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씽크 2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현주 Aug 07. 2019

세련된 진부함에 질릴 때, B급 감성을 섞어보자

<놀면 뭐하니?>, MBC 예능에도 찾아온 뉴트로 디자인(?)

공중파 예능의 디자인. 체계적이고 깔끔하고, 세련됐죠. 하지만 기성품처럼 비슷비슷한 예능 디자인에 좀 무뎌진 건 사실입니다. 예능을 볼 때, 영상 디자인의 존재를 인지조차 못하기도 합니다. 

최근 시작한 김태호 PD의 예능 <놀면 뭐하니?>의 디자인은 좀 달랐습니다. 그간의 무뎌짐을 깨고 영상 디자인에 눈이 가게 할 정도로 새로웠습니다. 영상 참 개성 있게 잘 만들어내는 유튜브 채널(개인적으로 72tv나 위아워어스(WEOURUS) 같은 채널..)을 볼 때 느꼈던 영상미로 인한 즐거움을, 거의 처음으로 TV 방송을 보며 느낀 것 같습니다.

특히 예능에서 흔히 보지 못한 B급 감성의, 소위 힙한 디자인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방송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프로그램의 색깔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키고 강조합니다. 그렇다면 <놀면 뭐하니?>의 그 힙하고 색다른 디자인은 어떠한 프로그램 아이덴티티를 반영하고 있는지, (디자인 알못이지만... 동경의 눈빛으로) 한 번 살펴봤습니다.


<놀면 뭐하니?>는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다'는 말처럼 우연을 따라가는 프로그램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제작진이 짜 놓은 틀에서 출연자들이 맡은 캐릭터를 소화해내는 것이 아닌, 출연자 한 명 한 명의 선택과 행동이 프로그램을 흘러가게 만드는 예능입니다. '릴레이 카메라'에서 볼 수 있듯 카메라를 받은 출연자가 누구에게 카메라를 전해줄지에 따라 다음 출연자로 누가 나올지가 결정됩니다. 

제작진의 개입이 적다 보니 한편으로는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드러납니다. 출연자가 혼자 카메라를 들고 찍는 방식에 마치 V-log를 찍듯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담깁니다. 게다가 '릴레이 카메라'로 찍힌 영상을 출연자들이 함께 모니터 하는 곳은 조세호가 실제 살고 있는 집입니다. 스튜디오까지 정말 편안합니다. 



이렇듯 인위적인 완벽함보다는 자연스러운 우연을 지향하는 <놀면 뭐하니?>. 이러한 콘셉트는 포스터 디자인에서부터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포스터 사진은 조세호가, 로고 글씨는 유재석이 맡았습니다. 김태호 PD는 전문 사진기사가 아닌, 조세호에게 그것도 일회용 필름 카메라를 쥐어 주고는 대뜸 포스터용 사진을 찍도록 했습니다. 

유재석이 "학교 작품도 아니고"라고 반응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MBC 김태호 PD의 1년 만의 복귀작,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를 비전문가인 출연자들에게 맡긴다는 것은 무모해 보입니다. 


김태호 PD는 조세호의 사진이 "전문가적이지 못한 아마추어 틱함에는 딱이에요."라고 말합니다. A급 정석을 비튼 B급 감성에 적합한 인재로 채택된 겁니다. 

실패를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싶다.

<놀면 뭐하니?>를 기획할 때 유재석이 한 말입니다. 편안하고 익숙한 걸로 채우기보다는 실험성과 새로움이 들어간 프로그램을 만들고자 <놀면 뭐하니?>가 시작됐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포스터 제작 방식과 디자인으로 드러냅니다. 기성 포스터 디자인의 진부한 틀을 깨부수는 조세호와 유재석의 아마추어스러움과 자연스러움, 일회용 필름 카메라의 우연성으로 만들어진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 이 포스터가 '<놀면 뭐하니?>는 제작진보다 출연자들의 손으로 직접 만들어가는 색다른 프로그램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포스터 촬영지는 을지로였습니다. 을지로라면 뉴트로 열풍의 중심지로, 일명 힙지로라고 불리고 있는 곳 아닙니까. 거기에다 일회용 필카와 아날로그 감성의 디자인까지. <놀면 뭐하니?>의 포스터에서 요즘 그 핫하다는 뉴트로의 냄새가 납니다. 


포스터처럼 영상에서도 B급 감성, 또 뉴트로 느낌이 담겨있습니다. 


필름 카메라, 8비트 이미지, 포스트잇, 손으로 찢은 듯한 종이, 테이프 위에 적힌 손글씨.

<놀면 뭐하니?>의 영상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레트로, 아날로그 느낌이 납니다. 또 일러스트를 화려하고 과감하게 사용하고, 만화적인 화면과 아이템들을 사용하면서 '뉴트로'스러운 디자인 컨셉을 잡은 듯 느껴졌습니다. 


<놀면 뭐하니?>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꽤나 파격적으로 사용된 일러스트입니다.

과감하게 출연진의 얼굴에 그림을 그려 넣는다던지, 힙합 뮤비에서 본 듯한 움직임을 일러스트를 이용해 표현하는 효과도 들어갔습니다. <놀면 뭐하니?>가 굉장히 트렌디한 디자인 컨셉을 잡았다고 느껴집니다. 유튜브에서 시작한 프로그램답게 기존 예능 디자인의 틀에서 벗어나 트렌디하고 힙한 색을 입힌 듯합니다. 이처럼 정석적이지 않은 디자인은 <놀면 뭐하니?>의 '새로움'이라는 정체성, 그리고 캐주얼한 느낌을 한층 강하게 만들어 줍니다. 이렇게 B급 감성 담긴 장난기 많은 디자인은 그 독특한 매력으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끕니다.


그동안 저는 예능 프로그램의 디자인들을 그저 흘려보낸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거 즐겨봤던 예능을 떠올리면 그 프로그램의 로고, 자막, CG 효과가 함께 생각이 납니다. 특히 <무한도전>이 그렇습니다. 매번 방송 컨셉에 맞게 변하던 물음표 모양의 로고, 억울한 멤버 옆에 박히는 해골 CG이 여전히 <무한도전>이라는 이름과 함께 떠오릅니다. 디자인은 프로그램의 개성을 품고 생각보다도 오래도록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는 듯합니다. 훗날 <놀면 뭐하니?>를 떠올리면 이 프로그램의 재밌었던 이야기들과 함께, 그 화려하던 일러스트와 아날로그적인 디자인이 함께 생각나지 않을까 싶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놀면 뭐하니?’ 유튜브와 지상파 예능이 만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