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합
나는 그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참 힘들더라.
하지만 다합에 온 후로는 외로움이 많이 사그라들었어.
사람들과 함께 북적이며 살아서일까.
사실 이 무렵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이모님들과 함께 여행 중으로 매우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
나와의 연락은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지.
내가 뭘 하고 지내는지 알려주고 싶었는데 알려줄 시간이 없으니 불만이 쌓여갔어.
뭐가 문제인지 알기 때문에 다툼의 원인이 될 만한걸 방지하려면 어떡해야 할까 고민했어.
그래서 매일 밤 하루 동안의 이야기를 담은 일기를 적어서 그에게 사진 찍어서 보냈어.
매일매일 지루할 틈 없이 사람들과 재밌는 시간을 보내던 나는 일기장에 빼곡하게 글을 썼어.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말이야.
다합에서는 포르투에서보다 한식을 더 잘 챙겨 먹었어.
집에 사는 사람들과 공금을 거둬서 함께 밥을 해 먹었는데 요리는 주로 내가 담당했어.
요리하는 게 즐겁고 내가 요리한걸 맛나게 먹어줄 사람들이 많아서 좋았어.
가장 더운 낮에는 바다에 몸을 담그고 오후엔 아쌀라에 장을 보러 갔어.
장 봐온 것들로 요리를 하고 어깨를 부딪혀 가며 함께 밥을 먹었지.
다들 물에 다녀온지라 밥 두 공기는 거뜬히 먹더라고.
밥을 먹고 나서는 후식을 가운데 두고 이야기를 나눴어.
주로 프리다이빙이나 여행에 관한 이야기들이었어.
가족이 있는 한국이 아닌, 그가 있는 포르투가 아닌, 온전히 나 홀로 있는 다합에 가족이 생긴듯한 기분이 들었어.
다합의 가족 중에는 완이도 포함이었어.
완이는 내가 떠나기 몇 주 전부터 나와 룸메이트가 되었어.
여러 나라에서 몇 번이고 만난 덕에 내게는 참 친오빠 같은 친구였어.
나랑 완이는 다합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장난을 쳤어.
김현.
김완.
우리는 남매라고 말이야.
하필 둘 다 김 씨에, 외자인 데다가 하고 다니는 행색이 히피스러워서 모두들 속아 넘어갔어.
어떤 날은 다합의 가족들과 몇몇 분들을 더해 ‘라스아부갈룸’이라는 곳에 1박 2일 캠핑을 갔어.
블루홀에서 보트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폰도 터지지 않는 외진 곳이었어.
그에게 미리 1박 2일 동안 연락이 안 될 거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보트에 올랐어.
투명하게 비치는 물을 가르고 청량한 바닷 공기를 맡다 보니 어느새 라스아부갈룸에 도착했어.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이날 우리가 이 곳에 온 이유는 밤이 되어서야 알 수 있었어.
그건 바로 테세우스 유성이 떨어지는 날이었거든.
밤이 되고 레스토랑에서 기다란 매트를 끌어다 바다 앞에 깔고 누웠어.
모로코 사막에서보다 더 많은 별들과 은하수가 선명하게 펼쳐졌어.
떨어지는 별을 보며 소리쳤어.
“우와! 별똥별이다! 우와아아아!!!”
처음엔 그 개수를 세다가 나중엔 포기했어.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떨어졌거든.
별이 떨어지기 전에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길래 나도 도전했어.
넋 놓고 떨어지는 별을 기다리다가 막상 별이 떨어지니 놀라서 “엇 씨바- "라고 소원을 빌어버렸지.
부들부들.
다행히도 떨어지는 별이 하나 둘이 아닐 만큼 많았기에 소원을 나눠서 빌었어.
별 하나에 “제”
별 하나에 “이”
별 하나에 “랑”
별 하나에 “오”
별 하나에 “래”
별 하나에 “도”
별 하나에 “록”
별 하나에 “사”
별 하나에 “랑”
별 하나에 “하”
별 하나에 “게”
별 하나에 “해”
별 하나에 “주”
별 하나에 “세”
별 하나에 “요”
또 다른 날은 다합을 벗어나 고져스하게 샴엘셰이크에 호텔 올인크루시브를 즐기러 갔어.
멤버는 완이, 명근 오빠, 소리 언니, 재상 오빠, 지윤이, 인선 언니였어.
포르투갈-스페인-모로코에 이어 이집트에서 또 만난 완이,
포르투에서 제이와 먼저 만나고 나와는 다합에서 만난 부산 사나이 명근 오빠,
20년 지기와 함께 여행 중이라는 소리 언니와 재상 오빠,
명근 오빠랑 톰과 제리였던 타짜 지윤이,
내 룸메이트였던 인선 언니.
모두 노는 거 좋아하고 시끌벅적한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어.
이 멤버 리멤버라고, 우리가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건 안 비밀.
완이가 여기저기 전화해서 발품 팔아 준 덕분에 가성비 좋은 올인크루시브를 갈 수 있었어.
택시를 타고 여러 호텔들이 모여있는 샴엘셰이크로 향했어.
꼬불꼬불한 산길을 타고 붉은 산들을 지나 도착한 샴엘셰이크의 어느 호텔.
여행을 시작한 이래 누린 첫 호강이었어.
매번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다니던 날을 뒤로하고 2박 3일 동안 호사를 누리게 된 거지.
샴엘셰이크가 유명한 이유 중에 하나가 저렴한 가격의 올인크루시브였어.
이집트까지 와서 안 하면 섭섭하잖아.
점심 저녁으로 뷔페를 먹고 더운 낮에는 호텔과 연결된 바다에 스노클링을 하러 갔어.
첫째 날 밤에는 해변에 위치한 비치 클럽에, 둘째 날 밤에는 카지노에 놀러 갔어.
매일 즐길 수 없기에 특별했고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지낸 시간이 소중했어.
돈이 아깝지 않게 본전 뽑은 올인크루시브.
언젠가 그와 함께 이런 호사를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굳이 이집트가 아닌 어디서든.
시곗바늘이 흐르고 흘러 40일이라는 시간이 흘렀어.
다합을 떠나기 전에 가현 언니와 지훈오빠에게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어.
나라는 사람이 이 곳에 머물렀다는 흔적보다는 기억을 남겨주고 싶었거든.
내가 떠나기 며칠 전부터 다합엔 “Red Sea Cup”이라는 대회가 있었어.
한국 기록 보유자인 지훈오빠가 이 대회에 출전하기로 되어있었어.
그리고 난 아주 멋들어지게 지훈오빠를 응원하려고 준비에 돌입했어.
집 근처 천 가게 겸 수선집인 곳에 가서 하얀색 천을 사 왔어.
파리가 윙윙 날리는 문방구에 가서 페인트 마카도 색깔별로 사 왔지.
커다란 천에 지훈오빠를 응원하는 문구를 커다랗게 적었어.
요즘 초등학생들이 한 환경미화보다도 못한 실력이지만 이렇게라도 하고 싶었어.
만든 응원 플래카드를 블루홀 안에서 펼쳐 보였어.
물속이어서 소리 내 응원할 수 없었지만 최선을 다해 응원했어.
“읍읍읍 읍! 읍읍읍~!”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포르투인데.
짐을 싸는 내 손길이 느릿느릿했어.
아마도 정든 집과 정든 사람들과 정든 풍경을 떠나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야.
떠나는 날 아침 가현 언니와 작별을 인사를 나누고 카이로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어.
카이로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40일 동안 머문 다합에서 생활을 정리했어.
그리고 포르투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와 떨어져 지낸 3개월간의 여행을 정리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