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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May 07. 2024

이런 사람 있습니다.

속 깊은 사람, 그대는 세종경찰관입니다.

지난 금요일부터 비가 오더니 연휴가 끝나고 출근한 오늘까지도 비가 오고 있다. 

누군가 아니 지나고 보면 슬펐던 일도 괴로웠던 시간도 모두 추억이 되어 기억하는 그 순간은 아련한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청에서만 근무했던 나는 충남경찰청 청사가 예산으로의 이주 계획이 있어 인접한 경찰서로 나갈 결심을 굳히고 어느 경찰서로 나갈지 고민을 하고 주말에 남편과 경찰서 답사를 한 결과 조치원에 있는 세종경찰서(현 세종북부경찰서)로 결정하고 지원을 했다. 

경찰서로 나가려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은 가까운 지인들은 "청에서만 근무했는데 경찰서 근무를 할 수 있겠느냐."라고 걱정을 해줬다. 그렇지만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기대감이 더 컸다. 


2012년 정부세종청사경비대 창설 지원단 지원 근무를 짧게 한 후 경찰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려움도 많았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 생활한다는 게 성격상 쉽지 않았지만 조금은 안면이 있는 직원들 덕분에 곧 안정을 찾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가던 중 밸런타인데이였는지 화이트데이였는지 분명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재현 경사가 초콜릿을 들고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 

"가족들 거 준비하면서 행정관님 생각나 가져왔어요." 한마디 남기며 초콜릿을 책상에 올려놓고 바람처럼 쁘르게 사무실을 나갔다. 


지금 하는 얘기지만 너무 고마웠다. 그 기분에 피곤함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후 재현 경사는 경위가 되었고 세종경찰청으로 들어와 다시 만나게 되었다. 같은 청에 근무를 하면서도 자주 수는 없었지만 가끔 복도에서 계단에서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살갑게 다가오는 재현 주임이 오랜 친지를 오랜만에 만난 듯 반가웠다. 


그러던 어느 추석명절을 앞두고 연락을 줬다. 우리 주소를 말하더니 맞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분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만년동 직원이 왔다 갔다'라고. 남편에게는 만년동 직원으로 말해야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때를 시작으로 명절이면 우리 집을 찾아와 줬다. 


경찰서 근무할 때는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어 충돌도 했지만 그 계기로 많은 시간을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그는 속이 깊은 사람이었다. 단지 표현이 조금 서툴었을 뿐.


얼마 전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곧 퇴직이라'는 말에 그도 생각이 많았나 보다. 지난주 당직을 함께 하게 되었다. 세종남부경찰서 태찬 행정관과 몇몇이 저녁식사를 함께 하고 들어왔더니 그가 당직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저녁식사는 하셨어요?"

"행정관님!" 

자리에서 일어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물었다. 

"하반기 퇴직이신 거죠?"

"네."

"공로연수 들어가지 않으셔요?"

"네. 그냥 유연근무도 하고 힘들면 가끔 휴가도 가고 그러려고 해요."

그는 말없이 웃더니 일어나 자기 자기로 돌아갔다. 그리고 쇼핑백 하나를 들고 걸어왔다. 

"원래 스승의 날 드리려고 했는데 오늘 당직이셔서 잠시 나갔다 왔어요. 또 뭘 주심 안 돼요!"라는 말까지 남기며 쇼핑백을 건네줬다. 

"참 제가 쓴 편지도 있으니 읽어주세요."

조금 일찍 당직 교대를 마치고 잠깐 사무실에 들러 그가 준 쇼핑백에서 편지를 꺼냈다. 

읽는 동안 마음이 따뜻해져 옴을 느꼈다. 나 또한 경찰서 있을 때 늘 배려해 준 게 고마워 그 고마움을 표시했을 뿐인데 이렇게 큰 감동을 주다니. 어쩌면 내가 이 직장에서 조금은 괜찮은 사람 그리고 잘살았구나라는 뿌듯함이 밤새워 당직을 하는데도 전혀 피로감을 느끼지 못했다.

"정말 고마워요. 주임님! 이렇게까지 생각하실 줄 몰랐어요."  


문득 김용택 시인의 '참 좋은 당신'이란 시가 생각난다.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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