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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긴히 Jan 22. 2021

나는 나를 사랑하는 것 같지 않아서

너는 어떻게 너를 그렇게 사랑하니

 자신을 사랑하라, 아껴주어라. 요즘 내가 보는 책이며 글이며 모든 곳에 이 말이 쓰여있다. 근데 나는 나를 딱히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어디선가 측은해하는 눈빛이 느껴지고 걱정 어린 시선이 다가온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건 불쌍한 일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싫어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상하게 볼 것 없다고, 근데 나도 사실 나를 사랑하고 싶다고.



 지금까지 과도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 그들은 자신의 외모를, 능력을, 상황을, 과거를 칭찬했다. 처음엔 부러웠고, 시간이 지나며 신기했고, 점점 낯설었다. 그들의 자신감, 자부심을 구성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웠다. 별거 아닌 것에도 자신을 칭찬하는 모습이 이상하기도 했다. 나는 나를 칭찬한 적 없었고, 그래서 너희가 신기했나 보다.


 '예쁘다, 잘한다, 대단하다.' 가끔 들려오는 너희의 칭찬에 '아니야'라고 대답하는 나에게, 너희는 겸손하다고 말했다. 내가 겸손한가? 나는 나를 낮추지 않았다. 그저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누구에 비해가 아니라 오로지 나만 놓고 봤을 때, 내 기준에 나는 아직 잘하지 않으니까. 예쁘지 않으니까, 성실하지 않으니까. L은 나에게 너처럼 바쁘게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뒤이어 따라온 그의 부지런하다는 말은 스스로 나태하다고 생각하던 나에게 괜한 죄책감 한 송이를 심어주었다. 내가 볼 때 나는 참 게으른 사람인데, 그런 나에게 누군가 부지런하다고 말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자 곧바로 부지런하게 살지 못한 나에 대한 자책이 자라났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지만,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나의 고래는 여전히 바보이다) 다른 이의 칭찬을 왜 성장의 발판으로 만들지 못했지? 나는 가끔 그때의 나를 참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칭찬을 그저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큰 능력이다. 아직 그걸 갖추지 못했고 이렇게 글을 쓰며 또 한 번 나를 바보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기애'에 대해 이렇게 깊게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살면서 만나온 사람들 중 나에게 자기애의 끝판왕이라고 기억되는 몇몇 사람들. 그들을 통해 나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깨달았다. 세상 모두가 등을 돌려도 자신만은 절대 자신을 꾸짖지 않을 사람들. 어쩌면 가장 큰 응원을 해줄 수 있는 존재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과 같다. 이기적이고 뻔뻔하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세상 누구보다 나 자신에게 엄격한 내가 참 미련하다고 느꼈다.


 나와 같은 꿈을 가진 J 역시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나의 노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노력하고 있고 가끔은 내가 잘 해내지 못할까 봐 겁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J는 달랐다. 결과물이 이상해도, 노력의 성과가 안 보여도, 다른 사람들이 못한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J는 그저 '운이 안 좋네'라며 넘겼다. 처음엔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J가 이해되지 않았다. 겸손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걸 자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스스로를 칭찬으로, 사랑으로 감싸는 J에게 겸손, 자만은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겸손하지 않고 자만하는 모습이라고 여겼던 것은 오히려 나의 열등감이었다. 내가 이만큼 하고도 만족을 못하는데 왜 너는 그 절반에 만족할까. 이미 답을 알기에 궁금하지도 않았다. 만족의 정도는 스스로 정하는 거니까. 그리고 J는, 아니 지금까지 내가 만나온 자기애 끝판왕들은 모두 자신이 노력했다는 사실에 가장 만족했다. 참 멋있더라. 자신의 노력을 자신이 가장 잘 알아주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는 것. 누군가의 칭찬을 고맙다는 말로 받아칠 수 있는 것.


 사실 어려운 것들은 아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를 많이 아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도 바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 나를 칭찬하며 지금까지 느낀 것은 자기애도 타고난다는 것.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아쉬울 때도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자책 없이 '수고했어, 잘했어'라는 말로 나를 다독이는 날까지는.

 나도 자기애가 넘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너는 어떻게 너를 그렇게 사랑하니? 나 좀 알려주라.



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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