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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잍 Aug 11. 2023

해찰하며 글쓰기

글감은 덤.

 온라인 글쓰기 모임 오픈 첫 주, 집에 가는 대로 피드백과 다음 글감을 작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화마을 작은 도서관에서 고등학생들과 글을 쓰는 4회 차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한다. 쨍한 햇볕, 추적추적 비 내리는 풍경, 카페에서 누리는 청량한 에어컨 바람. 여름철 누리고 싶은 풍경들도 내 발걸음을 붙잡진 못한다. 나는 글쓰기 프로그램들을 운영한다. 평균 4~7명의 참여자와 정해진 기간에 온, 오프라인에서 함께 글을 쓴다. 내 역할은 글쓰기를 가르친다기보다 글감을 제공하고 완주하도록 독려하는 것에 가깝다. 사실 글감을 만드는데 거의 모든 공력을 쏟는다. 수강생의 폭넓은 연령만큼이나 참여 동기도 다양하다. 시나 소설, 에세이를 쓰고 싶다거나 혹은 읽고 경청하고 쓰는 능력을 키우고 싶어서, 자신의 일에서 전문성을 기하고 새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 등. 참여자들은 갖가지 모양의 이유를 갖고 모여 오늘치 글을 쓰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바람만큼 늘 원활하게 수업이 진행되는 건 아니다. 고민도 있다. 하나는 참여자 모집의 어려움, 두 번째는 후반으로 갈수록 식어가는 참여 열기다. 대개의 모임이 크고 작은, 엇비슷한 고민을 안고 간다. 다 큰 성인을, 어른을 독려하기란 퍽 힘든 일이다. <중급 한국어>의 주인공 문지혁은 “언제나 써야 하는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p.47)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모임 참여자들은 일과 가정, 저마다 다른 하루 사이클과 생활 방식을 갖는다. 그러니까 내 글쓰기 모임을 거쳐 간 100여 명은 100가지 이상의 참여 동기와 글쓰기 어려운 이유가 있는 셈이다.      


 내가 인플루언서나 유명 저자가 아니라서 모객의 문제는 신의 영역이라 차치하고라도, 들어온 이들을 붙잡아 앉혀야 한다는 마음, 모임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간절함에 '브런치 작가 도전'이라든가, '힐링', '자기 브랜딩', '미션 완주 시 기프티콘 증정', '추가 보강'과 같은 떡밥도 던져보았다. 그때마다 진정한 동기유발이란 ‘부정기적 내적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교육학적 진리를 몸소 체험하곤 했다. 입으로는“두루마리 휴지 풀리듯 글이 술술 풀리지 않더라도, 그날의 시도가 뒤틀려 실패하여 괴로울지라도 다시 1일은 시작되고 기회는 찾아옵니다”라는 상황 달관적 멘트를 자동후렴구처럼 반복 재생하면서.      


“다음 기수는 더 열심히 참여할게요.”,

“지난달이 너무 바빴어요. 이제 정리되었으니 이번 달부터 글쓰기에 매진할 수 있습니다.”

“다시 새롭게 다짐하고 도전해 볼게요.”


이분들, 아실까. 그들의 새로운 다짐과 약속은 진행자의 입장에서도 흩어지는 마음을 다잡는 계기임을. 그렇게 새로운 다짐의 하루들이 무색해질 무렵, 투명 인간이 되는 분들도 많았다. 더 붙잡을 수 없는 천상계로 날아가 버려서 호명할 수도 없는 분들. 그저 마음속으로 짧았던 인연에 안녕을 고하는 수밖에. 물론 오래 글쓰기 모임에 머무르는 분들도 있다. 내 글쓰기 수업의 산증인,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귀한 분들이다. 비루했던 모임 첫 글감부터 졸면서 달았던 너저분한 댓글과 요점 없던 피드백까지 모든 과정을 다 살펴주신 분들. 이들은 좋은 방향을 확인하게 만드는 부표와 같다.      


 새로 참여하는 분들이 많은 달은 설레고, 개강 하루 전까지 텅 비어있는 담당 모임 리스트를 확인하며 좌절하는 게 모임 운영자의 어쩔 수 없는 마음이다. 지나간 인연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말은 어설픈 자기 위로에 가깝다. 시간이 약이라 이런저런 여러 상황을 겪어 초연함의 경지에 들어선 시점, 이제부터 나는 글쓰기 모임을 '덤'의 영역이라 생각하면 어떨지 좀 더 보태려 한다.      


 ‘더하기’, ‘덧셈’, ‘덧버선’처럼 보태어 쌓아 올린다는 의미를 가진 ‘덤’에는 ‘준다’라는 의미도 있다. 노점에서 산 나물거리 위에 나물 한 줌 더 얹어주는 마음. 가는 길에 목마르면 먹으라며 비닐에 방울토마토 몇 알을 더 넣어주는 마음에도 비유할 수 있다. 먹어도 그만, 안 먹어도 그만이라기보다 글쓰기 모임에서는 ‘덤’처럼 늘 새로운 글감이 주어지므로 몇 번 안 써진다고 괴로워 말자는 의미다. 덤은 또 찾아오라고 주는 것, 어려운 걸음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다. 방울토마토 몇 알로 배부르긴 어려워도 배가 더 고파지는 불상사는 막을 수 있다.   

  

 글을 쓰고 싶은 많은 이가 묵직한 글, 곱씹을만한 글을 지향한다. 팩트 위주의 구체적인 글을 쓰고 싶다는 이는 없었다. 매 글쓰기 모임 첫 시간, 인사를 나누며 참여자들은 자신에게 글쓰기가 얼마나 특별한지, 중요한지를 말한다. 그리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겠노라 다짐하곤 했다. 그때마다 차라리 참여자들이 ‘글쓰기’를 진지한 행위라 여기기보다 본업에서 벗어난 영역을 해찰한다고 여겨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간 한눈파는 걸 경계하는 삶을 살아왔더라도 때로는 조금씩 새로운 리듬을 가미해 변주를 주는 시도도 괜찮았다고. 그러니 내 글쓰기 모임에 오는 분만큼은 많이 해찰하셨으면 좋겠다.      


 글 쓰는 사람은 뜨거운 여름에 추운 겨울의 냉기를 상상하면서 견뎌내는 이들. 지구 종말을 앞두고도 타 은하 다른 존재와의 공생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다. 쓸 공간이 생겼다고 해서 쓰기가 잘 되는 건 아니다. 뭔가를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보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들이 주위를 살피는 동안 나는 모임원들의 시작하는 첫 빈칸과 정리해 강조하는 작은따옴표, 결심하는 마침표에 매달린다. 완주하실 수 있을까? 설마, 아닐 거야, 아니겠지. 아닐 거란 걸 알면서도, 나는 글 쓰며 해찰하는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서 기다리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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