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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Dec 22. 2023

생각만 해도

함께 한다는 것은

밤새 눈이 내렸나 보다. 주차되어 있는 차들의 색이 모두 하얗게 변해 있었다.  

창틈에서 부는 바람 또한 매섭고 차가워 패딩조끼를 꺼내 입었다.

이 중요한 날에 제일 춥다니.

날이 추우면 어떠랴. 그래도 오늘은 행복한 날인데.

평소 조용히 움직이는 것을 좋아해 몇 날 며칠을 맘속 깊이 숨겨둔 채 나름 작전을 세웠다.

반나절 휴가를 냈지만 연말이라 혹시 복무점검이 있을까 싶어 오전은 외출 신청을 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급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움직일 시간이 다가오자 심장이 요동치며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일행이 탄 차가 지하주차장을 벗어나 청에서 멀어지자 비로소 숨이 쉬어지며 겨울세상에 빠져들 수 있었다. 

따뜻한 차안과는 다르게 차창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숲과 들녘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서로가 말은 안 하지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맘은 똑같구나 생각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때가 되어 비로소 만나게 되는 이들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빛이 나고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우리의 맘과는 다르게 시간이 흐를수록 눈발은 굵어지고 겨울바람은 더욱더 매섭게 불어왔다.

문득 지난해 M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속에서의 시경 [북풍]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지금의 차밖 풍경과 우리네 맘이 잘 어우러지는 글이다 싶었다.

무섭게 내리는 눈도 우리를 날려버릴 것 같은 저 바람도 결코 우리가 가는 길을 막지는 못했다.

다행스럽게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하였고 내리는 눈발도 가늘어져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앉자 잠시 후 음식점 주차장으로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청장님이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오셨다. 경찰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처음 봬서 그런지  

얼굴 살이 빠진 듯 보였지만 미소는 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소년 같으셨다.

주문한 음식들이 하나 둘 우리 앞 테이블에 차려지고 잠시 접시에 부딪치는 포크소리가 크게 들려왔지만 바라보는 얼굴에는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따뜻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옮겼다.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창이 넓은 카페, 오후 내내 얘기를 나누어도 시간이 짧을 거 같은데 우리의 바람이 무색하게 너무 빨리 가는 게 아쉬웠다.


사관과 신사.

부드러운 카리스마,

인()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리더.

긍정적인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우리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음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다. 그러기에 우리는 늘 잘되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지 않았던가.

 

만남 후 오후 근무를 위해 홀로 걸어가시는 청장님 의 뒷모습이 쓸쓸함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내일을 모르지 않은가. 오직 신만 아실뿐.

그저 바라고 또 바란다. 더 많은 이가 우리처럼 진정한 리더의 품격을 느낄 수 있도록 시간을 허락해 주시길....


감사합니다. 장님!

최고의 시간을 할애해 주셔서...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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