에 스포츠의 규칙이라는 것들이 게임 그 자체를 위해 인위적으로 약속된 것들이니, Scalia 대법관이 그것을 단순히 유희적인 활동으로 바라보고 그 규정을 자의적이라 냉소한 데 납득이 되기도 합니다. "생산적 활동"과 달리 스포츠는 놀이 이상의 것이 될 수 없다는 그의 단언은 생각보다 쉽게 부정되기 어려운 것으로만 다가옵니다.(선수들에겐 죄송)


   돌이켜보면, 예술의 사정도 비슷합니다. 음악을 들으며 병이 나았고, 미술을 보며 허기가 채워졌으며, 문학을 읽으며 재물이 생겼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 대신 예술은 나약합니다. 음악은 듣지 않으면 그만이고, 그림은 물만 닿아도 망가지며, 문학은 그저 침묵합니다.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떤 경건함마저 느껴지는 악성(樂聖) 베토벤 역시 생활의 문제를 위해 그가 작곡한 소나타의 가격을 직접 흥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현실은 피할 수도 타협할 수도 없고 결국 마주해야만 하는 끈질긴 빚쟁이처럼 자신을 관철합니다. 그 앞에서 예술은 무용하며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이 하는 모든 활동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가 헤아려보면 예술보다 달리 더 적합한 것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것이 가진 바로 그 무용성과 나약함 때문에 예술은 다른 생명체들의 활동들과 구분되어 오로지 인간만이 행하는 가장 인간스러운 몸짓이 되기 때문입니다.


물감을 입으로 불어 벽에 맞닿은 손의 흔적을 남긴 고대 벽화

   최초의 예술로 여겨지는 동굴 벽화는 길게는 6만 년 전의 시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직 현생 인류가 나타나기도 전에 그들은 동굴의 벽에 무엇인가를 남기려 했습니다. 그들이 왜 그림을 남겼는지, 그들이 무엇을 나타내고자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쩌면 맹수가 살지도 모를 어둡고 위험한 동굴에 기어이 직접 들어가 무엇인가를 꼭 표현해야만 했을, 그들이 가졌을 어떤 강한 이끌림은 여전히 그림을 통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술이라는 것의 작은 개념조차 탄생하지 않았을 먼 옛날에 남긴 이 흔적들에 우리는 아직도 본능적으로 어떤 힘을 감각할 수 있습니다.


Bob Landry, 1942-08

   Life 잡지에서 활동한 사진가 중 Bob Landry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전쟁과 관련한 사진으로 유명한 그는 1942년 영국군이 이집트에 주둔해 있을 때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생명과 인간성이 먼지만큼이나 가벼이 흩어지던 전장에서의 어느 날 밤, 영국 목사 한 명은 부대원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습니다. 부대원들은 그 선율에 자신들의 민속노래를 얹혀 어둔 밤을 노래했습니다. 그다음 날, 부대는 또 다른 공격에 휩쓸리게 되었다 사진가는 기록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예술은 무력합니다. 벽화를 그리고 난 뒤 동굴을 빠져나오려던 원시인들은 집으로 돌아오던 맹수를 만나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전장 한복판에서 노래를 찾았던 이들은 그다음 날 전멸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림은 풍요를 약속해주지 못했을 것이고, 노래는 날아오는 포탄을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그림을 그리고, 연주해야 했습니다. 그 순간 그들이 나누었을 체험을 우리가 구체적으로 실감할 순 없지만 그들이 남긴 것들은 오늘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무언가를 생각하게만 만듭니다. 인간의 조건과 관련한 이 질문은 당장 정답을 요하는 것도, 우리의 나날의 삶에 커다란 보탬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무언가 놓을 수 없는 것일 것만 같습니다.


   정말, 우리가 가진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이미지 출처 : The Festival of Insignificance & A Journey to the Oldest Cave Paintings in the World & During an Outdoor Church Service an English Chaplain Plays Violin for British 8th Army ]

매거진의 이전글 창조의 원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