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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Apr 16. 2024

행복을 주는 사람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년 새해가 밝은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는 곳마다 봄꽃이 가득한 4월이다. 

이렇게 꽃들이 만발한데 왜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을까! 

창밖 산에도 점점 푸르름이 더해가고 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떠오르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설 명절이 며칠 남지 않았던 2월의 첫날, 대지에 내려앉는 겨울 햇살은 유난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햇살이 좋아서일까, 부는 바람이 너무 부드러워서일까 벌써 봄이 온 듯 내 맘까지 따뜻해져 옴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부터 예고된 노조집행부와 청장님의 점심식사가 예정되어 있어 시간보다 이르게 사무실을 나왔다.

우리 일행이 탄 차는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와 약속 장소로 향했다. 달리는 차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수들은 우리 가까이 봄이 와 있음을 깨닫게 해 줬다. 식당으로 들어가자 안은 깔끔하고 정결했다. 벌써 몇몇 손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의 등장에 잠깐 눈길을 주는가 싶더니 빠르게 자기들의 시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사방이 통유리창으로 거리의 오가는 차들과 걸어가는 사람들의 표정까지 눈에 들어왔다. 


직장 생활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소위 '윗분'과 함께하는 자리는 늘 부담이 되었다. 이 직장의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제복을 입고 계급이 있어 상하가 분명한 조직사회, 그러나 사회적 변화가 많았던 80년대 초 직장생활을 시작한 그때보다는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졌다. 


약속 시간이 되자 창밖 주차장에 청장님 일행이 탄 승용차의 번호가 보이고 곧이어 식당 안으로 들어오셨다. 시선을 끌지 않고 식사에 집중할 수 있는 자리를 찾았지만 결국 청장님과 대각선으로 앉게 되었다. 오신 지 몇 개월이 지났는데 오늘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같은 층에서 근무하고 있는데도 복도에서조차 마주친 적이 없었다. 


식사를 하는 듯 마는 듯 대화가 끊어지고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히는 소리가 크게 들려오면 괜히 불안했다. 이때다 싶어 그동안 궁금했던 청장님 논문에 대하여 말씀드렸다. 청장님 오시고 얼마 후 청장님의 박사학위 논문을 얻게 되었다. '자치경찰제 도입에 따른 변화가 생활안전경찰관의 직무만족에 미치는 영향'에 관하여 쓰신 것이었다. 예전에 아는 분이 석사학위 논문을 준비할 때 자료를 정리해 준 경험이 있어 논문은 딱딱하고 재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터라 논문을 어떻게 써 내려가셨을지 몹시 궁금했었다. 


처음 논문 파일을 받았을 때는 반쯤 읽다가 저장해 놓고 시간 되면 읽어봐야겠다 생각하고 미뤄 놨었다. 마침 점심식사 약속이 잡혀 다시 저장해 놓은 폴더를 열었다. 놀랍게도 청장님의 논문은 딱딱하지도 지루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아! 논문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다. 인용을 많이 하다 보면 문장이 잘 이어지지 않고 읽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는데 한 권의 에세이집을 읽는 느낌이었다. 아마 청장님이 근무 중에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옮겼기 때문에 나 또한 느낄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다. 


'직무만족은 개인이 담당하고 있는 직무를 수행하면서 느끼는 만족감, 행복, 그리고 긍정적인 감정 등의 정서적 상태'라는 글이 가슴에 와닿았다. 오랜 시간 근무를 하며 과연 난 직무 만족을 느끼며 생활해 왔는지....... 


청장님은 첫인상과는 다르게 맑고 순수하셨다. 겁 없이 황소와 씨름을 하셨고, 아무도 몰랐던 몇 시간 동안 혼자만의 가출을 감행하셨으며  경찰대학에 진학하게 된 이유 등 옛 얘기를 들려주실 때는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지며 장난꾸러기 소년을 만난 거처럼 느껴졌다. 


식사 전 가졌던 부담감은 사라지고 청장님의 매력만 가득 느꼈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청년부장이 하는 일은 뭐냐?"라고 물으시는 청장님의 질문에 귀엽고 예쁜 청년부장 효원의 깜찍한 답변은 식당 안 손님들이 놀랄 만큼 우리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물해 준 것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사가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청장님! 그날 그 시간을 선물해 주셔 정말 행복했고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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