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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의 삶, 그 고요한 긍정의 기록

by 하니작가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덮고 한동안 깊은 여운에 잠겼다. 윌리엄 스토너의 일생은 겉보기엔 '실패' 라는 단어로 요약될지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답답함과 숨 막힘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스토너의 삶은 고독과 좌절의 연속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분명 어린 시절 힘들게 농사를 지으며 살았고, 결혼 생활도 순탄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딸 그레이스는 망가졌다. 학교에서는 스토너를 증오하고 싫어하는 로맥스와 그를 곤란에 빠트리는 찰스 워커까지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히다가도, 그래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인 캐서린이 있었고, 자기가 사랑하는 영문학에 모든 열정을 쏟았던 그의 삶은 그 어둠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던 두 가지 기둥 덕분에 지탱될 수 있었다. ​캐서린을 만나 영문학을 통해 소통하며 사랑의 의미를 알아가는 그를 보며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다.



​스토너는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학문에 모든 열정을 쏟았다. 흙먼지 날리던 농장에서 벗어나 문학을 발견하고, 평생을 학자로서 살아간 그의 여정은 고난 속에서도 흔들림 없는 헌신 그 자체였다. 외부의 평가나 성공과는 관계없이, 그는 자신이 선택한 학문의 세계에서 가장 진실하고 완전한 자신을 발견했다.



​스토너의 삶에 찾아온 가장 아름답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캐서린과의 만남이었다. 비록 사랑하는 캐서린은 떠났고 스토너는 암에 걸렸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스토너의 마지막 순간까지 이어진다. ​스토너가 암으로 병상에 누워, 캐서린의 책에 쓰인 'W.S.에게'라는 문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은 얼마나 절절했을까. 그는 그 글을 통해 그녀를 느꼈다.


조금 전까지 그녀와 함께 있다가 온 것 같았다. 방금 그녀를 만졌던 것처럼 손이 저릿거렸다. 그 상실감, 그가 너무나 오랫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그 상실감이 쏟아져 나와 그를 집어삼켰다. p.350


​만난 기간이 짧았더라도, 진심으로 사랑했던 기억은 몇십 년이 지나도 그 기억은 그대로 남아 마음속에 선명하게 아로새겨진다. 그런 선명한 기억 속에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 마음은 각인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는 마지막 순간, 자신이 혼신의 힘을 다해 썼던 책을 품에 안고 삶에서 멀어졌다. 겉보기엔 쓸쓸한 퇴장이지만, 그는 자신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품고 떠났다. 그리고 병상에서 던진 한 마디는 깊은 질문을 남긴다.


​스토너는 결국, 화려한 성공이나 대단한 명성이 아닌, 자신의 내면을 채웠던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았다. 이제 이 질문을 나에게 하고 싶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스토너의 고요한 긍정의 삶을 통해, 나 역시 주변의 시선이 아닌 내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의 삶은 실패가 아닌, 고독한 진실함 속에서 스스로 완성한 훌륭한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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