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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n 11. 2020

이러려고 운동한 건 아닙니다만

근육도 체지방도 없던 나무젓가락의 PT 1년 회고

작년 이맘때 내 몸무게는 163cm에 47kg.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이었다.


숫자로는 그런데, 굳이 따지자면 그렇게 마른 것도 아니긴 했다. 평생을 콤플렉스였던 하체에는 여전히 셀룰라이트도 많다. 상체는 44-55를 입으면서도 하체는 꼭 한참을 큰 사이즈를 사거나, 인터넷 쇼핑을 할 때에는 같은 옷을 사이즈 다르게 두 벌 사서 안 맞는 것을 돌려보내기도 부지기수였다. 그렇지만 대충 보기에 여하튼 나는 누가 봐도 마른 체형이었다.


운동을 안 한 몸은 아니었다. 달리기를 좋아해서 꽤 오랜 시간 달리기를 했고(대학교 때부터니까 아마도 최소 6년 정도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탔으니 거의 25년 정도 자전거를 탔고, 수영도 좋아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는 것, 평생 운동이라고는 유산소 운동만 했다는 뜻이다.


그러다 갑자기 근력 운동을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작년 여름의 일이다.


운동을 그렇게 하는데도 체력을 소모만 하지 더 좋아지지 않는 느낌을 더 이상 받고 싶지 않았고, 마른 편인데도 수영복을 입거나 하면 마음에 안 드는 여기저기가 근육으로 채워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유산소 운동으로 향상할 수 있는 지구력도 중요하지만 오래가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작년 기준 서른 하나였던 내가, 점점 여기저기 골골댄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앞으로 더 많은 곳이 조금씩 고장 날 텐데, 그걸 버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근육이 필요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던 찰나에 출퇴근 길에 오며 가며 지나치던 헬스장에서 나눠주는 전단지를 보고, 별생각 없이 근육이나 좀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에 덜컥 등록했다.

젓가락 시절의 나. 근육도 체지방도 없었다...


엉겁결에 시작한 인생 첫 PT  


이렇게 많이 먹어요?


아마 여성들이라면 그런 강박에 많이 시달려봤을 것이다. 많이 먹으면 살찔 것 같고, 살찌면 안 될 것 같은 강박. 꽤나 마른 체형이었고 그런 걸 생각하는 것치곤 먹는 걸 너무 즐거워했던 나도 그런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는 조금 살이 쪘다 싶으면 며칠 덜 먹으면 다시 빠졌으니까, 중요한 일이 있거나 하면 며칠 덜 먹거나 하는 식으로 이상한 짓거리를 했다. (물론 이제는 그게 굉장히 문제였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사실 먹는 양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처음 쟀던 인바디에 근육량, 체지방량이 모두 미달이었던 걸 생각하면 많이 먹지도 않았다는 걸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몸에 필요한 영양소가 균형 잡힌 식단이 아니었고, 입이 원하는 걸 먹었다. 또 맛있는 걸 좋아하고 맛없는 걸 싫어하니 잘한다는 집들 다니면서 잘도 먹고 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었던 절대량이 절대 많지 않았다.


그렇게 PT를 시작하고 처음, PT쌤이 내게 건넨 건 절대 못 지킬 것 같은, 게다가 '많이' 먹어야 하는, 당시 내 식사량으로는 절대 소화하기 힘든 식단이었다. 약속이 없으면 저녁을 거르는 게 일상이었고, 점심은 거의 식사 미팅이 대부분인 내가 점심도 먹고, 점심과 저녁 사이에 마시는 '식사'를 먹고, 저녁도 먹으라고요?


처음으로 피티쌤에게 받은 식단


이제와 고백하면 솔직히 점심 저녁 사이에 간식은 못 먹었다. (위가 그 정도 용량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작하면 대충은 안 하는 성격에, 스스로 변하려고 시작한 일인데 기존 습관을 그대로 가져갈 수는 없다 싶어 완벽히는 아니어도 구성 자체를 따르려고는 애를 많이 썼다. PT 쌤이 왜 저렇게 식단을 짜줬는지 이해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저 구성은 내게 '163cm, 47~8kg, 근육량 미달 체지방 미달 체중 미달'인 이승아가 먹어야 하는 식단의 '스탠다드'가 됐기 때문이다.



이해 안 되면 안 하는 나와 잘 맞았던 퍼스널 트레이너


여하튼 그렇게 초장에 '많이 먹으라'고 주문하는 피티쌤을 만나서 운동을 시작했다. 평소에 달리기, 자전거 같은 운동을 많이 했던지라 체형에 비해 하체 근육량은 좀 있어서 하체 운동은 초반부터 꽤 잘했지만, 힘이 1도 없던 상체는 정말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힘이 1도 없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여하튼 짱 세졌다.


같은 피티쌤과 1년 가까이 운동을 해올 수 있었던 건 쌤의 스타일이 나와 잘 맞았다는 게 굉장히 컸다. 이런 트레이너분이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너무나 운 좋게, 내가 피티를 시작하던 시점쯤 그 센터에 새로 온 쌤과 하게 된 것이 여기까지 왔다.


나는 일단 머리로 이해가 안 되면 뭘 안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이전에도 간혹 헬스장에 다니면서(피티는 받은 적 없지만) 다른 회원 분들이 피티 받는 모습을 보면 설명 없이 숫자만 세어주거나, 말 그대로 '조지다시피' 운동시키는 트레이너 분들을 많이 봐서, 나는 그런 분들과는 안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람에 따라 이런 운동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내가 피티를 받는 목적은
어느 정도 '근력 운동을 배우는' 데에 있었다.


어떤 운동을 할 때 어떤 근육을 쓰고,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어떤 부분을 발달시킬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여건이 되어 피티를 오래 받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비용이 비용인 만큼 혼자서도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그것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배우고 싶었다. 그런 나에게 숫자로 조지는 스타일의 트레이닝은 맞을 리가 없었다.


너무 다행히도 피티쌤은 내게 뭔가 '해야 한다'고 말할 때 해부학적으로도, 영양학적으로도 그 이유를 먼저 설명해주는 사람이었다. 식단을 지키는 게 좋다고 말했을 때도 '왜' 그래야 하는지, 혹시나 과식이나 과음을 했을 때는 또 '어떻게' 해야 하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이 운동을 할 때 각도는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나는 또 가르쳐 주면 말을 잘 듣는 사람이라서 그것들을 잘 숙지하고 따라갔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나도 모르게 몸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1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과정 중이지만, 이렇게 달라졌다. 여전히 부끄러운 수치지만, 근찔이에겐 꽤나 험난한 여정이었다. (2편에 계속)


인바디 변화. 골격근량은 증가하고 체지방량은 처음으로 돌아왔다.
눈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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