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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연 May 11. 2019

버닝썬과 황색저널리즘, 이대로 괜찮은가



시험 공부를 하고 있던 어느 날, 친구에게 방금 방송한 <스트레이트>를 보았냐는 연락이 왔다. 다음날 있을 시험 준비에 정신이 없었기에 보지 못했다는 답을 전했지만, 이어서 친구가 보낸 답장은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의 것이었다. 기존에 공개되었던 경찰 유착의 정황을 넘어서 가학적인 폭력과 강간, 그리고 더 나아가 살인의 순간을 담아내는 ‘스너프 필름’ 촬영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었다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하던 공부를 중단하고 방송을 찾아보았다.  


지난 4월 22일,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에서는 한 달이 넘게 뜨거운 논란이 되고 있는 버닝썬 사태를 재조명했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다르다. 시청하는 내내 기존의 언론 보도와는 다른 결이 느껴졌다. 이를 휘발성이 큰 ‘가십’으로 사안을 다루지 않고 ‘본질’ 자체에 집중하고 있다는 노력이 느껴졌다. 과연 <스트레이트>는 어떤 방식과 시선으로 이 사태를 읽어 내는가.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다양한 취재원을 통한 사실적 증언 확보





이 날, <스트레이트>가 활용한 취재원들은 크게 셋으로 나눌 수 있었다. 우선 지난해 12월, ‘보배드림’사이트를 통해 버닝썬 폭행 피해 사실을 증언했던 김상교씨, 가출 청소년을 보호하다 강남 클럽의 위험성을 포착하고, 이를 파악하고자 직접 위장취업에 나섰던 주원규 목사, 그리고 아마 방송 직후 가장 큰 여파를 불러일으킨 증언의 대상자, 소각팀이었다. 


소각팀이란 클럽 오피스텔의 범죄 증거를 지우는 전문인력을 이르는 말이다. 이들의 임무는 클럽의 VVIP들이 남긴 마약과 성매매, 성폭행 등의 범죄 흔적과 증거를 인멸하는 것. 그들은 클럽 소유 차량을 이용하고, 시약을 들고 다니며 혈흔 제거 방법까지 전문적으로 배웠다. 철저한 목적성 하에 전문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소각팀과의 인터뷰는 시청자들을 분노에 휩싸이게 하기 충분했다. 뿐만 아니라 폭력의 현장에 의사로 추정되는 인물이 대동되었다는 증언은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직시하기조차 어려울 만큼 잔인한 증언이지만, 한편으론 이 모든 것은 해결을 위해 더더욱 왜곡 없이 마주해야 할 현실이기도 하다. <스트레이트>는 바로 그러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해당 사건의 본질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는 취재원들을 확보하고 취재하며 진정성을 가지고 사건에 접근한다. 


 자료화면의 바람직한 구성


최근 방송사들은 ‘버닝썬 사태’를 포함해 사회적 관심도가 높은 사안을 다룰 시, 본질과 떨어진 보도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예컨대 한 종편 방송사는 가수 정준영의 불법촬영 소식을 ‘피해 여성이 걸그룹 출신’이며, ‘해당 걸그룹이 몇 년도에 데뷔하였는지’ 등 피해자를 특정화 할 수 있는 정보를 중심으로 ‘단독’보도를 내기도 했으며, 피해자로 거론되고 있는 여성들의 이미지를 사실 확인 없이 그대로 실어 방송하기도 했다. 이는 보도 가이드라인을 어기고 있는 것으로 황색저널리즘의 현주소라고도 볼 수 있다.


여성가족부와 한국기자협회, 여성 아동 폭력 피해 중앙지원단이 공동 제작한 <성폭력 사건 보도수첩>에 담긴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의 3항에 따르면 언론은 성폭력 범죄의 범행 수법을 자세하게 묘사하는 것을 지양해야 하고, 특히 피해자를 범죄 피해자가 아닌 '성적행위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는 선정적 묘사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더불어 영상을 활용할 경우, 지나치게 자극적인 자료화면을 넣거나, 범행 내용을 선정적으로 재연하여 영상화 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번 <스트레이트> 방송에서는 등장하는 모든 재연, 인터뷰어가 등장하는 자료화면 등 모든 묘사에서 이를 철저하게 지키며 구성을 바람직하게 하고 있었다고 본다. 





