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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X는 도구 학습이 아닌 워크플로우 재설계가 핵심입니다

낡은 지도로는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목표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by 최프로

가우스 F&B(이하 F&B)의 AX 프로젝트가 경영진 최종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이디어를 현실로 만들어야 할 시간이죠.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착수에 앞서, 이번 AX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된 송팀장과 첫 미팅을 진행했습니다.


최프로님, 드디어 시작이네요! 사실 저희 가우스 그룹을 통틀어 전사적으로 AX를 추진하는 건 저희 F&B가 처음이라, 다른 계열사에서도 관심이 아주 많아요. 이번에 꼭 성공해서 우리가 제대로 보여줘야죠! 저도 정말 기대가 큽니다.


송팀장 목소리와 표정에서는 프로젝트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 묻어났습니다. 그룹에서 관심 갖는 프로젝트라니.. 부담도 있을 텐데, 오히려 더 의욕이 강해지는 스타일인 것 같았죠. 제가 뭐라 말을 보태기도 전에 다음 말이 이어졌죠.


제가 임원 보고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을지 생각을 좀 해왔는데요.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되지 않으려면 초기부터 전사적으로 'AI 붐업'이 필요할 것 같아요. 마침 곧 회사 창립기념일이라 전 직원이 참여하는 타운홀 미팅이 예정돼 있거든요?! 그때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전 직원 대상 'AI 리터러시' 교육을 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2단계로는 각 부서별 니즈에 맞춰 맞춤형 교육을, 이후 사내 전문가를 육성하는 과정까지 만들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어떠세요?


송팀장은 자신의 계획을 신나게 쏟아낸 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아? 하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기술 혁신은 게임의 규칙을 바꿉니다.


딱히 뭐라 덧붙일 필요가 없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대로만 된다면, 송팀장이 기대 대로 그룹 내에 성공 사례로 평가받을 겁니다. 하지만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습니다. AI를 정복할(?) 대상으로만 볼 뿐, 기술이 우리 일에 미친 영향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기술 결정론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셜 맥루한 같은 학자들이 미디어 결정론으로 발전시킨 이론인데요. 핵심은 기술, 특히 미디어 혁신이 그 사회 전반의 구조를 바꾼다는 주장이죠. 인쇄술의 발명이 종교 개혁을 이끌었고, TV의 보급은 대중문화와 정치를, 인터넷의 확산은 우리 사회의 소통 방식이나 문화, 그리고 정치와 경제까지 사회 구조 전반을 바 놓는다는 겁니다.



이 기술 결정론에 대해 이야기할 때 제가 자주 언급하는 사례가 있는데요. 바로 야구 분석 이론인 ‘머니볼’입니다. 과거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승리 공식은 비싼 돈을 주고 일명 '파이브툴 플레이어'라 불리는 선수를 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이버메트릭스'라는 데이터 기술이 등장하며 그 룰은 완전히 파괴됐죠.


2002년 가난한 구단인 애슬레틱스는 '출루율'이라는 데이터에만 근거해 남들이 외면하던 선수들을 헐값에 영입했습니다. 그 결과 양키스의 3분의 1도 안 되는 연봉으로 메이저리그 신기록인 20연승을 달성하게 되죠.



위 영상은 실제 애슬레틱스가 끝내기 홈런으로 역전을 하며 20연승을 달성하는 순간입니다. 기술이 낡은 공식을 파괴하고 새로운 공식을 만든 순간이죠. 이 스토리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AI라는 기술 혁신은 일의 공식, 정확히는 이기는 법을 바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AI 도구들만 더 배운다고 적응할 수 될까요? 새로운 기술을 기존의 방식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낡은 지도를 들고 보물을 찾아 나서는 것과 같죠.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에는 수많은 AI 서비스가 새로 등장하고, 또 기존 서비스들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든 AI를 전부 마스터하려는 시도는, 마치 모든 운동 종목의 국가대표가 되려는 것과 같습니다. 불가능할뿐더러 지극히 비효율적이죠.


그래서 우리는 AI 뿐 아니라, AI 시대의 일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기술 보다 '일'에서 출발하는 이유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의 일을 분석하고, 거기에서 우리만의 방식을 찾아야 합니다. ‘머니볼’을 도입한 애슬레틱스처럼 말이죠. 결국 에슬래틱스가 승리한 이유는 세이버 메트릭스를 공부했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준에 맞는 선수를 영입했기 때문입니다. 즉,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로 승리 방정식을 찾고 실제 적용할 것에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는 '일'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그럼, 전통적인 일부터 살펴볼까요?


지난 100년간 우리의 일은 포드가 개발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위에서 움직여 왔습니다. 거대한 목표를 잘게 쪼개 각자에게 할당하고, 각자가 맡은 과업을 수행하는 방식이죠. 이 방식은 산업화 시대 내내 압도적인 효율성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구조 속에서 누군가는 목표를 설정하고, 누군가는 목표에 따른 업무 수행을 관리하며, 대다수는 촘촘히 쪼개진 과업을 수행하는 피라미드 구조 속에 살아왔죠.


과거에는 인간이 각 과정에서 맡은 부분만 처리하지만 AI 시대에는 개별 과제는 자동화


하지만 AI는 컨베이어 벨트를 해체합니다, 인간이 하던 각 과업을 AI가 하게 되니까요. 이제 컨베이어의 흐름에 있던 각 과제들을 AI가 대체하고 한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온전히 진행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누군가는 AI가 일자리를 위협한다고 경고하지만 우리에게 진짜로 필요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AI 시대 인간의 역할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인간과 AI는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가?


