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지금 우리 회사는 AI를 얼마나 활용하고 있나요?
제가 ‘최프로’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AI 관련 글을 쓴 지도 벌써 2년 여가 됐습니다. 이 글이 책이 되고 또 컨설팅과 강의로 이어져서 지금은 AI 관련된 일들이 중심이 됐죠. 강의 외에 그동안 브런치나 다양한 채널에서 AI가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지, 또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해 꾸준히 이야기해 왔는데요.
감사하게도 제가 쓴 글이나 책을 보고 강의를 의뢰하는 기업 담당자분들에게서 종종 메일을 받기도 합니다. 얼마 전, 새로운 제안 메일이 도착해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최프로님. 브런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저희는 ‘가우스 F&B*’이라는 식음료 기업으로 직원들의 AI 활용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을 진행하고 싶은데 가능하실까요?
여기까지는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반갑고 익숙한 의뢰였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다만 저희 회사는 보안 정책상 챗GPT를 포함한 대부분의 외부 AI 서비스 접속이 차단되어 있습니다. 구글 드라이브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도 사용이 어렵습니다. 혹시… 교육은 직원들이 각자 개인 스마트폰으로 실습하는 방식으로 진행이 어려울까요?
순간 멈칫했습니다. 또다시 AI 혁신을 원하는 기업의 딜레마를 딱! 마주하게 됐기 때문이죠. 과거에도 몇 차례 이런 식으로 교육을 진행한 적이 있지만 실제 교육이 효과가 있을 지도 의문이고, 과연 그 뒤에 내부적으로 AI 활용을 얼마나,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선뜻 수락하기가 어렵더군요.
한편으로는 의아한 생각도 듭니다. 이렇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기업들은 왜 비용과 시간을 들여 AI 교육을 진행할까요? 또 직원들은 바쁜 시간을 쪼개 왜 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걸까요?
물론 뉴스를 보면 연일 AI 관련된 소식이 쏟아져 나오고, 당장 AI 도입을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말하니 마음이 조급해지죠. 경영 관련 전문가들은 이제 DX(디지털 전환)를 넘어 AX(AI 전환)*를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실제로 몇몇 대기업들은 그룹 차원에서 AI 전환을 위한 전문 조직을 출범시키고, 자체적인 AI 모델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업 내에서의 움직임 외에 우리가 직접 마주할 수 있는 부분들도 있습니다.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기업이나 빙그레, 야나두 등 국내의 여러 기업에서 AI를 활용한 광고나 마케팅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또 김햄찌처럼 AI로 만든 영상 인기를 끌면서 N잡을 꿈꾸는 직장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 회사가 당장 이런 광고를 할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당장 N잡러가 되겠다는 생각이 없다면... 보기에는 신기하고 재미있어도 당장 내가 AI를 왜, 어디에 써야 하는지는 와닿지 않습니다.
저는 AI 교육을 진행할 때 여러 가지 설문을 진행하는 편입니다. 직장인들에게 왜 AI를 배우는지에 대해 직접 물어봤는데요. 압도적으로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은 업무 효율이나 칼퇴 등을 포함한 ‘생산성’입니다. 기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조직이니까요.
개인들이 따로 신청하는 강의를 진행할 때는 약간 경향이 다릅니다. 본인 돈을 내고 오신 만큼, 관심이 있는 것은 수익성입니다. AI를 통해서 새로운 수익 파이프라인을 만드는 거죠.
결국 AI를 쓰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매출을 높이거나, 시간을 절약하는 것입니다.
* AX? 보통 AI 전환, 즉 AI Transformation을 AT라는 약자 대신 AX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실제 직장에서의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앞선 이야기한 사례처럼 ‘AI 혁신’을 외치면서도 정작 챗GPT나 제미나이의 접속은 막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구글 드라이브나 구글 워크스페이스(독스, 시트 등)의 접속이 안 되는 경우도 많죠. 이 때문에 저도 기업 강의 중에 실습을 할 수 없어서 어려움을 겪을 때가 꽤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정작 중요한 문제는 보안 외에 업무 프로세스나 문화적인 장벽에 있습니다. AI로 만든 결과물의 저작권이나 할루시네이션,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섣불리 도입을 망설이기도 하고, 심지어 AI를 업무에 활용하는 직원을 ‘편법이나 쓰는 게으른 사람’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AI라는 트렌드를 무시할 수 없는 회사 입장에서는 이런 기대를 품고 있을 겁니다.
직원들 각자 AI를 열심히 배우고 쓰다 보면,
우리 회사도 자연스럽게 AX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마침 교육 부서에서는 AI 교육이 직원 참여도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니, ‘AI 역량 강화’라는 명목 아래 교육은 점점 더 확산되고 있습니다. 물론 직원들 개별적인 역량을 키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제 생계와도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할까요?