우선 자료화면으로 사용된 카카오톡의 대화 내용을 보자. 눈에 띄는 특이한 점은 자료가 온라인에서 공개되었던 기존의 원본이 아니라는 것이다. <스트레이트>는 음성 대독 방식을 통한 2차 디자인 수정본으로 자료를 제공한다. 저널리스트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원칙 중 하나는 바로 시청자들이 왜곡하지 않도록 분별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사건의 재구성’에서 또한 예외없이 적용되는 원칙 중 하나라고도 볼 수 있다. 당사자가 누구인지 추정하고 확인함으로써 그들이 고통받을 수 있으며, 이가 시청자들을 자극할 수 있는 트리거(Trigger, 사건을 유발한 계기나 도화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했기에 최대한 객관적이고 세심한 주의 하에 재구성하고자 했던 노력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어가 등장하는 화면 또한 바람직했다. 인터뷰어의 응답은 철저한 음성변조와 모자이크의 방식을 통해 구성되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영상대역을 활용한다. 이 또한 전의 맥락과 유사하게 인터뷰어 당사자들을 끝까지 보호하고자 했던 것으로, 기본 원칙을 충실히 지키고자 했던 노력이라고 할 수 있다. 


| 패널들의 뼈 있는 진행방식


무엇보다 방송의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패널들의 진행 방식도 객관성을 잃지 않았다. 



MC 주진우 기자는 계속해서 말한다. 이는 그저 취중에 벌어진 ‘우발적 단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조직적 계획적’인 범죄라고. 버닝썬 사태를 수식하는 언론의 다양한 정의가 있어왔지만 이 문장 이야말로 어쩌면 이번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정의하는 말이 아닐까. 그저 가십거리가 아닌, 객관적이고 성역 없는 보도를 하는 바람직한 언론의 역할을 다시금 일깨우는 말일 것이다.



패널로 등장한 고은상 기자 또한 이런 가학적인 성범죄, 마약범죄는 단발적이지 않았으며 꾸준하고 지속적으로 그 정황이 드러나왔다고 명명한다. 이 또한 사건의 본질을 잘 파악한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다 한 번’ 있을 법한 범죄행위가 아니라 계획적이고, 또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더 중히 여겨져야 할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MC 김의성씨의 한 마디였다. 그는 버닝썬의 문제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유감이라며, 이 문제의 본질엔 관심이 없고 가십거리로 자극적인 연예인 이름 올리기에 주력하는 황색 저널리즘과 같은 선정주의에 기반한 언론의 행태를 꼬집는다. 이 말과 함께 등장하는 화면의 CG 효과 또한 관련된 실제 보도의 선정적 헤드라인을 인용한 것으로, 보는 이로 하여금 참담함이 더욱 배가되던 순간이었다. 이러한 MC들과 기자의 첨언들은 선정적인 보도와 본질을 왜곡하는 언론들에 지쳐있었던 시청자들의 답답한 마음을 가장 잘 대변하는 한 방이었을 것이다. 






성역없는 취재, 나아가야 할 방향은


각종 범죄로부터 국민 개개인과 사회 및 국가를 보호하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고 있다는 경찰의 사전적 존립 목적과 달리, 계속해서 그들의 유착 정황이 포착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위층의 공권력과 결탁한 범죄’라는 본질을 빗겨 나간 언론의 선정적 보도 행태 또한 참담하기 그지없다. 경찰, 그리고 언론. 우리 사회의 기반을 잡고 있는 두 중심들마저 피해자를 외면해버린다면 사회는 붕괴해버리고 말 것이다. 나는 그런 붕괴를 꼭 언젠가 마주하게 될까 무섭고, 두렵다. 


영화 <동주>에선 말한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이 가장 부끄러운 일이라고. 모두가 부끄러운 줄 알아야한다. 당장의 잘못은 지금 당장에는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엔 다 밝혀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계속된 본질의 왜곡은 그저 사회를 곪게 만들 뿐이다. 


승리와 정준영 등의 유명 연예인의 이름에 가려진 사건들이 많다. 해명과 구체적인 해결은커녕, 아직 주목조차 받지 않은 의혹들이 쌓여 있다. 경찰과 유흥업소 간의 오랜 유착 관계, 그 관계 속에서 일어난 마약과 성범죄, 탈세 등 범법 행위까지. 모든 부분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비단 경찰들의 수사 하나로 해결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며, 국민들은 묻히지 않도록 끊임없는 관심을, 방송과 언론은 어느 한 쪽으로 편향되지 않는 객관적인 자세로 알려야 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출처 :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 온라인 설문조사 (2019.04.15-21)


한국 언론 진흥재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버닝썬 사태 보도의 문제점에 상당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장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바로 황색 저널리즘 경쟁이었다. 본질적 해결이 아닌 개인 차원의 비리 들추기식 보도, 조회수만을 좇기 위한 경쟁. 선정주의에 기반한 보도에서의 탈피가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여기서 시사교양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성역없이 취재하고자 하는 열의를 바탕으로 모두가 외면하고 덮으려 하는 이면을 끊임없이 헤집는다. 그리고 그들은 말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라고. 대체 권력형 비리가 이 사회를 어디까지 좀먹은 것인가. 이젠 그 반복의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분골쇄신하는 노력으로 고착화된 악습을 뿌리 뽑아야 한다. 그 중심에 <스트레이트>가 있다. 이를 시작으로 또 다른 시사 프로그램들이 본연의 역할을 잊지 않고 부디 바람직한 시선으로, 끝까지 잘 추적해 나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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