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금요일 밤이면 과식을 한다. 흔히들 금요일을 불금이라 부를 때, '무너지고 싶은 금요일'이라 부르던 어떤 사람이 있었다. 그때는, 금요일이면 활활 타올라야지 왜 무너지고 싶을까? 참 우울한 말이 그지없다 싶었는데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내 마음은 안다. 바쁜 평일에는 자신을 돌봐줄 여유가 내게 없다는 걸. 은근히 배려심이 깊은 내 마음은 내가 우선순위를 부여한 다른 것들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 시간을 묵인하고 선뜻 깊숙이 파묻혀 있어 준다. 그 배려가 고마워 나는 금요일이면 마음을 달래준다. 금요일은 마음이 마음껏 칭얼대는 날이니까. 그러면서 나도 마음과 같이 무너져버리곤 한다. 금요일마다 마음이 나에게 부리는 응석은 한결같다.
내 공허함을 채워줘.
마음을 정성껏 달래주고는 싶지만 마음이 만족할 만큼 허기를 채워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을 '먹기'로 달랜다. 그것이 근본적인 치료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제일 편하고 쉬운 방법이라서. 그리고 마음은 은근히 단순하고 둔해서 자신이 정작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그 공허함만 일단 채워주기로 한다. 그럼 당장은 시끄러운 마음을 조용히 시킬 수 있으니까.
나는 무작정 마트로 달려간다. 그러나 많고 많은 음식들 중에 선택지는 많지 않다.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만성 위염을 달고 사는 나는 늘 먹어본 음식만 고르게 된다. 그렇게 익숙한 과자와 사탕, 그리고 가끔은 맥주. 이 식상한 조합이 내 마음에 들 리가 없다. 마음은 마트에서 내내 조용히 있다가 계산하고 나오는 내게 이렇게 말한다. 나 사실은 이게 아니라 다른 게 먹고 싶었어. 귀찮은 녀석. 이제야 정확히 먹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군. 나는 그 길로 대로변에 새로 생긴 떡볶이 가게에 간다. 메뉴판을 보며 요즘 유행하는 로제 떡볶이를 살까 잠깐 고민한다. 마음은 말한다. 아니야, 늘 먹던 걸로 먹자. 나는 일반 떡볶이를 주문한다.
주문한 떡볶이를 기다리는, 마트에서 장을 보는, 한 손에는 마트에서 산 음식을 다른 손에는 떡볶이를 들고 집으로 걸어오는 그 시간 동안 내 마음은 행복해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만족감은 오래가지 못하리라는 것을. 집에 돌아와 내 방 불을 켜고, 장을 봐온 비닐봉지를 뜯고, 그 음식들을 입에 넣고, 우적우적 씹는 동안 내 마음은 하향선을 달릴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렇게 말할 테지. 내가 원한 건 이게 아니야.
불쾌한 포만감과 내일 아침 찾아올 오랜 친구 같은 허무함에 대한 생각들로 마음은 재차 칭얼대고 싶어하겠지만 이미 밤은 늦었고, 잠은 오니 이내 조용해질 것이다. 이런 패턴을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꼭 금요일 밤이면 공허하다 외치는 마음을 끌어안고 무너지고 싶어 진다.
마음아, 나도 힘들어.
이 글을 쓰고 있는 토요일 아침인 지금도 나는 어김없이 숙취처럼 찾아온 위장의 뒤틀림과 후회의 감정 속에서 투닥투닥 타자를 치고 있다. 글을 쓰다 보니 그 어두운 감정이 조금은 정화가 되는 것 같다. 그래도 마음아, 나는 널 이렇게나 많이 아끼고 있어. 내 위장보다는 널 신경 쓰고 있잖아. (매번 숙취로 고통받는 내 '위장'도 나에게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마음아, 미안해. 널 제대로 달래지 않고 고작 음식으로 네 입을 틀어막으려 해서. 음식이 아니라면 어떤 것으로 널 배부르게 채워줄 수 있을까? 답이 무엇인지 알 것 같으면서도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지내는 은둔형 외톨이 생활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되어버린 이 외로움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내 마음은 의지할 사람이 나 밖에 없을 테지. 그러니 내 마음을 더 꽉 껴안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