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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에디씨 May 21. 2022

증발

쿵 하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남자는 베개 아래에 손을 넣어 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한다.

새벽 5시... 아직 자도 될 시간이라 안심하고 이내 다시 잠에  든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바깥소리에 다시 깼다.

10시... 이제 슬슬 일어나야 하는 시간이다. 반쯤 뜬 눈으로 카카오톡, 인스타그램을 차례로 들어가 본다. 의미 없는 스크롤 뒤, 침대에 반쯤 걸터앉는다. 들이마시는 공기가 상쾌한 느낌이 든다. 푹푹 찌는 한여름이라 아침부터 답답해야 되는 게 보통인데 낯설다.


주방으로 향해 냉장고를 열었다.

텅 빈 페트병 두 개만 덩그러니 놓여있다. '새 거 넣어둔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현관에 있는 6 묶음 3개도 모두  비었다. 바닥으로 물이  흔적도 없다. 비어있는 페트병 뚜껑을  보니 새것을 뜯을 때처럼 타다닥 소리가 나면서 돌아갔다. 다시 냉장고 안에 있는  뚜껑을 확인해보니  개는 따져있었고 나머지 하나는 따지 않은 새것 그대로였다.


남자는 다급한 마음으로 주방 수전을 세게 틀었다. 당연하게도   방울 나오지 않았다. 에이 설마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창문 하나 없는 화장실이 이렇게 뽀송하다니… 거실에 있는 커튼을 걷어내자 사람들이 밖에 모여있었다. 대충  바지를 입고 발가락으로 슬리퍼를 바짝 조이며 계단을 내려갔다.


다들 똑같은 상황이다. 집에 있는 모든 물이 사라졌으며, 심지어 어젯밤에 끓여놓은 김치찌개에도 국물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집으로 들어가 TV를 틀었다. YTN을 틀자 '[속보] 물 증발 사태'이라는 자막과 함께 드론으로 찍은 영상이 나오고 있었다. 바닥을 훤히 드러낸 석촌 호수에는 비단잉어와 알 수 없는 고기들과 이끼가 군데군데 모여 있고, 한강대교 다리 아래는 검은 바닥이 쩍쩍 갈라져있는 모습 앞에서 기자가 심각한 모습으로 한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손 끝이 가리키는 장면은 곧 모자이크로 처리됐고 '한강 바닥서 미상 시신 발견'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채널을 돌리자 '[속보]  세계 모든  사라져'이라는 자막으로  세계 사람들이 제보한 영상이 이어졌다. 아나운서는 태평양, 대서양, 북극해, 인도양...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물이  그대로 증발했다고 전했다.


아나운서는 말을 이어갔다.

"현재까지 들어온 내용을 다시 한번 전해드립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는 새벽 5   없는 원인으로 갑자기 모든 물이 증발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물이 증발했습니다. 국내에 있는 모든 강과 하천을 비롯해 동해, 서해, 남해 있는 모든 물이 한순간에 없어졌습니다.  그대로 증발입니다. 절망적인 이 현실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진데요, 지금 나오는 영상을 보시면 지구에 있는 모든 물이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상황은 실제 상황입니다."


남자는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소파에 앉는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은 테러의 가능성도 배제할  없다고 밝혔는데요, 다른 나라의 상황을 알아보겠습니다. 이린혜 기자,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네, 지금 여러분이 보시고 있는 이곳은 세계에서 가장 깊은 강인 콩고강입니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이 강은 길이 사천 칠백 킬로미터로 나일강 다음으로 긴 강입니다. 깊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하루아침에 바닥을 보이며 말라버린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인근 주민들의 표정은 망연자실 그 자체입니다."


"네 이린혜 기자 감사합니다. 전 세계적인 물 증발 사태, 현 정부의 공식적인 발표는 아직 없는 상태인데요, 과연 이유는 무엇이고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여러 분야의 전문가분들을 모셨습니다. 원인을 분석해보기에 앞서 현재 한반도 정세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전 통일부 차관 서재윤 교수님을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서재윤 전 차관님, 이번 사태로 우리 한반도 주변에는 어떤 기류가 현재 흐르고 있습니까?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남자는 흐르는 땀을 계속 손등으로 훔친 뒤 입고 있는 티셔츠에 닦는다. 이러다간 땀이라도 계속 모아놔야 하나 싶다. 머리를 스치듯 바로 옆에 사는 여자 친구가 생각이 번쩍 든다.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에 저장된 이름을 누르고 문을 박차듯 나간다. 그가 나간 집 안에는 미쳐 끄지 못한 TV 소리가 가득 채웠다.


