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면씨 Aug 01. 2019

여인의 섬과 마라톤

칸쿤

부들부들.

습한 날씨를 느낄 겨를 없이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아침을 맞이했어.

새집이 진 머리를 손으로 대충 빗어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어.

내 침대는 2층 침대였는데 바로 반대쪽에 2층 침대에 제이가 있었어.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총총 걸어서 제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의 커튼을 쳤어.

입을 헤- 벌리고 꿀잠을 자고 있는 그를 흔들어 깨웠어.

“일어나! 아침 먹으러 가자!”




호스텔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조식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어.

앗! 이런..

우리가 조금 늦게 일어났나 봐.

조식을 다 치우고 몇몇만이 남아 조식을 먹고 있더라고.

허망하게 방으로 돌아온 우리는  나갈 준비를 했어.

멕시코에 왔으니 화려한 패턴으로 꾸며줘야겠다 싶었어.

제이와 나는 화려한 패턴의 옷을 꺼내 입고 호스텔 입구로 걸어 나갔어.


후욱하고 숨이 막힐 듯 뜨거운 날씨에 땀이 삐질삐질 났어.

에어컨이 빵빵한 호스텔 밖으로 나가기가 무서워졌지.

제이와 마주 잡은 손에 땀이 찼어.

호스텔 맞은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생각으로 도로를 건넜어.

허름한 레스토랑의 한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후 덥다 더워.


나는 스파게티와 코로나 맥주를,

제이는 팬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어.

우리 취향 참 다르지?

인중을 타고 흐르는 땀 덕분에 스파게티는 짭짤했어.

간이 짭짤할 땐 코로나 맥주를 마셨어.

이 더운 날, 목젖을 찰싹찰싹 치는 맥주 맛이란.

먹어본 자만 알 테지.


외국 음식은 햄버거와 피자 말고는 먹을 수 있는 게 없는 제이와는 달리 나는 뭐든 잘 먹었다.


허기진 배를 급하게 채우고 한결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제이에게 물었어.

“우리 오늘은 뭐행?”

“오늘은 이슬라 무헤레스에 갈 거야!”

“그게 어딘데?”

“여인의 섬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칸쿤보다 거기가 더 좋아!”

그리고 제이는 곧 레스토랑의 주인에게 페리 터미널로 가는 버스 번호를 물었어.


부우웅-

저 멀리 우리가 타야 할 버스가 보였어.

우리는 다 낡은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어.

터덜터덜 달리는 버스는 페리 터미널에 도착했어.

제이와 나는 곧장 티켓 오피스로 갔어.

그곳에서 이슬라 무헤레스로 가는 티켓을 왕복으로 구매했지.

여전히 손을 마주 잡고 있는 우리는 페리에 오르기 위해 카리브 해변을 거닐었어.


페리에 오른 우리는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람을 느꼈어.

눈이 시리게 푸르른 민트색 물길을 얼마나 달렸을까.

아담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어.

이윽고 배는 잔잔한 파도를 만들며 점점 섬과 가까워져 갔어.

페리에서 내리자 여기저기 보이는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어.

Bien Venido!

(환영합니다.)


여인의 섬에 있는 여신상. 다들 여신상을 쓰다듬길래 따라 해 보았다.


페리 터미널을 등지고 발걸음을 옮겼어.

어디론가 향하는 제이에게 물었어.

“우리 지금 어디 가?”

“골프 카트 빌리러 가야 해.”

“그게 뭐야?”

“골프장에서 왔다 갔다 할 때 타는 거! 이슬라 무헤레스는 작아서 그거 타고 다 돌아다닐 수 있어!”


땡볕 아래 여러 군데 돌아다닐 필요도 없었어.

우리는 페리 터미널을 나오며 렌탈 업체의 전단지를 받았거든.

전단지에 적힌 업체로 가서 골프 카트를 빌렸어.

이 쪼매난게 얼마나 씽씽 달리는지.

속이 후련하더라니까.



골목골목을 달리고 동쪽에서 서쪽까지 달렸어.

어느 해변에 잠깐 카트를 세우고 ‘피냐 콜라다’를 마셨어.

피냐 콜라다는 럼을 베이스로 한 파인애플 맛의 칵테일인데 제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이야.

우리가 자리 잡고 앉은 곳 바로 옆에는 어떤 가족이 여행을 왔는지 라틴음악을 틀고 신나게 놀고 있었어.

그들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냐고 말을 걸었어.

“이야~ 너네 어디서 왔어?”

“우리는 한국에서 왔어!”


라틴음악에 신도 나고 그들과 함께 나눠 마신 위스키에 더 신이 나고.

그래서 춤이 절로 나오더라고.

덩실덩실 탈춤을 춰버렸지.

