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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아 Jun 19. 2020

몸은 배신하지 않는다

내가 스스로에게 거짓말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44일을 앞두고 바디프로필 준비를 시작했다. 사실 운동은 계속 해왔던 지라 달라지는 건 유산소 양을 좀 늘리는 것, 그리고 주 3일에서 주 4일로 PT 수업을 한 번 늘리고, 내가 혼자 해야하지만 혼자 하지 않았던(^^) 어깨와 팔 운동(작은 덤벨을 이용한)을 선생님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사실 나의 피티쌤은 1년 동안 나와 운동하면서 내게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준 적이 없다. 지켜보며 내가 엄청나게 무너지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좀 드셨으면 2일 안에 큰 근육 쓰는 운동 좀 더 하고(주로 하체), 유산소 좀 타고, 클린한 음식 먹고 그러면 돼요. 살 안 쪄요" 하면서 오히려 쉬러 가거나 여행을 갈 때는 신경 쓰지 말고 많이 먹으라고도 숱하게 말 했다.


그러나. 스튜디오 예약을 하자마자 많은 것이 달라졌다. 시작하자마자 고구마와 계란, 닭가슴살, 견과류를 중심으로 새로 식단을 내밀었다. "술 정말 한 모금도 안 돼요?"라고 거의 열 번을 묻는 내게 "그냥 참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이것도 안 돼요? 저것도 안 돼요?" 하면서 답정너 짓을 하는 내게 "횐님 답을 다 알고 계시잖아요... 왜 자꾸...." 하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상태로 식단 조절에 들어갔다.

 

하지만 말이 식단 조절이고, 말이 코로나 핑계지. 내가 준비를 시작한 5월 초부터는 슬슬, 코로나 핑계로 못 만나던 사람들의 약속이 재개되던 시점이었다. 나 또한 미리 계획하지 않고 급하게 시작한 일이기에 4월에 잡아둔 5월의 약속들은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사람도 만나고 싶고 식단은 해야겠는 마음 때문에 더욱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어찌저찌 사람은 만나고 식단은 클린하게, 닭/고구마/야채가 아니어도 먹을 수 있는 음식(회 등...)을 먹는다고 치자.


술은?
아니 회를 먹는데 술을 어떻게 안 먹어요?


숙성회를 먹으며 탄산수를 마셨다... 젠장


촬영을 앞둔 시점으로부터 2-3주는 오히려 익숙해져서 편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작하자마자 한 2주는 정말 지옥같았다. 같은 밥상머리에 앉아서 내가 닭과 고구마를 먹는동안 일반식을 먹으며 미안해하고, 혼자 맥주 캔을 따며 미안해하는 최측근을 보는 것도 속상했다. 같이 맛있는 걸 먹으면서 그 음식에 맞는 술을 마시고, 소소하게 수다를 떠는 게 꽤나 기쁨이었는데 내가 뭔갈 하겠다고 우리의 즐거움을 당분간 미뤄야 하네, 하니까 속상하고 더 미안했다.


그래도 하게 된다, 의지를 돈으로 산다면


그냥 대놓고 말했다. 협조를 구했다. “바디프로필 촬영이 있어서 메뉴에 제한이 있으니 혹시 나와 맛있는 걸 먹고 싶거나 꼭 나에게 뭘 먹이고 싶다면 약속을 미루셔도 좋다. 하지만 같이 있으면서 다른 걸 드셔도 되고 내가 못 먹어도 되니 보는 것도 좋다.”


다행히 주변에서는 많이 이해해주었다. 그 덕분에 점심은 주로 육회 비빔밥이나 산나물 비빔밥, 저녁은 주로 회 혹은 육회 같은 메뉴로 가끔의 일정을 소화하며 순차적 식단에 들어갔다. 이 메뉴들로 조금 여유를 뒀던 게 사실 큰 힘이 됐다. 나름의 치팅이었다. 이렇게 목표가 없는, 그저 살을 빼는 다이어트를 한다면 그 치팅의 의미는 고칼로리 폭탄 혹은 몸에 안 좋을 게 뻔하지만 맛있는 정크푸드겠지만, 목표가 있는 식단 조절에서의 치팅은 그 의미가 달랐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사실 주변에서 같이 밥 먹을 때 다른 음식을 먹으며 내게 더 미안해해서 내가 더 미안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이 정도면 아예 칼 식단을 할 수 없는 직장인으로서 나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움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게 나의 일이고, 나는 그 일을 하면서 또 다른 목표를 이뤄보겠다고 고행을 자처한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 해야 했고, 그런 제약이 있음에도 해내야 한다는 게 나에겐 핸디캡이면서 또 하나의 목표가 된 셈이다.


술을 꾹 꾹 참아내면서 정말 ‘의지를 돈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절절히 깨달았다. 탄산수가 큰 힘이 됐다. 회를 먹으면서도 소주잔에 탄산수를 따라먹거나 혹은 다른 사람들이 맥주를 마실 때 탄산수로 함께 하거나. 거의 3주의 시간은 탄산수를 마시면서 버텼던 것 같다.


의지만 돈으로 산 게 아니라 시간도 사실 돈으로 샀다. 운동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이 내도 하루에 3시간으로 제한적이고, 식단도 주어진 식사 시간에 맞춰야 하는데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게 베스트인 걸 알지만 그게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수요가 있는 시장엔 언제나 공급이 있게 마련. 나는 챙겨 먹어야 하는 식단을 모두 '당일 주문' 해 먹는 조금 비싼 방법을 썼다.