이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정해진 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회사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인데요. 실제 회사에서 AI를 적용하는 간단한 예를 들어 보죠.

1) 회의록 작성 : 이제 AI를 활용해서 자동으로 회의록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녹음 파일이나 녹취록은 누가, 어떻게 등록할까요? 그리고 완성된 회의록은 공유하는 방식은 무엇인가요?

2) 보고서 작성 : AI는 MS 워드(*.docx)나 구글 독스(*.godoc) 형태로 보고서를 만듭니다. 우리 회사는 한글(*.hwpx)이 공식 도구라면 어떻게 하나요? 이번 참에 워드로 바꾸나요?

3) 데이터 분석 : AI에게 주간 영업 실적 분석을 맡기고 싶습니다. 그런데 필요한 데이터는 회사 내부망의 ERP나 그룹웨어에서 내려받아야 한다면, 이 과정은 어떻게 자동화를 하나요? 아니면 데이터를 등록하고 내려받는 건 또 인간이 하나요?


흔히 AI 교육이라고 하면,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수준에서 진행하게 됩니다. 그 전후의 일은 수강생, 또는 각 회사들이 알아서 할 몫이죠. 위의 예시에서로 보면 데이터를 등록하고, 공유하는 작업들은 모두 인간이 처리해야 합니다. AI로 자동화를 위해 보조 작업을 인간이 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AX가 보기에는 멋있어 보여도 실제 도입하려면 해결할 과제가 꽤 많습니다. 이렇게 함께 고민해야 할 프로세스들은 그대로 둔 채 기술 도입만 앞세운다면 비용과 시간만 낭비하게 되죠. 그렇다고 완벽하게 해결될 때까지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앞서 언급한 '머니볼'의 방식을 다시 생각해 보죠. 그들은 '출루율'에 집중하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에 꼭 맞는 선수들을 선별적으로 '영입'했죠.


우리의 AI 도입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먼저 우리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해 우리만의 승리 공식(어디서 비효율이 발생하는가, AI로 무엇을 개선할 수 있는가)을 찾아야 합니다. 그다음, 그 공식을 가장 잘 실행시켜 줄 수 있는 AI를 선별적으로 '고용'하고, 필요하다면 기존의 프로세스도 과감히 변경해야 합니다.





대전환기에 살아남기 : 게임 체인저가 되자.


여기까지 설명을 마치자 미팅룸에 정적이 흘렀습니다. 얼굴에 자신감과 기대가 가득 찼던 송팀장의 얼굴은 어느새 당혹감과 실망으로 어두워져 있었죠.


최프로님, 그럼 교육 중심의 플랜은 일단 접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머니볼'이라는 영화는 저도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요. 제 기억이 맞다면, 그건 단장인 빌리 빈이 내부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위에서부터 밀어붙인, 일종의 '탑다운' 혁신이었잖아요?!

그럼 이 프로젝트도 최소 임원급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실무진 입장에서는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너무 막막한데요.


일단 송팀장부터 안심시켜야 했습니다. 계획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접근하는 순서만 조정하면 된다고 말이죠.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AI 교육을 하거나, 반대로 바쁜 임원들에게 길을 찾아달라 하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먼저 TF를 만들어서 구체적인 방향성과 그 근거를 만든 후 경영진의 승인을 받고, 이후 전 직원에게 확산시켜 나가는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TF에 대한 운영 방식도 몇 가지 제시했는데요.

방향을 논의하고 새로운 프로세스를 수립하기 위해 한 달간 매주 1회 워크숍을 진행한다.

워크숍은 일방적인 교육 방식이 아니라 우리 회사 만의 답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프로는 진행과 함께 AI 관련된 해법을 제시하고, F&B 멤버들은 내부 프로세스를 점검한다.


그리고 이 TF에 참여할 구성원들은 1) 각 팀의 업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일 것. 2) 팀 내에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일 것. 두 가지, 적어도 들 중 하나는 충족하는 사람이면 더 좋겠죠.


조용히 듣고 있던 송팀장은 그간 메모한 내용들을 살펴보다가 추가로 덧붙였습니다.


그럼, 판을 바꿀 수 있는 정예 멤버들을 구성해야겠네요.

하지만 말씀하신 조건이라면 각 팀의 에이스들이라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각 팀의 협조도 구해야겠지만 TF 구성원들의 동기부여도 문제죠. 왜 내가 이 프로젝트에 시간을 할애할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이왕 하는 거, 마지막 주차에는 임원 대상 최종 발표회를 열고 여기서 나온 성과를 연말 고과나 보너스 같은 확실한 인센티브와 연계하는 방안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이 부분은 제가 상무님 승인받고 다음 주까지 각 팀에서 참여할 후보들을 추천받아 명단을 정리하겠습니다. 그때 함께 킥오프 미팅을 시작하는 걸로 하시죠!


드디어 AX 프로젝트의 미래를 디자인할 첫 번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오를 시간입니다. 과연 어떤 얼굴들이 이 변화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될까요?!


이 연재는 대부분 제 실제 경험들을 토대로 하지만 연재 성격 상, 또 실명을 사용하기 어려운 환경 상 가상의 회사(가우스 F&B)에서 일어난 것으로 설정했습니다. 참고로 가우스 F&B는 웹툰이자 드라마인 '가우스 전자'의 세계관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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