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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n 02. 2019

손님들

포르투


창문 너머 빨간 지붕이 보였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올 것 같은 풍경이, 익숙한 풍경에 눈에 들어왔지.

정확히 3개월 만에 돌아오는 포르투였어.

잊어버리진 않았을까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자연스레 포르투갈어가 나왔어.

“Bom dia!”

짐을 찾고 출구로 나가니 카메라를 들고 있는 그가 보였어.

이런 날에도 그는 나의 모습을 기록해주고 있었어.




정각마다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

빨간 지붕의 채도 낮은 건물들,

셀 수 없이 많은 갈매기들,

눈에 보이는 Super Bock의 광고,

낯익은 거리와 풍경들.

집에 왔다는 느낌이 들었어.


기도 시간마다 울리는 코란 소리,

3층 이하의 낮은 회색 건물들,

셀 수 없이 많은 거리의 양들과 개와 고양이들,

눈에 보이는 아라빅 간판들,

그마저도 익숙해져 버린 거리와 풍경들.

지난 3개월 떠돌던 곳들이 떠올랐어.

하루 만에 이미 과거가 되었고, 추억이 되어버린.

한 여름밤의 꿈을 뒤로하고 오늘에 적응해야 했어.


[포르투갈] 이집트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된 나의 모습은 포르투갈과 어울리지 않았다.


포르투에 도착한 다음 날, 그와 나는 이사 준비로 정신이 없었어.

그의 집이 계약 만료로 인해 다른 집으로 옮겨야 했기 때문이야.

적응할 시간도, 쉴 시간도 없이 이삿짐을 챙겼어.

새로 옮긴 집은 방이 2개였고, 작지만 아늑한 매력이 있는 곳이었어.

하지만 집을 감상할 여유도 없이 짐도 풀지 못한 채로 장을 보러 갔어.

하필 이날 그가 그의 친한 형 두 분과 누나를 초대했거든.


오랜만에 Pingo Doce에 장을 보러 갔어.

몸이 기억하는지 필요한 재료를 사러가는 몸이 자동으로 움직였어.

고기는 여기, 채소랑 과일은 저쪽에.

아! 제일 중요한 술은 이미 바구니 안에.

3개월 만에 보는 점원도 반가웠고 3개월 전과 다를 것 없는 일상이 반가웠어.


[이사한 집] 창문을 열면 동화 속 풍경이 펼쳐진다.


부랴부랴 저녁 준비를 하니 집안에 한식 냄새로 가득 찼어.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유럽인데 이 집안의 풍경은 전형적인 한국이었지.

배추 된장국이 보글보글 끓고 있을 때 초인종이 울렸어.

요리에 집중하느라 약속 시간이 된 줄 몰랐나 봐.

도착한 사람은 병준 오빠와 누리 언니였어.

언니와 오빠는 무쏘를 타고 세계여행 중인 커플이었어.

뒤이어 도착한 사람은 코쿠 오빠였어.

그의 친한 지인을 만나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긴장했어.


괜히 식사를 준비한다고 했나?

음식이 맛이 없으면 어떡하지?

집이 정리가 되면 초대할걸 그랬나?

내면에 물음표가 가득했어.


식사가 시작되고 자연스레 술자리로 이어졌어.

모두들 음식을 맛있게 드셔 주신 덕분에 광대뼈가 으쓱해졌어.

맥주도 마시고 아주 오랜만에 마시는 포트와인도 마시고.

으쓱해진 광대뼈가 불그스름하게 물들었어.

모두들 여행에 뼈가 굵으셔서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지.


포토그래퍼인 코쿠오빠는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남겨줬다.


병준 오빠와 누리 언니는 집에 남는 방에서 3일을 묵었고,

코쿠 오빠는 잠시 프랑스에 다녀오고 나서 똑같이 남는 방에 2일을 묵었어.

첫날 긴장했던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함께 지내는 동안 집에 온기가 돌아서 좋았어.

내가 한 요리를 사람들에게 먹이는 걸 좋아하는 나는 매일이 재미있었어.

어떤 날은 소고기덮밥, 어떤 날은 오리엔탈 파스타, 어떤 날은 돼지고기 짜글이.

매일 밤 술과 이야기도 놓칠 수 없는 묘미였지.


모두가 떠나고 며칠 뒤 포르투에는 나의 손님이 찾아왔어.

한국에서 친한 동생인 지연이가 첫 해외여행을 포르투로 왔어.

굳이 내가 있는 포르투로 온 지연이는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어야 덜 무서울 거 같다고 말했어.

내 친지를 포르투에서 만나다니.

너무너무 반갑고 신이 났어.


사람들을 집에 초대해 내 요리를 대접하는 것. 포르투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취미였다.


하지만 지연이가 왔다고 해서 함께 여행을 다니고 하지는 않았어.

혼자 비행기를 타고 아주 먼 곳에 여행을 오는 경험.

평생에 몇 번이나 해보겠어?

타지에서 혼자인 시간을 즐겨보길 바랬어.

밤이면 지연이를 불러 같이 밥을 해 먹었고 포르투에 지내는 친구들을 불러 함께 술을 마셨어.

지연이가 떠나는 날이 되자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마음을 숨겼어.

그리고 한국에서의 만남을 기약하며 작별인사를 나눴지.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고 만나는 날이 늘어갈수록

우리는 우리의 생활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사람을 공유하게 되었어.

그의 사람은 나를 알게 되고,

나의 사람은 그를 알게 되었지.


그의 사람을 알게 된다는 건 그를 더욱 알게 되는 방법 중 하나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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