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Ep. 0
매일이 스스로에게 놀라는 하루하루다.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하는 것도, 공간을 찾아본다고 제주시에서 서귀포까지 왕복하는 시간도, 요리책을 주문하고 기다리는 설렘도, 도착한 책을 읽다가 잠이 드는 순간도, 하나같이 소중하다. 나를 알던 사람이 지금 이 순간의 내 모습을 본다면 얼마나 낯설까?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다.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켰는데 감자를 묘기처럼 깎는 아저씨가 나왔다. 감자를 깎는 모습이 왜 그렇게도 신기했을까? 정신없이 빠져들어서 봤다. 그 프로그램은 ‘성공시대’라는 제목의 자수성가 한 사람들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방송이었다. 그날의 주인공은 ‘박효남’이라는 명장이었는데, 어릴 때 사고로 손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명실공히 양식요리의 대가로 성장한 분이다.
막연히 요리를 전공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은 아마 그 때가 시작이 아닐까. 활활 타오르는 불 위에서 큰 팬을 휘두르며 음식을 조리하고 접시 위에 예쁘게 플레이팅한 후 손님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멀리서 팔짱을 끼고 흐뭇하게 바라보는 커다란 모자를 쓴 나의 미래를 생각하며.
조리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생각보다도 더 심했다. 워낙 학교공부에도 뜻이 없었고, 학교생활은 별 재미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이 응원해주실 줄 알았다. 어쩌면 부모님은 쉽게 흥미를 잃고 빨리 포기하는 내 성격을 나보다 더 잘 아셨던 것 같다. 요리가 힘든 일이라는 것 역시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에게 권하고 싶지 않으셨겠지만. 하지만 물론 자식을 이길 수는 없으셨다.
다른 사람들이 야간자율학습을 할 때 요리학원을 다녔다. 하지만 요리는 생각보다도 더 어려웠다. 쉴 새 없이 움직이고 끊임없이 다쳤다. 밴드는 필수품이었고 손은 점점 더 거칠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리는 쉽게 늘지 않았다. 한식조리사자격증은 무려 7번이나 떨어졌다. 8번만에 붙었으니 7전8기라는 말의 산증인인 셈이다.
오기가 생겼다. 힘들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에서 요리를 전공하게 되었다. 꿈을 이룬 것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는 기분도 좋았다. 뭔가 큰 세상에 나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줄 알았다. 졸업 후 구직사이트에 기계처럼 이력서를 넣고 하염없이 연락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일이 생기기 전 까지는.
어쩌다보니 첫 직장은 요리와 상관없는 곳이었다. 어쩌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회사에 다니면서 안정된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문득문득 아쉬웠다. 일상의 편안함이 주는 즐거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왔다. 과감하게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떠났다. 아니 어디라도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다녀오면 뭔가 정리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캐나다 어학연수가 전국 여행으로, 제주도 생활로 이어질 줄 알았을까. 그 때 과감하게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이 아름다운 섬에서 매일 매일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며 요리에 대한 열정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고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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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그 동안 내 인생에 이렇게 열정적인 순간이 있었던가? <현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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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목차
ep. 3화 길이 하나라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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