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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Jul 03. 2023

능소화 피고 지고

마음 문드러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할머니는 열무김치를 좋아하셨다. 빨갛고 고운 고춧가루가 풀린 김칫국물을 좋아했다는 쪽이 더 맞겠다. 모든 열무김치를 다 좋아하신 건 아니다. 엄마가 담근 열무김치만 ‘유독’ 좋아하셨다. 엄마가 담근 열무김치는 깔끔하고 시원한 맛. 할머니는 사이다보다 좋다며 꿀꺽꿀꺽 국물을 들이켜곤 했다.


싱싱한 열무는 보리밥에 고추장과 참기름만 넣어 비벼 먹기만 해도 든든한 한 끼가 된다. 아삭아삭 씹히는 초록의 식감은 ‘여름의 시작’과 같았다. 초여름 마트에 파란 열무가 나오면 엄마는 바빠지기 시작한다. 카트 가득 열무를 싣고 집으로 실어 나르느라 온 가족이 동원되곤 했다. 그날만큼은 팔짱 끼고 구경하던 아빠도 팔을 걷고 거드셨다.


“뿌리를 다 짤라불믄 맛이 덜 하제. 깨끗허니 칼로 깎아서 이쁘게 끄터리를 잘 남겨바. 잉?”


엄마는 커다란 플라스틱 함지, 일명 다라이에 몇 번이고 헹군 파릇한 열무를 연신 옮겼다, 우리는 큰 칼, 작은 칼을 손에서 손으로 건네며 먹기 좋은 길이로 열무를 자르고, 뿌리 부분에 남은 흙을 긁어내서 십자로 칼집을 내어 먹기 좋게 다듬었다.


소금으로 절이고, 양념을 만들어 이틀 숙성하면 달큰하고 시원한 열무김치가 완성된다. 비빔국수에, 닭죽에, 비빔밥에, 입맛 없는 더운 날도 밥에 물을 말아  열무김치 한줄기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었다. 엄마는 빨간 타파 그릇에 열무김치를 넉넉히 담고 국물을 자작하게 부었다. 가장 먼저 담은 반찬통은 걸어서 10분 거리 할머니 집으로 옮겨졌다.


이혼한 작은 아빠의 육아와 살림을 대신 도맡아 해 주시던 할머니가 작은 아빠의 재혼과 함께 오갈 곳 없어져 버린 게 꼭 10년 전이다. 그래도 큰아들이 할머니를 모셔야 한다는 주변의 성화에 할머니의 서울살이가 시작되었다. 노환으로 거동이 어려웠던 할머니는 큰며느리의 집이 불편하다며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가지런히 이부자리를 개키고, 흰머리 곱게 빗고, 소파에 오도카니 앉아 며느리가 갈아주는 생토마토 주스 한 컵을 공복에 들이키곤 했다. 온종일 며느리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고 아파트 창밖만 내다보시다가도 내가 유치원에 다니던 증손자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면 할머니는 환하게 웃으며 반겼다. 엄마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불편한 시간을 몇 개월 더 보낸 뒤 할머니는 걸어서 10분 거리 방 두 개짜리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엄마도 조금 편해졌으려나 싶었는데 밥과 반찬, 국을 끓여서 냄비째 나르느라 더 바빠졌다. 1년에 치르는 제사만 다섯 번, 수백 번 제사상을 차리고도 고모나 작은 아빠에게 수고했다는 인사치레 한번 받지 못한 엄마는 이미 돌아가신 어른뿐 아니라 살아있는 집안 큰 어른을 모시느라 열 손가락이 곱아갔다. 모든 책임이 아빠에게 있다고, 아빠에게 대든 날에는 엄마 대신 열무김치며, 김치찌개를 날라야 했다. 할머니가 사는 빌라 담장엔 속사정에도 아랑곳없이 능소화가 한창이었다.


7월 전후, 장마가 닥칠 무렵이면 할머니가 사는 빌라 담벼락, 주변 건물의 그림자를 피해 손바닥만 한 볕이 드는 공간에 능소화가 만발했다. 제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도망치듯 떠났던 그 계절, 목포 옛집 담장에도 능소화가 피어있었다. ‘능가할 능凌’에 ‘하늘 소霄’, 능소화의 꽃말은 ‘명예’와 ‘영광’, ‘기다림’과 ‘그리움’이다. 벽을 타고 하늘로 솟구쳐 자라는 꽃이라 누군가는 능소화를 보며 명예와 영광을, 또 다른 이는 골목길 주택 담장을 가득 덮은 채 담 밖으로 주홍색 꽃을 수줍게 떨어트린 모습 때문에 하염없는 기다림을 떠올렸나 보다. 엄마와 함께 보냉 가방에 열무김치를, 또 다른 손에는 정수리에 내리쬐는 햇볕보다 더 뜨거운 국을 들고 나르며 할머니는 무슨 생각으로 이 음식을 드시려나 화가 났다. 홀로 당신이 마주할 쓸쓸한 밥상 따위, 신발도 벗지 않고 문 너머로 쓱 내밀고 뒤돌아서면 그만이었다.

 


올해 여름도 어김없이 능소화가 피었다. 목포 옛집에서 할머니는 담장의 능소화를 가리키며 ‘만지면 눈이 머는 꽃’이라 하셨다.


“마음 문드러지게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 눈이 멀어 불재이.”


계절마다 마주하는 능소화의 주황은 때늦은 후회다. 오래 곁에서 살았지만, 원망스러운 마음이 앞선 나머지 당신 가실 때 살갑게 손 한번 잡아드리지 못했다. 날 붙잡고 “아이고, 내 아들아”라며 울곤 했던 당신은 그 후로도 오래 버거운 내 마음의 짐이었으니까. 이젠 어느 누구와도 당신 이야기를 나누며 추억할 수 없다. 그저 능소화 피는 계절이 오면 미처 문장이 되지 못한 말들과 함께 당신이 좋아하던 열무김치를 떠올릴 뿐이다. 슬픔과 애증, 유년의 추억을 한꺼번에 뭉뚱그려 문장으로 박제해 둔다. 능소화를 바라보던 마음에 이젠 그만, 마침표를 찍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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