바다 위로 일렁이는 해는 잘 그라데이션 된 어느 칵테일처럼 선셋을 만들어 냈어.

바닷속으로 해가 완전히 잠길 때까지 우리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어.

하늘이 깜깜해지고 나서야 페리를 타러 갔어.




다음날, 전날과 마찬가지로 빵빵한 에어컨에 닭살이 돋은 팔을 쓸며 일어났어.

여전히 잠을 자고 있는 제이를 깨워 조식을 먹으러 레스토랑으로 내려갔어.

원하는 재료를 선택하면 만들어 주는 오믈렛과 빵, 시리얼 등 꽤 괜찮게 준비되어 있더라고.

오물오물 오믈렛을 먹으면서 제이에게 말했어.

“우리 오늘은 푹 쉬자. 어때?”

“좋아! 사진 보정도 하고 좀 쉬어야겠어. 근데 우리 플라야 델 카르멘 가는 버스 티켓 알아봐야 해.”

“천천히 다녀오지 뭐:)”


이 놈의 날씨는 정말, 12월인데 어쩜 이렇게 더운지.

꾸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버스를 타러 나왔어.

버스 안에 가득한 현지인들은 우리를 흘끔흘끔 몰래 훔쳐봤어.

내가 너무 쨥쨥 거리면서 젤리를 먹어서 그런가..

낡은 버스는 지난밤 우리가 이슬라 무헤레스로 왕복했던 페리 터미널을 지나 칸쿤의 중심지로 향했어.

버스를 타고 도착한 버스 터미널은 생각보다 깔끔했어.


이 회사, 저 회사 가격을 비교해봐도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터미널 길 건너편에 있는 꼴렉티보(미니 벤)에 가서 가격을 물어봤어.

엄마야? 가격이 거의 반값이더라고.

두 말할 필요 없이 예매하려니 직원이 예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어.

내일 그냥 타러 오면 된다고, 차는 많다고 말이야.

“그래? 알았어! 내일 올게!”


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호스텔로 돌아갈까 하다가 칸쿤에 단 하나 있다는 스타벅스로 걸음을 옮겼어.

시이이이이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만 생각하고 뙤약볕 아래를 걸었어.

30분쯤 걸었을까.

초록색의 동그라미 속에 세이렌이 우릴 향해 미소 지어 보였어.

더위를 먹은 건지 내 눈엔 그렇게 보였어.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파라다이스를 즐겼어.

제이는 그간 못했던 사진 보정을 하기 시작했지.

제이가 일을 할 동안에 나는 메모장에 글을 열심히 끄적였어.

이때, 이 순간의 상황과 기분을 잊고 싶지 않았거든.

기억이라는 건 휘발되어 잊혀지기 쉽잖아.


호스텔로 걸어가는 길에 만난 하늘색은 어여뻤다.


몇 시간이 지나고 호스텔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고 거리로 나왔어.

그런데 이상하지?

차가 한대도 안 보이는 거야.

길은 한 길 뿐이라 돌아가기도 뭣하고 해서 마냥 걷기로 했어.

걷다 보면 버스나 택시라도 한 대 지나가겠지 싶어서.


터덜터덜 걷고 있는데 스쿠터 한 대가 우리를 추월했어.

스쿠터 뒤로 몇몇 사람들이 쏜살같이 달려서 우리를 추월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에는 번호판이 붙어 있었어.

세상에..

하필 이 구간에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던 거야.


황당하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그 마음도 잠시 이 순간을 즐기기로 했어.

마라톤 때문에 길을 막아놓고 차가 못 다니게 하는,

그래서 나와 제이가 마라톤 길을 걸어서 가야만 하는 이런 상황.

재미있잖아.



어디서도 할 수 없는, 하고 싶지도 않은 경험일 테고.

손을 펼쳐서 선수들에게 내밀어 보였어.

선수들은 웃으며 내 손에 하이파이브를 해주며 지나갔지.

난 선수들에게 외쳤어.

“Vamos!!!”

(“가자!”)


우리는 네 시간을 걸어서 호스텔에 도착했어.

발바닥은 퉁퉁 부어 있었고, 땀이 난 살은 끈적끈적 해져 있었어.

눈이 마주친 제이와 나는 허탈한 웃음이 새어 나왔어.

쉬겠다고 한 날인데 쉬지 못한 날, 이 마저도 여행 같아서 좋았어.

큽크크큭.

동시에 배에선 꼬르륵 소리가 났지.

“밥 먹으러 가자:)”


가장 왼쪽의 빨간 포인트부터 가장 오른쪽의 빨간 포인트까지 걸어가야 했다.


멕시코에서 여행은 이제 시작일 뿐인데 벌써부터 흥미진진하지?

매거진의 이전글 제이의 빅 픽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