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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면씨 Jul 09. 2019

추억 여행-첫 번째

카디프


달걀 두 알, 페퍼민트 티.

외국인스러운 아침을 먹고 외출 준비를 했어.

오늘 외출엔 로저 선생님도 함께 였어.

제이와 나, 로저 선생님이 나란히 집을 나섰어.

우리는 시간을 여행하기로 했어.

제이의 추억을 쫒는 여행을 말이야.




로저 선생님의 차를 타고 한적한 주택가를 지나 숲을 끼고 달렸어.

차는 어떤 작은 초등학교 앞에 멈춰 섰어.

5살 어렸던 제이가 다녔던 초등학교였어.

영국의 학교는 외부인은 출입하지 못하게 경비가 삼엄했어.

우리는 초인종을 누르고 관계자에게 이야기했어.

여기 다녔던 5살 꼬마가 커서 왔다고.

관계자는 너무 신기해하며 흔쾌히 우리를 들여줬어.


난 버릇처럼 그에게 물었어.

“기분이 어때?”

“모르겠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이상해.”

우리는 벽에 붙은 교직원 사진과 이름을 보다가 뜻밖의 인물을 보고 크게 놀랐어.

제이의 담임 선생님이었던(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분이 여전히 학교를 다니고 있었어.

“와.. 대박이다. 이 선생님이 내가 보여준 사진 속 선생님이야. 아직 여기에 계시다니..”

제이의 담임 선생님은 아쉽게도 감기로 결근 중이었어.


대신 제이가 학교를 다닐 때 계셨던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어.

이 선생님도 22년 동안 학교를 지키고 있었던 거야.

뚱뚱한 여자 선생님은 제이를 보자마자 말했어.

“Wow! You are Gee Hyoun Park. right?”

(“어! 너 박지현 맞지?”)

맙소사.

22년 만에 만난 그를 기억하다니.

그것도 이름을 정확히 말하다니.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상냥함만큼은 기억이 난다는 제이.


어렸던 제이가 장염에 걸렸던 날이었어.

장염에 걸린 채로 학교에 갔는데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 거지.

제이가 바지에 응가를 싼 거야.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했을 제이.

“My belly is stormy..”

(“내 배가 요동치고 있엉.”)


그런 제이를 더럽게 쳐다봤다는 뚱뚱한 여자 선생님.

제이는 응가를 해서 자기를 기억하는 걸 거라고 추측했어.

그리고 덧붙여 말했어.

“저 선생님이 그땐 엄청 젊었거든.

이제 막 선생님이 됐었어서 어떡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을 거야.”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서 학교 안으로 발을 들였어.

제이는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기억이나 할까.

당장 10년 전만 해도 인종차별이 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려 20년 전에 제이가 살았던 이 작은 세계는 어땠을까.

어린 그가 잘 적응하고 견뎌낼 만했을까.


선생님의 결근으로 혼자서 똑같은 자리에 서 본 제이.


아직 어린아이들이 뛰노는 운동장.

까만 머리의 아이는 보이지 않았어.

온통 금발 머리, 연갈색 머리의 아이들만이 있었어.

운동장을 주욱 훑어보았어.

어렸을 그의 흔적이 묻어있는 작은 놀이기구들에 시선이 머물렀어.

작은 손으로 만졌을 놀이기구들이 사랑스러워 보였지.


우리는 급식실에 도착했어.

우리가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쯤이어서인지 아직 식사를 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었어.

그 가운데 눈에 띄는 한 아이가 있었어.

동양인 남자아이 었어.

그때 괜히 마음이 울컥했어.

어렸던 제이도 백인 아이들 사이에 둘러싸여 저렇게 밥을 먹었겠구나 하고.


학교를 둘러보며 어린 제이를 향한 걱정 어린 마음에 울컥했던 마음이 들었어.

하지만 그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어.

야무지고 똑똑한 어른 제이를 보면 내 걱정이 무색하게 어린 제이 또한 야무지고 똑똑했을 테니까.

후에 제이의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는 자기를 인종 차별하는 외국인에게 못되게 굴었었대.

아주 제이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났었다니까.


제이의 이름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던 선생님. 선생님, 이제 제이는 바지에 똥 안 싸요:)


우리는 학교를 나와 차를 달려 제이가 살았던 집으로 향했어.

정확한 위치가 기억나지 않아서 옛날 사진을 찾아서 비교해 봤어.

잔디가 있었던 것과 차고지의 색깔, 벽돌 색을 맞춰 봤어.

얼추 비슷한 집을 찾았고 제이는 집 앞에서 옛날 사진 속 모습과 비슷한 모습으로 사진을 찍었어.

작았던 제이는 커졌고, 컸던 로저 선생님은 작아졌어.


어린 제이를 만난 하루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가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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