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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n 27. 2019

세 번째, 영국

런던

첫 번째 영국은 2014년 첫 유럽여행 때,

두 번째 영국은 2018년 홀로 나선 여행에,

세 번째 영국은 2018년 제이와 함께.

이 차가운 회색빛 도시를 제이와 함께 오길 바랬었어.

바람이 이루어진 건 5개월이 지난 어느 늦가을이었어.

날카로운 바람이 부는 우중충한 런던에 손을 마주 잡은 우리가 발을 디뎠어.




영국의 물가는 다들 알고 있을 거야.

뭐 하나 사려고 해도 후덜덜한 가격에 화들짝 놀라고 말지.

우리는 다행히도 챙겨간 통조림과 햇반, 누룽지 등으로 끼니를 해결했어.

물도 웬만하면 탭 워터를 마셨어.

확실히 밥 값을 아꼈을 뿐인데 경비 절약이 됐어.


나는 비싼 물가와 차가운 느낌의 영국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단 하나 좋은 점을 꼽자면 내가 좋아하는 박물관이 공짜인 점이야.

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지만 보는 것도 좋아해.

그림 속에 얽혀있는 이야기들과 그림을 매치하는 것을 아주 좋아해.

그래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박물관은 단연 내셔널 갤러리야.

내셔널 갤러리에 꼭 그와 함께 오고 싶었어.


내셔널 갤러리로 향하는 길이 너무 설레었어.

제이에게 그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고 싶어서 며칠 전부터 E-BOOK으로 공부도 했어.

유명한 그림을 마주하자마자 그에게 설명을 시작했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처럼 옛날 얘기 들려주듯이 말이야.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를 보며 어깨가 으쓱해졌어.

“우와! 자기는 이렇게 교양 있는 여자였구나:)

이런 건 어디서 배웠어?”

“원래 그림 좋아해서 관련 서적만 찾아서 엄청 읽었어! 헤헤”

으쓱으쓱.


그래. 제이 하고싶은거 다 해~


엄마들이, 선생님들이 왜 주의력 산만한 어린아이에게 화를 내는지 곧 알게 되었어.

몇 그림이나 봤을까.

그의 집중력이 바닥이 나기 시작했나 봐.

그림 설명을 하다 뒤를 돌아보니 그는 그림과 사진을 찍고 있었어.

그림 속 사람과 얼굴 바꾸기를 하면서.

“와하하핫! 자기야 이것 좀 봐! 짱 웃겨!”

“응.. 자기나 실컷 해”


내셔널 갤러리에서 나와 코벤트 가든으로 향했어.

제이의 대학교 후배인 현숙이가 뮤지컬 ‘라이언 킹’의 표를 싸게 구해줬거든.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광장에서 코벤트 가든까지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어.

걸어가면서 거리 구경을 하기 아주 좋았지.

런던 특유의 비비드한 화려함이 나를 외롭게 만들었었는데 제이와 함께 걸으니 비비드한 화려함이 싫지 않았어.

아마 함께여서 외롭지 않아서가 아닐까.


도착한 극장 주변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로 붐볐어.

지극히 도시스러운 풍경이었지.

화려한 네온사인과 여러 뮤지컬의 광고들로 무척이나 밝은 밤이었어.

제이와 나는 현숙이에게 표를 받고 극장에 들어섰어.

극장에서 뮤지컬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

하지만 처음인 나보다 더 들떠 보이는 건 제이였어.

호빵맨 같은 얼굴로 여기저기 구경을 하고 있는 제이를 보니 너무 귀여웠어.

연극 ‘뽀로로’나 ‘콩순이’를 보러 온 어린이 같았어.


세상 행복해 보이는 제이:)


“아~ 그랬냐~ 발바리 치와와”

뮤지컬이 시작됐어.

웅장한 음악과 우아한 춤사위,

화려한 조명과 어떻게 저렇게 만들었지? 싶은 의상.

모든 것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뮤지컬이구나 하고 또 하나의 문화에 눈을 떴어.


밤이 깊어질 무렵엔 동행을 구해서 함께 밤거리를 거닐었어.

차이나 타운이나 소호에서 술을 마시기도 했지.

지독한 외로움에 눈물 지었던 5개월 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어.

제이가 곁에 있었고, 함께 이 도시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너무 특별했거든.

외로울 틈이 없었어.


도시를 거니는 와중에 제이의 머릿속에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갈 때면 걸음을 멈췄어.

“나 어릴 때 여기서 사진 찍었던 것 같은데! 잠깐만.”

그는 폰을 꺼내 사진첩을 뒤졌어.

사진 속에는 어린 제이가 우리가 서있는 곳을 풍경으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어.

“하하. 여기 맞네. 자기야 나 사진 좀 찍어줘!”

여전히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그를 카메라에 담았어.

어린 제이가 어른 제이가 되어 다시 찾은 런던.

그의 마음은 어떨까 궁금했어.



영국에 도착한 지 3일째 되는 날.

부슬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날이었어.

제이와 나는 또 다른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웨일스의 수도인 ‘카디프’행 버스에 올랐어.

5살 어린아이였던 그와 그의 가족이 살았던 동네인 카디프.

그의 추억을 여행하기로 했어.

가장 특별하고 값진 여행이 시작되었어.


우리는 특별한 여행에서 특별한 사람을 만나기로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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