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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공간 Aug 16. 2019

시도를 공부하는 즐거움

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Ep.8










때마침 제주도에는 플리마켓 붐이 일었다.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플리마켓은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핸드메이드 작품을 판매하는 형태의 마켓이었지만, 현지인들은 농산물 마켓도 많이 찾았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사람들이 직접 판매한다는 점에서 파머스 마켓과도 비슷했다.


몇몇 플리마켓에 셀러로 참가하겠다고 신청했는데 그중 지꺼진장에서 연락이 왔다. '지꺼지다'라는 말은 제주어로 '기분이 좋다'라는 뜻이다. 즉, 즐거운 장터라는 뜻이다. 다음 주 금요일에 나오라는 문자 역시 ‘지꺼진’ 일이었다. 앞으로 매주 한 번씩 나의 음식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겨울이라서 따뜻한 느낌을 주는 메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제주도와 어울리는 메뉴여야 했다. 제주도에서 겨울에 많이 나는 브로콜리를 이용해 추운 겨울날 마음까지 녹여주는 음식이라는 콘셉트로 수프를 만들었다. 식사가 될만한 요리를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순대볶음을 만들기로 했다. 제주도는 돼지고기가 맛있기로 유명한 만큼 당연히 족발이나 순대처럼 부속 요리도 정말 맛있다. 서구적인 수프와 한국적인 순대볶음이라니!! 다들 낯설어했지만 나는 둘의 조화가 잘 맞을 것 같았다.






목요일 밤이 되었다. 첫 셀러로 참여하는 행사라니! 얼마나 설레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팔았는지는 기억조차 나질 않았다. 그저 고객들의 표정 하나하나만이 기억에 남는다. 고객의 반응을 살피는 것에 가장 주력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맛있더라도 고객이 원치 않으면 소용없지 않은가! 다행히도 제주에서는 매콤한 순대볶음을 보기 힘들다 보니 다들 좋아했다. 브로콜리 수프는 추운 겨울에 제격이었다. 나의 의도가 잘 맞아떨어졌다. 성공!


물론 모든 사람이 나의 음식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럴 때면 해결책을 찾아내야 했다.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에게는 순대볶음의 향과 맛을 느끼도록 한 점 건네기도 했다. 같은 음식을 팔아도 매주 반응이 달랐다. 일찍 완판이 되어 끝나기도 하고 가져간 음식을 그대로 챙겨 와야 하는 날이 있기도 했다. 매진이 되든 손님이 없든 장사가 끝나는 날이면 복기를 통해 그날의 특징과 문제점 등을 노트에 기록해 놓았다.


완판 한 날이면 친구들과 축배를 들었다. 손님이 없는 날에는 친구들과 순대볶음 파티를 열었다. 이러나저러나 지꺼진장이 열리는 금요일 밤은 파티의 연속이었다. 시작부터 끝까지 ‘지꺼진’ 나날들이었다! 사람과 장사 모든 것이 나의 자산이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새로운 플리마켓이 열렸다. 바로 메밀밭이 가득한 ‘보롬왓’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이었다. 새로운 메뉴가 필요했다. 넓은 평야에 눈꽃처럼 흩뿌려진 메밀꽃을 보면서 마들렌이 생각났다. 커피 한 모금에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물면 잃어버린 시간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플리마켓에서 판매할 마들렌은 메밀 마들렌으로 변화를 주었다.


메밀밭 안에 판매 부스를 만들면서 테이블 위를 메밀꽃으로 가득 채웠다. 테이블조차 메밀밭처럼 보였다. 오븐을 메밀꽃이 펼쳐진 곳에 설치해두고 자리를 잡았다. 마들렌은 12분 간격으로 구워져 나왔다. 갓 구워진 메밀 마들렌의 향이 퍼져나가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다가왔다. 메밀꽃을 넣은 포장지에 메밀 마들렌을 담아주면 받는 사람이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하얀 메밀꽃 사이를 산책하면서 음료를 들고 다니기도 좋았다. 구매 고객이 끊이질 않았다. 음식은 향, 맛, 온도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대성공!


실패를 통해 배우기도 했다. 음식을 판매한 수익을 기부하는 자선행사였는데, 기부금이 모이면 청소년 공부방을 연다고 했다. 대학 내에서 진행된 행사라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핫도그. 함께 제공할 음료수에 변화를 주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당근주스를 준비했다. 당근이 출하되던 시기이기도 했고, 핫도그는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많으니 건강한 주스를 준비해서 이를 보완하려고 했던 것이다.


음식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구좌의 대표작물 생당근을 착즙 해서 당근 본연의 달콤한 맛을 놓치지 않았고, 핫도그는 두툼한 소시지를 사용해서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아뿔싸! 음식의 맛이 전혀 어우러지지 않았다. 음식을 준비할 때에는 페어링, 즉 음식궁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급하게 탄산음료를 준비해 대체했다.






이런 일도 있었다. 청소년 책방을 열기 위한 자선행사였는데, 3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그렇게 많은 인원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 있는 메뉴를 준비했다. 바로 샌드위치, 브로콜리 수프, 당근주스였다. 그런데 음식을 많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재료를 사람 수에 비례해서 구매하면 되는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이 펼쳐졌다.


30만 원어치의 당근을 착즙기 1대로 진행하기 위해서는 쉬지 않고 해도 24시간이 필요했다. 착즙기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르바이트를 급하게 고용해 한 편에서는 착즙을 하고 한 편에서는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거짓말처럼 천장에서 하수가 터졌다. 행사를 망쳤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벽 6시까지 작업해서 마무리를 했다.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음식을 나열하는 것 역시도 몇 배의 시간이 들었다. 관객들은 입장하기 시작했지만 내 테이블의 세팅은 끝날 기미가 없었다. 30인분이 팔렸다. 자선행사에서 수익을 내긴커녕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음식을 기부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모두 기부했다.


그래도 즐거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작은 성공과 실패가 모여 지금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성공을 통해 요리의 즐거움을 더했고, 실패를 통해 누군가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것을 결코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내 안에서 잔잔하게 음식에 대한 철학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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