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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는 잘 있습니다 Jan 16. 2022

어린 '나'에게 미안해졌다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자존감이 바닥을 쳐서 우울만 되새김질하던 내 마음에 반향을 가져온 건 뜻밖에도 언니의 전화였다.

지금 엄마가 닭갈비를 많이 하고 있으니 지금 집에 와서 먹으라는 거였다. 순간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정적이 흘렀다. 갑작스레 뜨거운 것이 목구멍 끝에서 올라왔다. 순간 나도 당황했다. 왜 눈물이 나오지? 언니에게 울고 있는 것을 들킬 것만 같아서 그대로 있었다. 침묵을 못 견디고 언니가 전화기 반대편에서 재차 물었다.

"그래서 올 거야?"

"어"

두 음절 더 말하거나 입을 더 크게 벌려 발음해야 하는 말을 했다가는 언니가 알아챌 것 같아 고르고 고른 말이었다. 다행히도 언니에게는 들키지 않았다.


닭갈비 먹으러 오라는 언니의 말에 왜 이리 북받치던지.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내가 너무나 초라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버려진 섬 같은 느낌. 그런 내게 딱 적절한 순간 언니의 전화가 왔고 참 따뜻했다. 맞아, 나에게는 나를 기다려주는 가족들이 있었지. 맛있는 것 해 먹을 때마다 늘 한 사람 몫만큼 이 남을 때면 집 나간 딸 생각에 음식이 잘 안 넘어가신다던 엄마. 시크하게 굴고 매번 잔소리해도, 이거 남우 줘, 유용한 물건이 생길 때마다 동생에게 챙겨주려는 세상에 하나뿐인 내 핏줄 언니가 있다. 그리고 우리 아부지는 말할 것도 없지. 아빠는 내가 사는 이 작은 세상의 지붕이자 기둥이다. 나는 우리 엄마 아빠의 소중한 딸이다.


몇 분 동안 펑펑 울고는 애써 울지 않은 척 눈물을 닦고 본가에 다녀왔다. 그리고 본가에 두고 왔던 내 책들을 챙겨 왔다. 우울할 때마다 꺼내 있는 내 책들. 백석 시집, 연금술사, 김금희 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해. 한동안 읽지 않았다. 그 정도로 바쁘게 살았다는 거고, 또 어떻게 보면 그동안 이 정도의 우울함을 느끼지 않았다는 거다.

"너는 가끔 잊는 것 같아. 네가 되게 운이 좋은 아이라는 걸."
"내가 뭐가 운이 좋니? 운이 좋으면 이렇게 몇 년을 임용고시를 못 붙겠어?"
"그러니까 그 못 붙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다는 거야."

김금희의 소설은, 내가 미처 정의하지 못하는 내 감정을 정리해 준다. 그래서 글을 읽고 나면 생각들이 정리되어 한결 가벼워진다. 억지로 기분 좋아지는 음악이나 영화를 보며 애써 상처를 덮어두는 것보다 나와 비슷한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하고 위로받는 게 훨씬 더 좋다.


그런데 정작 내 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어준 건, 우연히 책에 딸려 가져오게 된 내 일기장과 중학생 시절 친구들이 써준 편지들이었다. 이 타이밍에 뜻밖의 보물들을 발견한 것은 아마도 내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내가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알려주시고 싶으셔서 그러신 것 같다.

넌 정말 좋은 애 같아.

   

넌 나의 베프야. 난 너의 베프이길 바래!


생각해 보면 내 곁에는 진짜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런데 그 중요한 걸 정작 그때는 몰랐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나는 깨닫고 있다.


수희야!! 나 너 기억해! 내가 힘들었던 순간에 의리 있게 늘 내 곁에 같이 있어주었던 수희. 나라면 너처럼 못했을 것 같은데. 나보다 네가 훨씬 좋은 사람이야. 분명 지금 넌 좋은 어른이 되어있겠지. 너 덕분에 유명해지고 싶어졌어.  찾아서 인사하게. 그때 고마웠었다고. 당연히 너는 내 소중한 친구고 베프였어. 내가 너에게 그렇게 답장했겠지? 네 편지 덕분에 쪼그라들었던 내 자존감 다시 회복했어. 너무 고마워.


남우야, 방학 때 내가 맛있는 것 사줄게. 방학 동안에.


윤경이다. 나를 좋아해 주던 좋은 친구. 윤경이랑 편지를 진짜 많이 주고받았네. 내 주변에 나를 좋아해 주는 좋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있었다는 점, 그걸 보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십여 년 전 내가 썼던 일기장을 가져왔다. 사실 책들이 무거워 일기장까지는 가져오기 싫었고 엄마한테 버리자고도 했지만 또 막상 버리려니 아깝고 다시 상자에 넣어두기 귀찮아 그냥 가져오게 되었다.


벌써 17년 전이다. 당시 삼수를 하고 있던 시기라 글들이 다 어둡다. 현실이 힘드니 현재로부터 벗어나는 행복한 망상을 하면서 쓴 글들이 대부분이다. 지침, 불안, 외로움이 주된 정서였던 그때의 글들을 읽다 보니 지금 내가 평소 하는 생각, 그리고 걱정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INFP였나 보다.


꿈으로 버틴다. 오로지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은 일들을 상상하면서.
요즘은 그냥 누군가에게 내 고민, 힘든 일들을 다 털어놓고 울고 싶다. 오죽하면 친하지도 않은 남윤재한테 그런 말들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을까? 그냥 죽고 싶다 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어디에도 내 친구는 없다는 사실. 내 최대 약점이 다시 들춰지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또 난 혼자다. 언제나 그랬듯 익숙한 외로움이지만.. 힘들다. 이상하게도.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가버리고 나만 덩그러니 남아 홀로 입시 학원에 처박혀 있던 그 시절. 억울함, 좌절감, 그리고 수치심. 그 어린 나이에 그런 것들을 감당해야 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서 이 일기를 끝으로 더는 뒷장으로 넘기지 못했다. 나는 그래서 수도 없이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정말 많이 노력했다.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시간들. 끔찍하고 돌이키고 싶지도 않고 생각만 해도 한탄스러워 그동안 의식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내 무의식 속에 묻혀있게 된 기억들. 그러니 지금 내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지층의 밑부분을 그때의 기억들이 차지하고 있겠지. 조만간 그때의 나를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리고 일기를 보니 어린 나에게 미안해졌다. 그 아이는 어른이 된 내가 이렇게 행복하지 않고 못나게 살고 있다는 걸 모를 거다. 만약 알게 되면 슬퍼할 것이다. 내가 그렇게 되려고 그토록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냈나 하고.


그러니 남우야. 너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단단해질게. 겨우 이런 일로 약해지거나 그만두고 싶다고 칭얼대지 않을게. 행복하게 살 거야. 그 순간을 잘 버텨줘서 고마워. 어떤 누구도 그 끔찍했던 시간을 너보다 더 잘 견뎌낼 수는 없을 거야. 네가 필사적으로 견뎌내 준 시간들을 내 오점이라 생각하지 않을게. 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으니까. 너의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살게. 더 행복하고 당당하게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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