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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Sep 22. 2020

나의 특별한 일상

오전 출근길


새벽 5시 45분. 수요일. 아직 한 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이불속이 아쉬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스마트폰을 들어 팟캐스트 어플을 켠다. 아직 잠이 덜 깬 눈으로 스마트폰 블루라이트가 여과 없이 들어오자 눈이 시리다. 침침한 눈을 감고 방송을 듣다 보니 커튼 사이로 세상이 제법 훤해진 것이 느껴진다. 시계를 보니 씻을 시간이 된 것 같다. 어제저녁에 먹었던 것들이 소화가 덜 되었는지 속이 더부룩하다. 거울을 보니 턱에 빨간 뾰루지가 하나 더 난 것이 보인다. 어제 났던 뾰루지는 인중 가운데 난 탓에 고랑처럼 움푹 패진 인중 그림자에 가려져 티가 나지 않았었는데 오늘 것은 처치하기가 곤란하다. 세수할 때 살짝 만져보니 꽤 아파 아직은 짜기 이른 것 같아 며칠 뒤에 해결하기로 미뤄둔다. 대신 여드름 패치를 떼어내 불난 곳에 응급처치를 한다. 뾰루지 때문인지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진다. 괜히 씩 웃어본다. 퉁퉁 부운 눈 덕분에 사람은 착해 보인다. 머리를 감고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탈탈 털며 베란다 밖 세상을 보니 온통 회색으로 가득하다.  오늘도 미세먼지로 꽉 찬 세상.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하지만 미세먼지는 좀처럼 적응해내기 어렵다. 특히나 오늘은 체력적으로 가장 힘에 부치는 수요일 아닌가? 그런데 날씨마저 잿빛이라니 너무하다.  따뜻한 아침밥을 먹으면 마음이 조금은 위로가 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 새삼 지난주에는 어떻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 긴 여정을 꾹 참고 보냈나 싶다.

주차장에 가보니,  누군가 내 차 앞에 이중 주차를 해놨다. 집채만 한 suv가 내 차를 오가지 못하도록 딱 버티고 있었다. 있는 힘껏 차를 뒤에서도 밀어보고, 앞에서도 밀어 보지만 차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까스로 힘겹게 밀어내어도 주차장 바닥 면에 살짝 경사가 있는지 다시 제자리로 미끄러져 돌아온다. 이 과정을 몇 번이고 반복하자 나는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차에는 차주 전화번호 조차 남겨있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버스 타고 가야 하나 싶었던 그때, 끙끙대며 필사적으로 차를 밀고 있는 내가 가여웠는지 어떤 분이 내 옆으로 성큼성큼 다가와서는 차를 밀어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보니 여운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분께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해 더 그랬는지 모른다. 덕분에, 아침부터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살살 녹았다. 힘든 수요일, 미세먼지 등등 출근길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던 모든 짐덩어리들이 사라졌다. 덕분에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출근길에 오를 수 있었다. 아직 세상은 살만 하구나, 나도 언젠가 나처럼 곤란한 사람을 보면 도와줘야지. 따뜻한 여운은 오전 내내 계속되었다.

오후 퇴근길


집으로 오는 동안 저녁 메뉴를 고민했다. 오늘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을까? 그럼 무엇을 주문하지? 나는 배달 어플을 들여다보며 수많은 메뉴들을 두고 고민했다. 메뉴 중 딱히 끌리는 음식은 없었지만 무언가 주문하고 싶었다. 나는 배달되어 온 쌀국수를, 돈가스를, 떡볶이를 상상해보았다. 일회용 용기에 담겨 올 그것들을. 상상 속 음식들은 엄마가 해준 따뜻한 집밥과는 거리가 먼, 온기가 없는 '상품'들이었다. 그것을 먹으면 행복해질 것 같아? 아니, 아닐 것 같아. 나는 항상 배달 음식을 먹고 나면 행복감과 거리가 먼 감정을 느끼곤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는 만족감보다는 불쾌한 포만감과 고작 MSG 투성인 음식을 먹으려고 돈을 낭비했나 싶어 드는 허탈감이 마음을 가득 채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배달 음식을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어플 속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요리들을 소비하며 외로움을 달래고 싶었던 것이고, 주문하는 과정 동안 설렘을 느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본 후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냉장고 문을 열어 저녁 찬거리를 찾았다. 그때 콩나물 한 봉지가 눈에 띄었다. 그래, 콩나물국이나 끓여 먹자. 요리를 시작하자 엄마의 목소리가 내내 들리기 시작했다. 뚜껑을 열고 콩나물을 삶으면 비린 내가 난다, 진간장 말고 집간장을 넣어야 한다 (지금도 혼동된다. 진간장, 집간장, 양조간장, 국간장), 너한테는 콩나물국이 보약이야. 그렇게 제법 엄마표 콩나물국답게 국이 완성되었을 때, 나는 엄마의 레시피에는 없는 달걀을 보글거리는 냄비 안에 깨뜨려 넣고 뚜껑을 덮었다. 달걀을 풀어 넣고 뚜껑을 닫으면 국물이 넘친다는 것은 반복된 경험으로 익히 알고 있는 바였다. 그러나 나는 오늘도 국물이 가스레인지에 범람하게 만들고야 말았다. 넘치면 좀 어떤가? 닦으면 될 것을. 나는 든든하게 콩나물국으로 배를 채웠다.

