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건
1-2년 전쯤 친구와 한 대화가 떠오른다. 재테크 열풍이 불면서 친구도 나도 그 열풍의 대열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최근 생긴 관심사인 투자에 관해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읽는 책도 그 계열과 관심사가 상당히 달라졌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그러다 친구가 살짝 자조 섞인 말투로 말했다.
“어릴 때 딱 내가 싫어하던 어른이 된 것 같아”
또 다른 친구와 나눈 대화로는 이것이 있다. 20대 후반쯤, 모두가 알법한 꽤나 번듯한 회사에 취직한 친구는 1-2주 간의 출근 소회를 말하고 있었다. 1-2주간 그가 마주했던 모두가 연봉, 번듯한 차와 같은 것들을 말하고 그것들을 갖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했다. 그들의 가치 기준에서는 그것들이 전부인 냥 말이다. 그러면서 친구는 덧붙였다.
“전부 괴물들처럼 보였어”
생각해보면 아이에서 어른이 되는 과정에 빠질 수 없는 항목이 바로 ‘돈’과 관련된 경험인 것 같다.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말이다.
부정적인 경험이라면, 돈이 없어서 서러운 처지에 처한 기억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면서 ‘돈’의 필요성을 깨닫고, ‘돈’을 모아야겠구나 라는 회로로 이어지는 것 말이다.
긍정적인 경험이라면, 돈은 나의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구나. 돈을 절약해야겠다와 같은 좋은 경제관념을 갖는 쪽일 수도 있겠다.
어른들은 돈을 좋아한다. 아이들은 그 돈의 가치를 어른들만큼 절절히 깨닫지는 아직 못했다. 그래서 ‘돈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 혹은 ‘돈이 꼭 전부는 아니야’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 20대의 내가 딱 그랬다. 무언가 돈 돈 하는 것이, 너무 척박해 보이기도 하고, 그것만이 중요한 가치는 아닌데 하면서 행복을 최우선 순위에 두곤 했다.
그런데 행복하려면 돈이 필요했다. 돈 없이는 행복해질 수가 없었다. 하물며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어도, 밥 한 끼 사드리려면 돈이 필요하고, 좋은 혜택과 경험을 드리고 싶어도 그것은 모두 돈이 필요했다. 물론 돈 없이도 행복해지는 방법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방법으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아니었다.
나는 맛있는 커피와 음식을 먹을 때 행복했다. 좋은 소재의 옷을 걸칠 때 행복했다. 좋은 집에 머물 때 행복했다. 그런 것들은 모두 값이 나갔다.
20대에는 돈 돈 하는 것이 싫어서, 오죽하면 자급자족하는 마을을 만들어서 살 순 없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질에 주객전도되기 싫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먹을 채소는 텃밭을 가꿔서 생산하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결국 이 자급자족 생활을 위한 집과 밭이 필요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튼 기초 자산이 필요했다.
돈이 두려워서 외면했던 것이든, 현실이 괴로워서 외면했던 것이든, 돈 없이 살고 싶은 마음과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공존해왔다.
그런데 이제는 깨달았다. 돈은 필수 불가결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을 지금은 받아들이고, '그래 돈이 꼭 필요하다면, 차라리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낫겠어'하는 마음으로 투자며, 재테크 공부를 더욱 본격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가끔은 이렇게나 달라진 내가 좀 새롭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 그러면서 이전 친구들과 나눈 대화들도 가끔 떠오른다. 그런 과도기의 어른이들에게 해주고픈 말은, ‘우리 본질을 잃지는 말자’이다.
사실 우리가 ‘돈’을 벌고 싶은 이유는, ‘내’가 초라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또는 가족 혹은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어서, 그들을 지키고 싶었어서인 경우가 많다. 자녀를 낳고 더욱 책임감이 강해져, 열심히 일하는 가장처럼 말이다. (이기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에 꽤나 기뻐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기적 이타주의자라는 말처럼, 그저 타인보다 내가 좀 더 우선시 될 뿐, 내가 여유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를 돕고 도움이 되는 데 기쁨을 얻곤 했다. 물론 나르시시즘이 강하거나 하는 등 나쁜 사람도 많이 존재하기는 한다. 혹은 그 사람 나름대로 본인을 지키는 방식이 이해관계가 상충되어 충돌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단, 돈을 모으는 과정에서 어떤 기간 사이에서는 돈이라는 수단이 목적이 되어버리기도 하고, 가끔은 시작한 이유를 잊고 ‘돈’에만 집착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과정을 겪을 수는 있다. 하지만 돈을 어디까지나 수단이며, 삶을 더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이지 삶의 전부로 두진 말자.
어쩌면 친구가 본 ‘괴물’이라는 표현이 쓰인 어른이었던 그 사람은 그런 과정에 놓였던 사람일 것이다. 돈을 수단으로써 사용했을 때의 행복감이나 그런 것들보다는 돈 자체에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 말이다.
모순적이고 어렵게 들릴 순 있겠지만,
경제적 현실감각을 갖춘 적당한 순수함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돈이 중요하다는 것을 너무나 깨달아 버렸지만, 때론 돈이 삶을 퍽퍽하게 만든다는 것도 너무나 잘 아는 어른이지만, 여름에 사 먹는 소소한 맥도널드 700원 콘 아이스크림 하나에도 꽤나 행복함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것 말이다. 돈을 버는 어른은 되었지만, 어린 시절 장난감을 처음 받고 좋아하던 그때의 기쁨을 계속 느낄 수 있는 것. 감정과 감수성만큼은 무디어지지 않고, 계속 처음처럼의 설렘과 순수함을 조금은 간직하는 것.
요즘 우유 값이 많이 올라서 슬프지만, 글을 쓸 때 집에서 만들어 먹는 라떼 한 잔이 나에겐 매일 크나큰 행복감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