나는 고구마와 닭가슴살 혹은 계란 흰자가 중심인 식단으로 바디프로필은 준비했다. 점심에는 닭가슴살이 포함된 샐러드로 먹을 때도 있었다. (야채를 안 먹는 분들도 계시지만, 나는 야채를 계속 먹기는 했다.) 그럼 최소한 하루에 두 번은 고구마를 사먹어야 하고, 닭가슴살이나 계란을 사먹어야 하고, 샐러드를 먹어야 한다.


냉동 닭가슴살을 사서 익혀먹고, 고구마를 박스로 사서 쪄먹는 게 베스트인 걸 알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나는 돈을 쓰기를 택했다. 편의점 군고구마, 진공포장된 실온 보관 고구마 등 요즘 편의점에서 많이 파는 간편식 고구마를 이용했고, 구운 계란이나 훈제란 또한 편의점에서 구매했다.


이런식으로 주문하거나 편의점의 도움을 받아 바디프로필 준비 식단을 진행했다.


B마트 등을 이용해서 냉동 닭가슴살을 사서 데워 먹기도 했고, 점심은 주로 배달의 민족이나 쿠팡이츠 앱 등을 이용해서 샐러드를 주문해 먹거나 정말 바디프로필용 도시락으로 만들었나 싶은 다이어트 도시락(고구마, 샐러드, 닭가슴살, 삶은 계란 등이 들어있다)을 주문해 먹기도 했다. 식비는 더 많이 들지만 도시락을 쌀 수 없는 상황의 직장인도 (물론 좀 아쉽지만) 식단을 챙길 수는 있다는 걸 깨달았다.


몸은 배신할 리 없다, 내가 스스로 거짓말하지만 않는다면


작년 이맘 때, PT를 시작했을 때 내 몸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몸무게는 47~48kg를 왔다갔다 했다. 벌크업(이라고 부르고 살크업이라고 읽는) 기간 동안 몸무게는 53kg 까지 올랐지만(근육, 체지방 모두 증가) 옷 사이즈에 변화는 전혀 없었다. 2월부터 주5회 운동을 시작하면서는 몸무게가 51kg 선에서 꾸준하게 유지 됐다.


바디프로필 준비를 시작하면서 PT쌤이 촬영 전까지 48kg까지 날려보자고 했다. 가능할 거라고도 했다. 내가 꽤 오랜 시간 유지한 몸무게인데도, 근육량도 늘어났고 해서 설마 그렇게 날아갈까 싶었다. 촬영 때 복근을 보자고도 했다. 음... 복근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또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바디프로필 처럼 선명한 복근이 과연 생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촬영 2주 전까지도 몸무게는 51kg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복근은 서서히 선명해졌다. 따로 복근 운동을 많이 하지 않았는데도 식단을 꾸준히 관리하고, 유산소를 타면서 체지방을 날리니까 복근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몸의 쉐입이 몸무게보다 늘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PT 쌤 또한 인바디는 오차 범위가 많으니 눈바디를 더 믿으라는 주의여서 숫자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쌤이 48kg를 말한 데는 이유가 있을텐데 싶어 조금씩 초조해지는 마음을 붙잡고 그냥 하던대로 계속 운동했다.


정말 신기한 일은 촬영(17일 수요일)을 앞둔 주말, 계속 51kg였던 몸무게가 순간 뚝, 49.7kg로 떨어진 것이다. 그때부터는 일사천리였다. 결국 나는 48.4kg의 숫자를 보고 촬영에 들어갈 수 있었다. '복근 보고 가자'고 했던 말도 그대로 이뤄졌다. 복근은 날마다 선명해졌고, 전날 탄수화물 로딩과 당일 단수 이후 더 드라이해지며 기대했던 11자도 아닌 내천자 복근을 만날 수 있었다.


특별히 더 한 것도 덜 한 것도 없이, 그냥 먹어야 할 것들을 먹고, 해야 할 운동을 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도 몸은 그 시간 동안 변하고 있었다.

그러자 깨달았다.
아,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면
몸은 배신하지 않는구나


단, 내가 스스로에게 거짓말 하지 않을 때의 이야기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오늘은 걸러도 괜찮겠지 하며 스스로에게 변명꺼리를 만들거나, 스스로는 알면서 거짓말하지 않는 이상, 몸은 충실하게 응답한다. 2주를 매끼 고구마와 닭가슴살만 먹고, 매일 아침 웨이트 트레이닝 1시간과 유산소 운동 1시간, 그리고 퇴근 후 유산소 1시간을 하는데 몸이 변하지 않을 리가 없지 않나. 이건 그래도 먹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운동을 쉬어도 괜찮겠지, 하지만 않는다면 몸은 응답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또 하나, 체중이 적게 나가는 몸이 건강한 게 아니라 건강해지면 자신에게 맞는 체중이 된다는, 아마 예전 언젠가 <다이어터>였나? 어떤 웹툰에서 본 대사를 뼈저리게 공감했다. 사실 48kg까지 떨어진 내 몸은 건강한 몸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51~52kg를 왔다갔다하면서 운동 퍼포먼스가 좋아질 때가 가장 내가 건강한 상태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촬영이 끝나고 나서도 크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50~52kg를 유지하며 해야 할 운동들을 꾸준히 하는 게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숫자는 숫자일 뿐이니 다이어트 하는 지인들이 있으면 숫자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졌다.


*하지만 물론 시간은 걸리게 마련이다. 사람마다 빠르게 변하는 사람과 느리게 변하는 사람은 분명 있는 것 같고, 나 또한 1년 간 바디프로필 준비가 목적이 아닌 채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해온 상태에서 바짝 준비한 것이라 단기간에 식단을 병행하며 더욱 큰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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