저녁 설거지를 하다 보니 그저께 충주로 내려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삼 년 전 귀하신 뒤로 건강해지기는 커녕 고된 농사일에 부쩍 노쇠하신 우리 아버지. 점점 더 늙어가는 아버지, 외로운 아버지, 어깨가 점점 굽어가는 아버지, 안방에서만 내내 계시는 아버지, 더 이상 실질적인 가장이 아닌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내가 나누는 대화라고는 아침 식탁에서가 전부였다. 나와 아버지는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왔습니다. 식사하세요. 잘 주무세요"라는 말만 항상 주고받았다. 아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주고받는 말이 아닌, 대화가 오고 갈 수 없는 말만 골라 일방적으로 내뱉곤 했다.
아버지를 볼 때면 마치 살얼음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언젠가 그 얼음은 깨질 것이지만 오늘은 아닐 거야, 오늘은 아니어야만 해 하며 매일을 미뤄왔다. 오늘도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까.
 아침 출근길에 "잘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안방 문을 열어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면, 아침 뉴스를 보시던 아버지가 현관문까지 나를 마중 나오시던 장면이 떠올랐다. 이제 봄인데 아버지는 여전히 리스 차림이시다. 내가 사드린 리스를 입은 그분의 굽은 어깨, 파자마, 그리고 흰 수염.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안쓰러운 모습을 모른 척 뒤로 하고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탄다. 나 하나 살기 벅찬 세상에서 내게는 아버지의 외로움을 짊어질 여유가 없다고 합리화하며 나는 하루하루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 걸어왔다. 그러나 요즘은 용기를 내려하고 있다. 더는 미루면 안 될 것 같아서.
나는 내가 어제 아버지께 보낸 카톡을 확인했다. 여전히 1은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아직도 내가 어제 보낸 카톡을 읽지 않으신 것 같다. 데이터와 와이파이의 차이를 아무리 설명해드려도 모르시는 아버지는 항상 데이터와 와이파이를 꼭꼭 막아두신다. 그러니 카톡을 읽지 못할 수밖에. 그래서 오늘은 문자를 보내기로 한다. 차마 전화로는 할 수 없는 부끄러운 말들을 잔뜩 문자로 늘어놓고 마음이 바뀌기 전에 빨리 전송 버튼을 눌렀다. 아마 답장은 내일 올 것이다. 시골의 밤은 깜깜해서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일찍 자야 한다고 하셨던 우리 아버지. 아버지는 지금쯤 주무시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께 문자를 보내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스탠드 조명을 켜니 방 안이 따뜻한 주황빛으로 가득 찼다. 나는 조명 아래에서 책을 폈다. 나는 지난겨울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유는 불면증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지인에게 추천받은 책들을 장르 상관없이 읽기 시작했다. 확실히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책을 읽으니 잠도 잘 오고 안구건조증도 좋아졌다. 요즘 읽는 책은, 현대문학상 수상집. 나에게는 장편보다 단편이 편하고, 한 작가의 단편집보다 여러 작가들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모음집을 읽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특히나 수상 모음집을 보면 여러 젊은 작가들을 알 수 있어 좋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나를 위협하는 세상에서 벗어날 수 있어 이야기 속 세계 안에서 안전하다 생각하니 마음이 편안해져서 좋다. 나는 오늘도 책을 읽다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그러다 곧 이불속으로 들어가 잠에 든다.

그리고, 새벽 5시 49분. 늘 그렇듯 눈이 떠지고 어제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나의 하루가 시작된다. 또 나는 머리를 감고 주차장으로 향하고 8시간 동안 정신없이 일터에서 시간을 보낸 뒤 집으로 다시 돌아와 배달음식을 먹을까 집밥을 먹을까 고민하다 또 집밥을 먹을 것이며, 아버지 혹은 지인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고 외로움을 달래다가 꾸벅꾸벅 졸며 책을 읽을 것이다.
무의미하고 특별할 것 없는 나의 하루. 그러나 문득, 이러한 나의 단조로운 일상은 다른 누구의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의 일상은 나의 일상과 비슷하겠지만 같을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내 일상도 특별하다 할 수 있지 않을까?

 특별하지 않으면도 특별한 나만의 특별한 하루가 또 이렇게 시작된다.


2019.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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