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표의 브랜드 부루마블
혹시 '차오차이'라는 브랜드 광고 보셨나요? 저는 밥을 먹다가 우연히 이 광고를 봤는데요. 딱 보는 순간 아 저거 샘표 아냐?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광고에는 샘표라는 브랜드가 전혀, 아니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영상을 찾아보면 오른쪽 하단에 아주 작은 글씨로 '판매원 샘표식품'이라고 나올 뿐이죠.
그럼에도 제가 이 광고를 보고 샘표를 떠올린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샘표의 신규 브랜드들은 왜 호부호형(呼父呼兄: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고, 형을 형이라 부름)을 못하는 걸까요?
우선 제가 이 광고를 보고 샘표를 바로 떠올리게 된 이유부터 말씀드리죠. 일단 빅모델을 투입해서 황금 시간 대에 광고를 하면서 기업 브랜드가 등장시키지 않는다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CJ라던가, 풀무원 같은 기업이라면 후광효과를 위해 어딘가에 기업의 로고 또는 패밀리 브랜드(비비고 등)가 나올 테니까요.
둘째로 샘표는 이미 유사한 방식의 마케팅을 진행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티아시아'라는 인도, 태국 요리 브랜드를 런칭하면서도 샘표라는 브랜드는 거의 노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도 전지현 씨를 내세워 공격적인 TV 광고를 집행했지만 지금도 샘표 제품이라는 걸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다니엘 헤니가 모델이었던 폰타나 때도 마찬가지고요.
저는 차오차이 광고를 보는 순간 이런 생각들이 겹치면서 이번엔 샘표가 중화요리에 진출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 거죠. 그렇다고 샘표가 박절(迫切!)하게 이런 브랜드를 내 자식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샘표의 공식 사이트에 방문해 보면 차오차이를 비롯해, 티아시아, 폰타나 등이 모두 노출되어 있거든요.
재미있는 건 이런 브랜드들의 공식 사이트에는 또 샘표가 없어요. 각각 독립적인 사이트 주소를 갖고 있고, 심지어 연락처도 네이버 이메일을 쓸 만큼 '샘표'는 철저히 숨기고 있죠.
왜 이런 브랜드들은 부모인 샘표를 아버지(또는 어머니)라 부르지 못하는 걸까요?
꽤 오래전에 '커피타임'이라는 캔커피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마케팅 공부를 하신 분들은 브랜드 확장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반면교사로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것 같네요. 샘표는 1987년 이 회사를 인수해서 커피 사업에 진출했습니다. 당시엔 샘표의 후광을 업고 더 성장할 것을 기대했죠.
하지만 '커피에서 간장맛이 나는 것 같다(?)'는 (경쟁사가 퍼트린 말일 수도 있죠. 소나타가 '소나 타는 차'라는 말이 퍼지면서 쏘나타로 바뀐 것처럼..) 인식이 퍼지면서 결국 사업을 접고 말았죠. 그 뒤로 샘표는 장류 외의 카테고리로 계속 확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샘표라는 브랜드를 내세우진 않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갑니다. 회사의 사업 영역을 확장하거나 새로운 타깃으로 확장할 때 기존의 이미지가 발목을 잡는 경우들은 종종 있으니까요. '오리표'의 경우도 올드한 브랜드 때문에 에넥스로 상호를 변경했고, '전우방제'라는 회사 역시 그저 그런 해충 방제 기업이었지만 환경 위생을 보증하는 브랜드로 재포지셔닝한 뒤 지금은 매출 4천억을 넘는 기업이 됐습니다. 그 회사가 지금의 세스코입니다.
그렇다면 샘표 역시 기업 브랜드(CI)를 변경하면 간단한 것 아닌가요? 샘표는 간장 등의 장류에 대한 브랜드로 남겨 두고, 기업 브랜드를 새로 만들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볼 수 있죠.
유사한 사례가 대상입니다. 대상의 원래 기업명은 '미원(味元)'이죠. 하지만 MSG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또 맛나가 다시다에 밀리고) 또 미원이라는 브랜드가 원래 아지노모토(味の素-보노로 유명한 일본 회사)의 아류였던지라 기업 브랜드로 유지하기엔 부담이 컸습니다. 그래서 1996년 청정원이라는 패밀리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이어서 1997년 기업명 역시 대상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대상의 경우, 식품 외에 다양한 영역의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다소 부담을 안고 두 개의 신규 브랜드를 런칭한 거죠. 하지만 현재까지도 청정원이나 미원에 비해 대상의 브랜드 파워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을 생각하면 브랜드 아키텍처를 새롭게 짜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죠.
샘표의 경우 기업 브랜드를 바꾸는 것보다는 각각의 신규 브랜드 컨셉을 명확히 해서 생존하게끔 만드는 전략을 취하는 것 같습니다. 티아시아, 폰타나, 차오차이 등을 보면 인도(또는 동남아), 이탈리아, 중국이라는 국가, 또는 요리를 중심으로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아마도 또 다른 나라의 요리로 신규 브랜드를 만든다면 저처럼 샘표를 함께 떠올리는 분이 더 많아질 수도 있겠네요.
샘표의 이런 확장 방식은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마치 부루마블처럼 브랜드로 세계 여행을 하게 될까요? 샘표라는 브랜드는 언제까지 기업 브랜드로 유지하게 될까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