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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김철기 Nov 23. 2023

찰스 영국왕의 옛 기숙사 방을 공동 화장실로 바꾼 해학

찰스 영국왕이 중학교 시절 (9학년) ‘호주의 알프스’라고 불려지는 깊은 산속에 자리 잡은 팀버탑(Timbertop) 캠퍼스에서 1년간 수학한 적이 있다. 성장기에 리더십을 길러 주자는 취지로 찰스 황태자를 위해지었다는 산속 캠퍼스인데 숫제 군인들 막사(military camp)와 비슷한 것이다. 제가 그곳 막사를 방문하게 된 것은 제가 은퇴할 때까지 일한 아시아개발은행 (ADB)의 남태평양에서도 가장 작은 섬나라의 하나인 바누아투 공화국(나라 전체 인구가 고작 18만 명)에 소재한 남태평양 지역사무소에 근무할 적에 바누아투에서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중고등학교가 없어서 별수 없이 막내아들 스티브를 호주 멜버른 근교의 Geelong Grammar 학교에 속한 그 캠프에 보내게 돼서였다. 


바누아투에 대해 아시는 독자들이 매우 드물다 생각되어 잠시 소개를 드리겠다. 청정해역인 남태평양 도서국가 가운데서도 '손닿지않은 낙원 (Untouched Paradise)'으로 알려진 바누아투는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공동지배 (condominium colony)를 받아 왔는데, 내셔널지오그래픽 TV에서 볼수 있는 랜드 다이빙으로 잘 알려져 있다. 얌 축제 기간 동안 수확한 얌 줄기를 발목에 매고 성인의 경우 30미터 높이에서 경사진 땅에 부딪혀 그 반동으로 튀어오르는 위험천만한 모습을 본적이 있으리라. 향후 호주인들이 이 다이빙을 도용하여 번지 점프로 만들어 전세계에 보급해 오고 있다. 바하마 등과 같이 옵쇼뱅킹센터(offshore banking center)이기도 한 바누아투에서는 호주 등지에서 온 고급 요트와 고급 프랜치 레스토랑, 중국인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길거리 바로 뒤편에는 전통적인 원시 그대로의 삶을 살아가는 부시맨들이 가재도구라곤 제대로 볼 수 없는 오두막집 (hut)에서 미니멀리스트로 순진무구한 삶을 살아가는, 동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러한 나라에서 3년이 넘게 국가 경제 및 사회 발전을 위해서 애쓰면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요즘도 바누아투에서 살았던 시절에 블루문이 휘영청 대지를 밝힌 그날밤 타이티 왕자가 불을 다스리는 주술에 취한 채 맨발로 불위를 걸었던 (firewalking)것에 관한 꿈을 꾸곤 한다.



 중학생이 되자마자 부모님의 품을 떠나는 어린 독수리의 신세가 돼서 자신의 몸 크기와 맞먹는 트렁크를 들고 유학길에 나선 막내아들이 참으로 안쓰러워 보였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매년 한 차례씩 자녀들 방문이 허락된 학부모 방문의 날에 부랴부랴 바누아투에서 호주 멜버른으로 날아가서 차를 빌려서 팀버탑까지 산길을 요리조리 어렵사리 몇 시간을 운전해서 캠퍼스에 도착하였다.


학생들이 스스로 장작을 준비해야 난로를 피울 수 있고 빨래 등의 대부분 잡일을 본인 스스로 해내야 하고 부모님과의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편지를 써야 하는 엄격한 전통과 규칙을 여전히 자랑스럽게 지키고 캠퍼스에 있는 막사를 둘러보던 제 눈에는 스티브가 묵고 있던 방 바로 앞 화장실 바깥쪽 아랫 벽에 붙어 있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는데 그것을 보고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찰스 황태자가 이 방에서 지냈음(Prince Charles slept in this room)”이라는 표지판이다.


그런데 그 방이 경호 인력이 딸린 황태자가 묵었던 방이라서 언뜻 보기에도 여느 기숙사 방보다 훨씬 컸다. 그래서 이  큰방을 공동 화장실로 사용하도록 개조한 모양이다. 그리고는 구태여 그 공동 화장실 앞에 찰스가 이방에서 살았다고 표지판떡하니 붙여 놓은 것은 다름 아닌 호주를 망라한 대영제국에 공통된 그들 특유의 해학(Humor)에 기반한 솔직함이라고 생각되어 너털웃음을 지었다.


대영제국을 이끈 해학의 유명한 일례로 영국을 구한 처칠의 "벌거벗은 외교"를 들 수 있겠다.


2차 대전 중 프랑스가 나치독일에 굴복하자 영국은 유럽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 남았다. 승리를 얻기 위해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도움이 절실했던 처칠은 백악관으로 가서 목욕을 한 뒤 벌거벗은 채 루스벨트를 만났다.

그들은 세계 역사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심각한 외교담판 중에

 “나는 (미국 대통령께) 숨길 것이 없소이다...” 처칠수상의 이 솔직한 유머 한마디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 영국을 독일의 위협으로부터 구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은 최근 한국 대통령이 영국의 찰스 3세 국왕을 국빈방문하여 큰 외교성과를 올린 뉴스를 보다가 문득 찰스 3세 영국왕과 관련된 제 가족의 추억이 담긴 ㅡ 일화가 떠올라 글로 옮겨 본 것입니다. 두서없는 글이라 송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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