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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Aug 04. 2021

나 퇴사해

그것도 생일날

나 퇴사해!


오랜만에 전하는 나의 이야기가 이런 내용이라 멋쩍었다. 사람들과의 대화가 잠시 조용해질 때쯤, 타이밍을 보고 말했다. 퇴사한다는 소식과 그 이유들을 조심히 꺼냈다. 말이 많은 나지만, 주목받는 것엔 익숙해지지 못해서일까. 되돌아오는 수많은 질문들에 부끄러웠다. 딱히 숨길 것 없는 사실이고 나쁜 짓은 아니지만, 내 선택에 확신이 없어 참 작아졌다. 건강상의 이유로 일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휴직과 퇴사의 갈림길에서 내 손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건강 외에도 여러 가지 이유를 고려해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

 퇴사한다는 말에 질문으로 돌아오는 수많은 말들이 참 무거웠다. 아니, 내가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냥 사람들의 걱정이 무거웠고 나를 위한 위로는 오히려 많은 생각이 들게 하곤 했다.


그 중 가장 가볍고, 따뜻하며, 나를 뭉클하게 하는 말들이 있다. 별 거 아닌 나의 퇴사로 이렇게 나는 더 사랑스러운 위로를 얻었다.



ㅊㅋㅊㅋ 고생했어

‘축하해’도 아닌 ‘ㅊㅋㅊㅋ’라서 더 좋았다. 가벼워서 좋았고 수없이 생각한 나의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느껴져서 좋았다. 시도 때도 없이 밀려오는 파도 같은 나의 고민들을 작은 물결처럼 만들어주는 사람들에게 나는 용기를 얻는다. 그런 축하였고 위로였다. 퇴사가 맞을까, 옳은 선택일까, 후회하지는 않을까. 매일같이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던 나에게 가벼운 물결이 일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내가 바보 같았다. 진작 털어놓을걸. 아무것도 아닌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스스로 생각을 굴려 더 큰 덩어리로 만들었고 그 끝에 불을 붙였다. 이런 나에게 ‘ㅊㅋㅊㅋ’와 같은 가벼운 말이 얼마나 깊이 와닿았는지 아무도 모른다. 가벼워서, 가벼우니까 더 깊이 들어올 수 있었다. 가라앉지 않을 수 있었다.



고생했어, 뭐든 새로운 시작은 좋지

퇴사를 결심하고서부터, 아니 퇴사를 고민하면서부터 나에게 그 주제는 ‘끝’과 같았다. 그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은 나를 위해 결정했다며 웃어보다가도 포기한 것도 맞는 말이라며 금방 시무룩해지곤 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나는 왜 처음으로 돌아가려 할까. 이미 늦은 걸지도 모르겠다. 이런 어두운 생각들을 이어오던 나에게 단호한 그 말이 쏟아졌다. ‘뭐든 새로운 시작은 좋지’ 그래, 내가 하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토록 새로운 시작을 원해서 고민했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 빛을 덮어두었다. 들춰볼 생각도 못한 어느 한 부분을 우연한 격려로 다시 마주했다. 시작은 좋다. 나는 좋은 걸 하려고 이 큰 고민을 했나 보다.


만나서 맛있는 거 사줄게 그때까지 잘 지내줄래?

오랜 고민으로 지치고 굳은 몸이 이 말에 녹았던 것 같다. 내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사람의 따뜻한 말은 정말 큰 힘을 가졌더라. 고민을 녹였고 위로를 전했다. 오롯이 내가 받은 그 큰 마음은 길이었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생각하며 지내면 되는지, 지금은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그 모든 정답을 담은 하나의 길이었다.

 ‘잘 지내’가 아닌 ‘잘 지내줄래?’여서 더 따뜻했던 것 같다. 잘 지내는 것, 건강하게 사는 것, 모두 요즘 들어 내 의지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사소한 말 끝이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할 수 있어”


‘응’이라고 말하면 정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잘 지내는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는 의미로 느껴지기도 했다. 여러모로 참 나를 위한 말이었다



풍선 들고 회사 앞에 가있을게

내가 퇴사를 한다는 말에 과연 누가 이렇게 귀엽게 축하할 수 있을까. 진짜 풍선이 있건 없건, 회사 앞에 누가 오든 안 오든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다. 많은 생각과 함께 짐을 싸서 사무실을 나오는 그 순간. 내 앞에 풍선과 함께 나를 위해 웃고 있는 친구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 상상만으로 이미 그날은 나에게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어졌다. 농담이며 호들갑이고 또 우정이자 사랑으로 이루어진 이 말에 나는 웃고 또 웃었다. 풍선을 든 네 모습에 재밌어 웃고, 귀여운 말에 웃고, 내 퇴사를 축하해줘서 고마워 웃었다. 풍선은 없어도 나에게 언제나 웃어주는 친구가 있어 좋다. 다음엔 진짜 풍선도 있는 거지?





내 선택을 존중해주는 여러 사람들 덕에 나의 결정이 옳은 길이라 믿을 수 있었다. 나 스스로도 망설이던 결정을 나의 새로운 시작으로, 확신으로, 최고의 선택으로 만들어주었다. 사실 나에게 온 모든 격려와 응원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나도 진심 없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 적도 있으니까. 인사치레처럼 슬쩍 내뱉은 격려도, 진심을 듬뿍 담은 위로도 모두 내 곁으로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이제 내가 어떻게 그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냐에 따라 그 말들의 의미가 바뀐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으로, 나에 대한 그들의 애정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한 가지 결심했다. 앞으로 누군가에게 위로가 필요한 순간, 나는 진심을 꾹 꾹 눌러 담은 마음을 보내기로.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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