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너의 도시, 서울
당신에게 서울은 어떤 곳인가? 우리나라의 수도이자 최대 도시. 누군가에게는 드라마 속에서 봤던 곳. 꿈과 기회가 있는 곳. 답답하고 정신없는 곳. 다양한 모습을 가진 도시인만큼, 제각각 다른 답변을 내놓을 수도 있겠다. 고향이라는 말이 안 어울리는 곳이지만 내게 서울은 고향이다.
19살 때까지 나는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그리고 스무 살, 충청도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고 서울을 떠나 처음으로 다른 지역에 살게 됐다. 내가 다니는 대학은 ‘리’ 단위에 위치해 있고 나는 그곳에서 3년째 생활하고 있다. 이제야 뭐 적응이 됐지만 아, 처음 갔을 때는 생각보다 많은 제약에 힘들었다. 무엇보다 힘든 건 60분에 한 대, 70분에 한 대씩 오는 버스였다. 놓치면 다시 기숙사로 돌아가는 게 답. 차 없는 대학생에게는 시내로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버스가 이런 상황이니, 남는 시간에 문화생활을 하기도 맛집에 가기도 쉽지 않다. 20여 분 걸어가면 나오는 시내에 자리를 잡은 프랜차이즈는 역시나 롯데리아뿐이다. 서브웨이가 먹고 싶어 다른 시로 건너갔다가 현타가 제대로 오기도 했다. 이야기할 건 많지만, 푸념은 이쯤에서 그만 해야겠다.
울산 MBC 예능 <경성판타지>를 제작한 정상민 PD 또한 서울에서 태어나 쭉 살다가 울산 MBC 입사로 타지인 울산에서 생활하게 된 경우라 한다. 지방 생활을 하며 서울 판타지를 직접 느낀 것이 <경성 판타지>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됐다. 정상민 PD가 느낀 서울 판타지, 나도 대학에 와서 체감했다. 대학에는 서울 외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훨씬 많다 보니 그들이 이야기하는 서울에 대한 판타지를 많이 듣게 된다. 잘 갖춰진 인프라, 교육 환경, 교통, 손쉬운 문화생활, 다양한 기회들. 나는 서울이 아닌 지역에서 생활하고, 다른 지역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나서야 그러한 서울 판타지가 마냥 근거 없지 않음을, 그리고 지역 불균형을 목격할 수 있게 됐다.
작년 4월, 울산 MBC에서 시작한 예능 <경성판타지>는 ‘지역민의 눈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서울을 보여준다’는 목표로 지역민들의 서울 여행기를 다룬 지역방송 최초의 관찰 예능이다. 서울이 아닌 지역민들의 시각에서 진행되는 이 예능은 한마디로 대박이 났고, 현재 MBC 본사에서도 ‘MBC 네트워크 특선’으로 화요일 12시 25분에 방영되고 있다.
지난 18일 ‘MBC 네트워크 특선’에서는 남해 고등학생 3인방의 서울 여행기 3화가 방영됐다. 꿈으로 가득 찬 발랄하고 싱그러운 모습들이 돋보이는 화였다. 남해에서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는 여고생들인 만큼 서울에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았다. 3박 4일의 일정은 그들의 부푼 마음과 함께 꽉꽉 채워졌다.
꿈을 만나러
남해 소녀들의 빼곡한 ‘경성 판타지 리스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그들의 꿈이었다. 남해 여고생들의 <경성 판타지> 첫 화 또한 꿈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했다. 세 명 모두 자신만의 관심사와 꿈이 있었고, 아직은 멀게만 느껴지는 꿈에 대해 궁금한 점도 있었다. 4일간의 서울 여행의 대부분은 그 꿈의 현장들을 찾아가 어떻게 준비하면 될지, 어떠한 직업인지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들로 채워졌다. ‘노래를 분위기에 맞게 골라주는’ 일을 하고 싶지만 정확히 어떤 직업이 있는지는 몰랐던 은재는 MBC에서 라디오 PD를 만났고, 가수가 되고 싶은 은지는 홍대에서 버스킹도 해보고, 음악 입시 학원에 가 조언을 듣기도 했다. 다음화에서는 연예부 기자를 꿈꾸는 신영이도 신문사에서 기자와의 만남으로 꿈에 대해 더욱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공부
본인의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한 첫 단계로, 고3, 고2인 그들 앞에 놓인 과제는 공부와 입시다. 학원이 거의 없는 남해에 살기에 사교육이 성행하는 서울의 학생들은 어떻게 공부할지 그리고 자신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그들은 궁금했다. 그래서 대치동 입시학원과 ‘공신’ 강성태를 찾아갔다. 대치동의 사교육 인프라는 국내 최고이고, 역시나 그 안의 학생들은 금속탐지기로 휴대폰 검사를 받으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었다. 하지만 대치동 학원 강사도, 강성태도 남해 학생들에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사교육과 그 안의 치열한 경쟁과 정보에서 멀어진 상황에서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상황에서 두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서울에서 얻고 가는 것이 단순한 부러움과 불안함이 아닌,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동기이기에 다행이다.
덕질도 서울이다?!
남해 학생들의 최대 관심사, 바로 엑소다. 집은 엑소 앨범과 굿즈들로 가득하고, 호텔에서 그들만의 카이 생일 파티를 여는 진짜 덕후다.
하지만 SNS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말이, 덕질은 서울 아님 서럽다는 이야기다. 카이의 생일을 축하하는 지하철 전광판 광고도 버스 광고도 남해에서는 만나보지 못한 것들이다. 이처럼 은 덕질 문화가 서울 위주로 이루어지고, 콘서트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열린다. 서울 외 지역에 산다면, 오프라인 활동은 하기 어렵거나 훨씬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세 소녀의 서울 여행은 달콤 쌉싸름했다. 그들의 여행은 물론 상큼 발랄했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엔 내가 다 설렜다. 하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서울에 대한 판타지와 설렘 뒤에는 지역 불균형이라는 쌉쌀한 고질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서울이라는 도시만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진 상황이다. 모든 것이 서울로 모이고, 거의 모든 것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간다. 이는 방송에서도 마찬가지다. 서울 내의 이야기나 서울의 시선이 방송의 주가 된다. 각 지역이 주체가 되어 그들의 시선과 그들의 목소리가 담긴 <경성 판타지>와 같은 프로그램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한편 이러한 서울을 다룬 지역 방송이 서울에서 방영되는 것은 또 다른 의미성을 더해준다. 지역 사람들이 <경성 판타지>를 보며 주로 공감했다면, 서울 사람들에겐 서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외부의 시선으로 서울의 풍경이 낯설게 보는 경험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지역에서는 서울을, 서울에서는 지역의 시선을 마주하며 서로의 틈을 발견하게 하는 프로그램이 바로 가장 부드러운 방법으로 가장 와 닿게 지역 균형 발전에 대한 논의까지 나아가게 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MBC 네트워크 특선 <경성판타지>는 화요일 오후 12시 25분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