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지 여행을 가려고 계획하면 출발하기 전부터 비가 오던지 아니면 비예보가 있어 늘 불안했다.
아주 오래전 여름휴가 때였다. 여고를 졸업하고 처음으로 친구들과 2박 3일 강원도 여행을 한 적이 있었다.
하필이면 그때가 장마철이었다. 출발하기 전날부터 마치 양동이로 퍼붓는 거처럼 빗줄기는 굵어지고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었다. 차 대여, 숙소 예약 등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찾아가면서 우리는 그 비를 뚫고 집을 나섰다.
라디오를 켜자 여기저기 특히 강원도 지역의 비 피해가 심하다는 뉴스 특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정말 가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갈등이 심했지만 결국 고속도로로 진입했다. 차가 달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여러 번 심장이 내려앉는 경험도 하였다. 도로가 파이거나 경사가 진 곳에 웅덩이가 생겨 그 위를 지날 때마다 빗물이 정면 유리창에 튀어 앞을 분간하기가 어려웠다. 한낮인데도 저녁처럼 사방이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정말 우리는 날궂이를 하고 있었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비피해가 눈에 들어왔다. 둑이 무너졌거나 바람에 가로수가 넘어져 길을 막고 있어 군인과 주민들이 땀을 흘리며 복구작업을 하고 있었다. 지나갈 때마다 힐끔거리는 눈길에 미안했지만 미안한 만큼 소중한 추억을 담기로 스스로 위로를 건넸다. 우리는 다가오는 시간을 알 수 없듯이 그 여름 첫 여행이었던 강원도로 떠난 2박 3일 동안 장대비는 계속되었다.
그때 친구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거 같았다. '사용(四龍)이 모였으니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가 보다.'라고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 동안 웃었었다.
이번 여행에도 비가 오려나 기대를 했지만 노조 워크숍이 있던 그날에는 비가 오지 않았다.
평상시와 똑같이 아침 일찍 출근해 급한 업무를 처리했다. 첫날은 정기회의, 특강 등이 있었고 둘째 날은 거제시에 있는 외도 방문 일정이 잡혀 있었다.
창밖으로 길 건너편에 있는 청 주차장을 쳐다보니 우리를 태우고 갈 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종북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현전 행정관이 자기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와 버스를 향해 걸어가는데 오래전 타 청에서 함께 근무했던 직원을 만났다. 잘 지내고 있는지 안부를 묻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현전 행정관이었다.
"현전아!"
"언니 어디야? 나 도착했는데."
"그렇지 않아도 너 차에서 내리길래 사무실 나와서 걸어가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직원이 가방에서 아이스커피 한 병을 건네줬다.
"잘 다녀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버스 가까이 가자 현전 행정관이 아침 햇살보다 더 밝게 웃으며 나를 반겼다.
"어서 와요. 언니!"
"그래. 사무실 창밖으로 내려다보니 네가 보여 내려왔지. 오늘따라 더 예쁘네. 사진 찍음 잘 나오겠다."
함께 버스에 오르자 먼저 도착한 후배 행정관들이 인사를 했다.
출발시간이 되자 하나 둘 도착했다. 올해 상반기에 먼저 퇴직하는 미경 행정관이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공로연수 중이라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무척 반가웠다. 많은 동기들이 있었지만 결혼하면서 그리고 아파서 일찍 퇴직을 한터라 동갑내기는 미경 행정관뿐이다. 환하게 웃는 걸 보니 모든 게 편안한가 보다.
09:00경 우리는 출발했다. 고속도로 옆으로 보이는 산과 들은 정말 푸르렀다. 새로 나온 어린잎들은 연둣빛으로 먼저 자란 잎들은 초록색으로 더욱 짙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창밖 공기는 탁해 보였다. 멀리 보이는 산 중간쯤 황사인지 마치 안개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버스 안인데도 목이 점점 따갑기 시작했다.
'날씨는 좋은데 비대신 황사구나.'
얼마나 달렸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게 점심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외도에 들어가기 위해 유람선에 승선했다. 선장님의 넉넉한 입담과 친절한 해금강 투어를 마치고 외도에 첫 발을 디뎠다. 외도를 돌아보며 경이로움을 느꼈다. 이렇게 멋진 정원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생각을 많이 했을까!
아주 오래전 TV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엔딩장면을 이 외도에서 촬영했다는 게 생각났다. 저만치 그 별장이 눈에 들어왔다. 준상과 유진의 해피 엔딩[happy ending]을 생각하며 일행을 따라 올라가다 미경 행정관과 돌아 내려와 선착장과 가까운 대나무숲 의자에 앉아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았다.
그리고 그동안 못했던 얘기를 하며 서로 퇴직 후의 계획을 나누었다.
어느새 외도를 떠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세종남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는 멋진 태찬 행정관이 사준 부드러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더위와 황사를 씻어냈다. 시간이 되고 우리가 타고 들어왔던 유람선을 타고 출발지로 돌아왔다. 버스에 올라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은 아쉬움을 남긴 채 거제시를 떠나왔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한 장 한 장 넘겨본다.
외도에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아주 오래전 일인 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자랑 우리의 기둥 이효 지회장님 준비하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오래오래 기억할게요. 이런 좋은 시간 만들어주셔 정말 감사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