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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n 20. 2019

제이와 미니

포르투

베레모, 멜빵, 파란색 미니.

대부분 제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 세 가지.

파란색 미니를 타는 베레모를 쓰고 멜빵을 한 제이.

저 친구는 어떻게 포르투갈에서 차를 타고 다니는 거지?

하고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래서 미니와의 만남과 이야기를 풀어보려 해.




미니를 처음 만나게 된 건 제이와 함께 다녀온 포르투갈 남부 여행에서였어.

여행이 끝나고 리스본에 잠깐 경유하게 됐을 때,

제이는 마음에 드는 차량이 매물로 나왔는데 그 차가 리스본에 있다고 했어.

함께 가보자는 그의 말에 나야 그가 차를 워낙 좋아하는 걸 알고 있으니 오케이 했지.

리스본에 있는 이케아에서 만나는 것으로 약속을 잡고 차주와 만나기로 했어.


집이 따수워 보이는 커플이 미니를 타고 이케아로 들어섰어.

난 보자마자 촌년처럼 말했어.

“우와.. 까리하다.”

미니와 첫 만남을 가진 제이의 눈도 초롱초롱 빛났어.

시승을 위해 운전석에 오르자마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연신 해맑게 웃어 보였어.

“헤헤”

그 모습이 언뜻 날아라 호빵맨과 닮아 있었어.

귀여워라:)


[리스본] 광대승천한 그의 옆모습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신났는지 알 수 있다.


이 날 본 미니는 그가 포르투로 오기 전 한국에서 타던 차와 거의 흡사하다고 했어.

교환학생을 준비하면서 한국에서 타던 차를 정리했다고 들었는데.

그의 눈을 확 사로잡은 차가 원래 타던 차와 흡사하다니.

‘설마 진짜 사려는 건 아니겠지?’라고 생각했어.

설마는 늘 사람을 잡는다는 걸 왜 매번 까먹을까.


미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제이는 미니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했어.

마음에 쏙 들었나 봐.

어쩌면 보자마자 어떤 짤의 “어머! 이건 사야 해!”처럼 마음을 굳혔는지도 몰라.

리스본을 다녀온 지 이주일 후, 그는 다시 리스본으로 향했어.

기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갔던 그는 파란색 미니를 타고 포르투로 돌아왔지.


차가 생긴 후로 우리의 포르투 생활은 조금 달라졌어.

우선 엄청 편리해졌어.

포르투갈의 특성상 언덕이 많아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이 많이 힘들었거든.

10kg짜리 쌀이라도 사는 날엔 각오해야 했어.

쌀이나 물처럼 무거운 것을 사러 가는 날에는 제이가 함께 가줬어.

물론 차를 타고 말이야.


이 사진들만 보아도 얼마나 차를 좋아하는지, 아니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제이의 일이 없는 날이면 차를 타고 근교로 향했어.

포르투갈에서 학술로 유명한 코임브라로,

북부의 종교 도시인 브라가로,

포르투갈의 왕조가 시작된 기마랑이스로,

줄무늬 마을로 유명한 코스타노바로,

옆 나라 스페인으로.

포르투갈이 하필 톨게이트 비용이 엄청 비싼 나라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다녔었어.


그와 함께 길을 달릴 때는 늘 크게 음악을 틀었어.

그리고 뚜껑을 열고 바람을 느꼈지.

그럴 때면 로맨스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어.

지나가는 차들 중 몇몇이 우리를 쳐다보곤 했어.

동양인이 몇 없는 포르투갈에서 차를 타고 달리는 우리가 신기했나 봐.


차가 생긴 후로 그에게 새로운 취미가 생겼어.

바로 세차야.

세차하러 나면 기본 두 시간에서 세 시간은 걸려.

혼자만 하면 좋을 것을 굳이 나와 함께 하려 해.

그와 함께 하는 것은 뭐든 좋지만 세차는 별로…

세차만 세 시간이라니 말도 안 돼.


결국 공주가 탈 마차를 닦고 있는 기면 공주. 그냥 노비라고 말해줬으면..


“자기야, 날도 좋은데 우리 어디 놀러 갈까?”

“어디로?”

“날이 좋으니 세차하러 가자!”

“응~싫어.”

“왜?”

“가면 또 두 시간, 세 시간 동안 할 거잖아.”

“공주가 탈 마차는 공주가 세차해야지!^^

시대가 어느 때인데!”

“헐.. 어이없어.”


유럽의 특징이 기차를 타고 다른 나라로 가거나, 기차 여행을 할 수 있는 건데.

포르투에 지내는 동안 난 해본 적이 없어.

대중교통도 물론 타본 적이 없지.

그래서 불만이냐고?

전혀! 그럴 리가 없지.

일반적으로 남들이 못하는 것을 누리며 살았으니까.


홀로 여행을 떠나는 날, 나를 공항에 데려다준 것도.

돌아온 나를 공항에 마중 와준 것도.

미니를 탄 제이였어.

우리의 추억이 더 멋져진 것도.

우리의 생활이 좀 더 편해진 것도.

미니 덕분이었어.


그에게 파란색 미니는 참 잘 어울린다. 내가 그에게 잘 어울리는 것처럼:)


어찌어찌해서 한국에 돌아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파란색 미니도 우리보다 늦게 배를 타고 한국에 들어왔어.

유럽에서 달리던 미니를 한국에서 보니 느낌이 엄청 이상하더라.

여행 나간 자식이 돌아온 기분이 들었달까.

포르투갈에서의 추억이 한국까지 이어지게 된 거야.


미니는 나와 제이의 추억에 몇 퍼센트의 지분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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