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껍질의 붉고 푸른 문의는
몇千年을 혼자서 용솟음 치든
바다의 바다의 소망이라.
가지가 찢어지게 열리는 꽃은
날마닥 여기와서 소근거리든
바람의 바람의 소망이리라.
이 검붉은 懲役의 땅우에
洪水와 같이 몰려오는 혁명은
오랜 하늘의 소망이리라.
「革命」
서정주는 일제 말기에 등단한 신인 시절 사회파 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첫 시집 출간 기념행사에 임화가 참여하기도 했고 해방 직후에도 함께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서정주는 조선문학가동맹이 주최한 조선문학자대회의 이틀째(1946년 2월 9일)에 출석하기도 했다.[조선문학가동맹중앙집행위원회서기국, 『건설기의 조선문학』, 백양당, 1946.6.28., 217쪽.] 그리고 『해방기념시집』(중앙문화협회, 1945.12.12)에 대한 대타의식으로 출간된 조선문학가동맹의 전략적인 출판물인 『삼일기념시집』(1946년 3.1.)에 시 「혁명」을 수록했다.
『해방기념시집』이 범문단적인 인사를 망라한 것에 비해 『삼일기념시집』은 문학가동맹의 회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문학가동맹에 발표한 서정주의 「革命」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여기에는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다.
서정주는 자신의 초기 시들 중에서 「부활」을 해방기의 현재적 시점에 다시 생각해 보고 있다는 산문을 발표한다. 「일종의 자작시 해설-부활에 대하여」에서 서정주는 『주역』의 ‘雲行雨施운행우시’에 대한 관심을 서술하고 있다. ‘雲行雨施’는 『주역』의 건괘에 대한 해석인 「단전彖傳」의 일부이다. 1927년에 풍우란(馮友蘭)은 「단전彖傳」을 비롯한 「역전」이 자연주의 철학에 속한다고 지적하였고, 이를 받아 이경지는 “건곤 두 괘에 대한 단전의 이해는 노자에게서 왔을 뿐만 아니라, 노자의 사상을 통해서 단전을 봐야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에 나오는 용어들은 대개 장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름이 덮이고 비가 내린다(雲行雨施)”는 구절은 『장자』「천도」에 “해와 달이 비추고 네 계절이 운행되는 것이 마치 밤낮의 운행에 법칙이 있고 구름이 덮이고 비가 내리는 것과 같다”고 나온다.”[진고응, 『주역 유가의 사상인가 도가의 사상인가』, 최진석, 김갑수, 이석명 옮김, 예문서원, 1996, 12~15쪽, 32쪽.]고 하고 있다.
“「雲行雨施」라는 말이 주역엔가 어덴가 있습니다. 물론 이 말은 내가 부활을 쓸 무렵에 얻어드른 문자는 아니지만, 요즘 나는 이 말이 보통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죽어서 썩어서 蒸發해서 날라가면 구름이 될 것 아니겠습니까. 혼은 유물론자들의 말과같이 없는 것인지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구름은 많이 모이면 비가 되어서 이땅위에 내릴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려 운행우시........”[서정주, 「일종의 자작시 해설-부활에 대하여」, 『상아탑』, 1946.5.)]
운행우시라는 『주역』의 상상력에 ‘유물론자’를 그 외연으로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서정주의 운행우시의 상상력은 동양 사상에 대한 해방기의 ‘사회주의적 절충론’으로부터 활력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기 서정주의 사회적 궤적을 고려할 때 「혁명」은 운행우시의 상상력의 급진적인 판본으로 해석된다.
「혁명」은 1연에서 파도의 소망이 조개의 무늬를 낳았고, 2연에서 바람의 소망이 꽃을 피게 했듯이, 3연에서 하늘의 소망이 혁명을 일어나게 했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 구름은 많이 모이면 비가 되어서 이땅위에 내릴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려 운행우시……”라는 시적 사유 속에서 ‘혁명’은 바다의 소망, 바람의 소망, 하늘의 소망이라는 자연법칙 혹은 저절로 일어나는 그저 오고야 말 사실이 된다.
미래를 현재의 사실로 느낄 수 있는「혁명」의 시상은 한국전쟁 이후 서정주의 신라정신과도 맥이 닿는다. 서정주는 신라인의 미륵 신앙이 미래를 온전히 현재로 느낄 수 있는 ‘실감력’에서 기인하는 것이라고 파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