"  들었습니다. 오늘 자리해주신 서재윤  차관님 감사드립니다. 다음으로는  사태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실 연세대 물리학과 김현호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이번 사태 도대체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이번 사태는  그대로 증발해버린 상황입니다. 하지만 모든 물이 사라진  아닙니다. 공식적으로 사망자 수가 나오지 않았지만, 아직 사람과 동물이 살아있음으로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70%가량이 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만약 모든 물이 사라졌다고 한다면 지구 상에 살아있는 생명체는 없을 겁니다. 지금 바닷물이 없어져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들을 보면 몸에 수분은 그대로 있습니다. 숨을 쉬지 못해 익사한 겁니다. 체내에 물이  빠져나가서가 아니라요. 따라서 이번 상황은 지구의 모든 물이 없어진 것이 아닌, 적어도 생명 유지 활동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은, 다시 말해 생명체 몸속에 있는 물을 제외하곤 나머지는 모두 사라진 그런 상황으로   있습니다."


아나운서가 재차 이번 일에 대한 원인에 대해 물었다. “현대 과학으로 설명이 가능합니까? 이런 유사한 일이나 사건이 예전에도 있었습니까?"


" 옛날, 하늘에서 천둥이  들판에 불이 붙는  보고 당시 사람들은 하늘이 노해서 그렇다고 해석했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현재 우리가 가진 과학 수준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할  없습니다. 다만 우리가 집중해  것은 하필  물이냐는 것이죠. 물은 다른 액체들과 굉장히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해볼게요. 운동회 전날 페트병에 물을 얼려보신 분들은 다 한 번쯤은 겪어보셨을 겁니다. 다음날 보면 페트병이 더 팽창해있죠. 겨울에도 수도관이 왜 터질까요? 물이 얼면서 부피가 커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보통 액체는 고체가 되면서 부피가 감소합니다. 이상하게도 물은 오히려 늘어납니다."


"  깊게 가보죠. 물은 비열이 4.18(joule)입니다. 모래의  성분인 실리콘 산화물의 비열은 0.7 정도가 됩니다.   쉽게 말하면  1그램을 1도씨 올리려면 4.18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고, 모래 1그램을 1도씨 올리려면 0.7 정도의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름철에 뜨거운 햇볕을 받은 모래사장은 뜨거워서 발도 디디기 어렵지만, 물속은 그렇지 않은 거죠. 온도를 내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기에 물로 뒤덮인 지구와 우리는 우주의 급변하는 온도를 견딜  있는 것입니다. 표면장력도 다른 액체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큽니다. 그래서   물은 지구   외계에서 왔다는 설도 있었습니다."


"1986 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루이 프랭크 교수는 물과 얼음으로 구성된 혜성이 끊임없이 지구로 떨어지면서 수증기가 되어 비가 되었고, 그렇게 내린 비가 강과 바다가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이후 프랭크 교수가 주장한 우주 얼음덩어리가 발견되면서 주목받았죠. 물리학과 교수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만,  인류가 수십  동안 진행한 우주 탐사에서  어느  하나도 물이 있는 행성을 발견한 적이 없습니다. 지구에만 물이 있다는 것이 과연 우연일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수십억   '지능' 존재하는 누군가에 어떠한 이유로 지구로 물이 공급이 됐고,  어떠한 이유로 다시 '회수'하게  것이..." “치직치직”


TV 수신 상태가 좋지 않다.


" 교수님, 말씀  들었습니다. 조금 급진적인 이야기이고, 우리가 아직  상황을 이해할만한 단계가 아니기에 주장한 것이라고 받아들이겠습니다. 아직 가설의 단계라고 하셨기 때문에..."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화면은 점점 치직거리며 뭉개졌다.


"잠시만—요, 다른 식으로도   있습.  생명체 안에 있는 물만 남-남겨졌을까요.  물이 기생충 같기도 합니다다—. 물이라는 질을 기생충으로 본다면 숙주 안에 있는 물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죽은 . 사라진 거죠. 우리 인류가  상황을 이해할  시간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물이 없어진 세상에 우리가 얼마나 버틸—있을까요. 이유를 찾기 전에 우리가 당장 살아갈 방법찾아야 . 우리에겐 그리 많은 —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과연  이유를 알기 전에 인류가 멸망하는 것— 막을 수나 있을까."


이내 TV가 꺼지며 텅 빈 집이 고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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