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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재영 Jul 31. 2023

동굴을 찾아서


아무도 없다. 텅 빈 30평 공간이 나를 반긴다. 환기 잘된 쾌적한 공기가 가득하고, 조금 귀에 거슬리면서도 시대를 따라간다는 안도감을 주는 빠른 비트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양 벽면이 전면 유리인 확 트인 뷰가 눈을 사로잡는다. 항상 앉던 자리에 앉아 가방을 열고 노트북과 필기도구를 꺼내면 진한 커피 향이 카페 안에 스며든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막 볶은 최고의 커피를 입에 머금고 눈을 감는다. 나만의 공간이 좋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글 쓰는 장소를 찾아다녔다. 한 번 앉으면 한 편의 글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편안하고 자유로운 공간의 집이 있는데 무슨 공간이 필요하냐고 할 수 있다. 아내도 그랬다. 집에서 글을 쓸 때면 말도 걸지 않고 방해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해 주겠다고 했다. 몇 차례 시도를 해보았다. 생각은 여기저기 날아다녀 집중이 되지 않고 진득하게 앉아 있지 못하고 자리를 뜬 곤 했다. 한참을 매달려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노트북과 필기도구를 들고 집을 뛰쳐나왔다. 도서관에도 가보고 사무실도 가봤다. 마음먹은 대로 글이 써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헤매다 우연히 들른 삼천 천변에 있는 카페에서 단숨에 한 편의 글을 썼다. 1년 넘게 주말이면 항상 그곳에 있었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으면 삼천천을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그곳에서 첫 출간 책이 나왔다.


제주로 전보가 되면서 새로운 공간이 필요했다. 제주도 토종 프랜차이즈인 에이바우트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의 스타벅스를 꿈꾸며 창업을 해서 프랜차이즈화 했다고 한다. 1막을 마무리하며 2막을 준비하기에 딱 좋은 곳이었다. 숙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에이바우트 카페가 있었다. 출근을 하면서 잠시 들러 따스한 제주의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퇴근을 하여 딱히 일정이 없을 때도 이곳을 찾았다. 주말이면 제주의 곳곳을 헤집고 다니면서 찍은 사진으로 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작업도 하고, 휴일 아침 느지막이 샌드위치로 브런치를 즐기던 곳도 이곳이었다. 에이바우트는 체인점도 많고 체인점마다 인테리어와 구조가 다양해서 탐방을 하며 사진에 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행복한 제주 생활의 추억이 한 땀 한 땀 엮여 있는 곳이다.


새로운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지금의 세 번째 공간에 자리를 잡았다. 벌써 1년 넘게 애용하고 있다. 차로 10분 거리여서 출퇴근하는 느낌이 있어 좋다. 업무를 처리하고, 기획서를 작성하고, 일지를 제출하고, 밀린 일정도 정리한다. 회사에 가기도 좋고 시내로 진출하기도 좋으며 주차도 편리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직원 분들이 친절하고 커피 맛도 좋다. 완벽한 장소가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손님이 적으면 왠지 마음이 안 좋다. 여러 매체에서는 카페에 자리 잡고 진상을 부리는 카공들에 대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물론 문제가 되는 것처럼 하루 종일 있는 것도 아니고, 콘센트를 몇 개씩 꽂아 전기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여러 좌석을 차지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가게 되면 2-3시간은 있게 되고, 노트북을 위해 전원도 사용하게 되고, 간혹 일인석이 없으면 두석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인정해야만 한다.


한 달 전부터 새로운 공간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카페가 좋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러워지고 있어 새로운 공간이 필요해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필요할 것을 대비하여 미리 사무실을 구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사무실은 월세나 관리비를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아직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다. 시립도서관들이 최근 리모델링이 되어 카페 이상으로 공간이 예쁘고 기능적으로도 개선이 되었다. 도서관에 가면 카페처럼 진상으로 보일까 봐 위축되는 부담은 없다. 냉난방의 환경도 최상이고, 전원 사용도 편리하고, 입출입이 자유스럽다. 단점이라면 이용객이 많아 일찍 가지 않으면 좌석 잡기가 어렵고, 도서관의 특성상 노트북 사용이나 전화 통화가 어렵고, 사람과의 미팅도 어렵다. 그럼에도 도서관은 매우 다양한 세대의 많은 시민이 찾는 곳이다. 특히 연세가 많은 남성분들이 많이 이용하고 있다. 공부를 하기도 하고, 신문을 보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하고, 쉬기도 한다. 점심시간이 되면 나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오는 사람들도 많다. 연세가 많은 남성분들이 도서관을 애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나를 돌아보게 하는 모습들이다.


나의 집은 모악산 등산로 초입이 있는 시내 외곽에 있다. 산책을 하기 위해 산기슭 오솔길을 걷다 보면 움막이나 컨테이너를 종종 만난다. 대부분 퇴직을 하였을 정도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성들이 밭일을 하며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8년 전 이곳에 이사를 들어왔을 때만 해도 별로 없었는데 요즘에는 여기저기 많이 보인다. 이 분들은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퇴직을 하여 시간은 많은데 할 일은 없어지고 갈 곳도 만날 사람도 점점 한계가 있다 보니 자신에게 맞는 생활 패턴을 찾은 것이다. 각자 자신들만의 동굴을 가꾸며 그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분들의 모습에 나의 미래가 오버랩되었다. 나만의 공간을 찾아 헤매기보다 조금 일찍 나만의 동굴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여기저기 떠돌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도 없고, 자유롭고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곳, 생각만 해도 설렌다. 아침부터 마음이 바쁘다. 동굴은 어느 곳에 자리 잡을지, 동굴은 어떤 모양으로 만들지, 대지를 구해 컨테이너를 가져다 둘까, 우리 집 넓은 마당에 만들까,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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