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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n 09. 2024

사람이 설렘이다

  퇴직 전에 같이 근무를 하던 직장 후배들과 회사 근처에서 점심 식사를 했다. 자리를 옮겨 카페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나가면서 그중 한 명이 인사를 한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아, 네… 잘 지내시죠?”. 얼떨결에 대답을 하였으나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한참을 멍해 있었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인사를 한 젊은이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루 이틀이 지나도 궁금함이 지워지지 않았다. 식사를 같이 한 후배에게 전화를 하여 그때 인사를 하며 나간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직장 직원들이었다고 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인사를 했던 직원은 퇴직 전 직장에 있을 때 신규로 임용되어 잠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었던 직원이었다.


  퇴직을 하면 바뀌는 것이 많지만 그중 하나는 나를 찾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할 때는 내가 굳이 누구를 찾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전화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자고 연락도 한다. 퇴직을 하면서 내가 전화를 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으면 사람을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처음 몇 개월은 적응이 되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연락을 하여 미리 약속을 잡는 방향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퇴직 2년 차가 지나면서 이 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며칠 전 교육청에 일을 보러 갔는데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었다. 카톡 프로필 사진으로 알게 되었다면서 책을 출간한 사실이며, 독서 동아리 리더스클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반갑게 대해줬다. 바쁜 일정에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헤어진 것이 못내 아쉬워 며칠이 지나 식사를 청했다. 직장에 대한 이야기, 퇴직 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짧지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물론 퇴직한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퇴직을 하고 가장 유용하고 소중한 시간은 점심때이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저녁 시간보다 점심시간이 제격이다. 식사도 여유 있게 하고 자리를 옮겨 차도 한잔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게 바로 퇴직자의 특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직장에 다닐 때는 시간에 쫓기어 밥 만 대충 때우고 다시 회사에 들어오다 보니 대화는 물론이고 눈 한번 제대로 맞추지 못할 때가 많았다. 식사를 청한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도 듣고 싶었을 텐데 그에 대한 배려를 하지 못해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었다.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고 했는데, 직장생활을 할 때는 사람과의 만남을 너무 형식적이고 쉽게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나 뒤돌아 보게 된다.

  

  퇴직 후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학교 동창생을 만나게 전부였다. 직장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서 더 넓은 세상에서 보다 많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연령대도 10대에서 60대까지 넓어졌고, 직업군도 학생, 주부, 직장인, 퇴직자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퇴직 후 인생나눔교실에서 2년간 멘토로 활동했다. 초등학교 2학년 생부터 6학년 생, 대안학교 중 · 고등학생들을 만나 15~18주씩 멘토링을 진행했다. 매주 만남을 통해 아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면서 힘들어하는 부분을 함께 이겨내며 조금씩 성장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했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함께 하는 것 외에 특별히 해 준 것도 없는데 서서히 마음을 열고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한 멘티기관에서는 아이들이 꼭 한번 더 해달라고 하여 2년 연속 멘토링을 한 행운도 누렸다.


  출간 덕분에 글쓰기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첫해는 특강 형식으로 2-4회 정도 강의를 하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기도 전에 끝나는 아쉬움이 많았다. 올해는 김제시립도서관 아카데미 15주 과정과 전주시립도서관 시민독서학교 20주 과정에 강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수강기간이 길다 보니 문우들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좋다. 글쓰기를 진행하다 보면 글을 쓰는 스타일도 다양하다. 처음부터 거칠 것 없이 쓰는 분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야기를 선뜻 드러내지 못해 주저하며 쓰지 못하는 분도 있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을까 두려워 망설이는 분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심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는 문우들을 보며 강의를 하는 이유가 더 명확해지고 한다.


  올해는 대학생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직장생활을 하며 힘들게 취득한 학위 덕분에 대학교 강의를 하게 되었다. 첫 만남은 어색하다 못해 썰렁할 정도였다. 수업시간에도 물어보는 외에 별 말이 없고 반응도 거의 없었다. 내 아들들을 생각해 보면 너무도 당연한 상황이라 이해는 되면서도 적응은 잘 되지 않았다. 한 주 한 주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질문도 하고 일상도 나누며 서로를 알게 되었다. 15주 한 학기가 끝나간다. 함께 한 학생들도 한 뼘 성장한 모습으로 변했음을 느끼고 있다.


  퇴직을 하여 메이지 않는 몸이 되면서 주민자치 활동에 관심이 생겼다. 주민참여예산위원으로 전주시 예산의 편성과 집행에 참여하고, 주민자치위원으로 주민자치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큰 역할도 아니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민으로서 행정이 어떻게 운영되고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보람이 있다. 자치활동을 하면서 주민들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게 애쓰고 있는 많은 위원들을 만나고 있다. 봉급도 대가도 없이 그저 지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시간을 쪼개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더디지만 조금씩 정착하고 있는 지방자치시대를 멋진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다.


  아내는 너무 많은 일을 한다면서 말리고 있다. 가끔 생각해 보면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퇴직 후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일단 도전하고 시작한다. 가다 아니면 그만 두면 된다. 가보지도 않고 포기하면 영원히 미련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해보면 그만둘지 계속할지 알게 되어 매듭이 지어진다. 아직도 이리저리 좌충우돌 중이다. 무엇을 할지 어떤 삶을 살아갈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한 가지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세상이 발전을 하여 우주여행을 떠나고 인공지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고 해도 부족한 게 있다. 사람과 소통하고 사람과 정을 나누고 사람으로부터 위로받고 싶은 마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하다. 결국 사람이다.


  인사를 건넸던 후배 직원에게 전화를 하여 점심 약속을 잡아야겠다. 퇴직한 선배를 보고 인사를 건넬 줄 아는 그런 따뜻한 사람이 보고 싶다. 사람과의 만남을 통해 퇴직이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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