결론부터 말해 단순히 직원 개개인의 AI 리터러시 교육 같은 것만을 통해 회사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기는 어렵습니다.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이런 변화의 시기마다 언급되는 ‘메트칼프의 법칙(Metcalfe's Law)'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메트칼프의 법칙은 간단합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의미죠. 팩시밀리를 생각하면 쉽습니다. 세상에 팩시밀리가 단 한 대 있다면 그 가치는 ‘0’입니다. 팩스를 보낼 상대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팩스가 두 대가 되면 하나의 연결이 생기고, 열 대가 되면 마흔다섯 개의 연결이 생겨납니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그 가치는 기하급수적으로 폭발하죠.
회사에서의 AI 도입도 마찬가지입니다. 개개인의 ‘AI 역량’ 보다 ‘흐름(flow)’이 중요합니다. 사실 이게 핵심입니다. AI를 잘 활용하는 직원은 개인의 업무 효율(즉, 칼퇴)을 어느 정도 개선시킬 수는 있겠지만, 회사의 전체 시스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마치 심슨의 패러독스 같죠.
그래도 팩시밀리의 경우 상대방의 보유여부를 명확히 알 수 있지만, AI는 다른 사람이나 부서의 활용 능력이나 의지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협업을 할 때 사용이 꺼려지고 다시 과거의 방식으로 회귀하게 되죠. 더구나 조직이 커질수록 직원들은 개인의 성공 경험을 전체의 시스템으로 연결하려 하지 않습니다.
교육만 따로 하는 것 보다는
AI 기반의 워크플로우를 함께 정착시켜야 합니다.
교육 부서는 열심히 AI 교육 진행하는데, 보안이나 내부 업무 프로세스 상 AI를 쓸 환경이 안되는 엇박자가 나면 의미가 없죠. 제가 AI를 잘 쓰는 법에 대해 설명할 때 이런 예시를 드는데요. AI를 잘 쓰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둘 중 하나입니다.
AI를 활용했을 때의 명확한 이익이 보이거나 (유튜브 같은 걸로 수익을 창출했거나)
AI를 쓸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이거나 (AI를 활용하지 않으면 기한 내에 끝낼 수 없는)
AI 워크플로우를 만드는 것은 이 중 두 번째, 즉 ‘AI를 쓸 수밖에 없는 강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막상 실천하려면 쉽지 않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딜레마가 발생하기 때문이죠.
AI 워크플로우를 설계하려면
회사 내에 AI 전문가가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엄청난 비용과 실패 위험을 감수하고 외부 조직에 위탁하지 않는 이상, 조직원들의 역량을 개선이 먼저인가? 프로세스 개편이 먼저인가? 하는 도르마무 같은 고민만 반복됩니다.
결국 강력한 의지를 가진 전지전능 CEO가 AI에 대한 비범한 인사이트까지 갖추고 탑다운으로 추진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마저 듭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할 건 없습니다. 사실 대부분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는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일부 우리 회사만의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들은 이미 나와 있는 방법들이 많이 있으니 일부는 우리 회사에 맞게 고쳐서 쓰고, 또 일부는 우리 프로세스를 바꿔서 쓰면 됩니다.
그렇게 하나씩 확산시켜 나가는 거죠.
저는 고민 끝에 가우스 F&B에서 강의를 맡기로 했는데요. ‘직장인들의 무기가 되는 AI 활용법’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마치고 얼마 후 다시 메일이 왔습니다. 당시 명함을 나눴던 마케팅 부서의 상무님이 보내셨더군요.
최프로님, 지난번 강의 잘 들었습니다. 특히 ‘AI 시대에 맞게 워크프로세스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부분이 저희가 찾던 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혹시 저희 회사의 AI 도입을 위한 프로젝트의 멘토 겸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로 함께 참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많은 기업이 밀린 숙제 하듯 다양한 툴을 섭력하는 방식으로 손쉬운 답을 찾을 때, 임원급에서 '워크프로세스 재설계'라는 다소 추상적인, 하지만 궁극적인 해결책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부인의 입장에서, 상당히 어려운 도전이 될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지만 그 진정성 믿고 수락하기로 했습니다.
사실 꽤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AI를 활용한 워크플로우를 도입했을 때 과연 얼마나 생산성이 높아지는지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렇게 저와 ‘가우스 F&B’의 진짜 AX를 향한 도전이 시작됐죠.
P.S. 여러분들의 회사에서는 AI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나요? 의견을 남겨 주시면 향후 연재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연재는 대부분 제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하지만 연재 성격 상, 또 실명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 상 가상의 회사(가우스 F&B)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참고로 가우스 F&B는 웹툰이자 드라마인 '가우스 전자'의 세계관에서 빌려온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