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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석금 Jun 24. 2024

말하잖아요

귀 기울여 주세요.

얼마 전부터 아파트 같은 층 304호에서 고양이가 계속 울고 있었다. 집이 비면 소리로 울어 우리 집까지 들려왔다.

"고양이가 혼자 있나 봐요. 혼자 두면 스트레스 많이 받을 텐데"라고 말하자 남편은 집이 비면 출입문 앞에서 저렇게 하루종일 울어 속이 상하다고 했다. 아주머니가 혼자 사시는 거 같았는데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나 보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니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로 여겼다. 이상하게 안쓰러워 자꾸 맘이 간다.    


어느 수요일 오후였다. 유연근무를 신청하고 일찍 퇴근한 나는 TV 채널을 돌리다 동물농장을 본 뒤로 애청자가 되어버렸다. 영역싸움에서 두 다리를 다쳐 걸을 때마다 거친 시멘트 바닥에 상처가 쓸려 고통을 받고 있는 고양이를 살뜰하게 살피고 보호해 주는 고양이를 보면서, 힘센 길고양이들로부터 지켜준 보디가드 같은 고양이가 죽자 그 곁을 떠나지 않던 아기 고양이를 본 뒤로 나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어떤 것에 끌려 휴일이면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동물농장 재방송을 즐겨봤다.


이런 내가 신기했는지 남편은 "갑자기 동물의 세계에 입문하셨어? 그러다 한 마리 키우겠다고 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다.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울 자신이 없었다. 견생이든 묘생이든 한 생명체에 대하여 무한 애정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데 과연 내가 그럴 수 있을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상만 해도 새끼 고양이가 예쁘고 귀엽다. 그리고 한번 보면 또 보고 싶어지는 아기 강아지들이 자꾸 내 눈앞에 아른거린다.     


얼마 전 작은 언니가 키우던 닥스훈트가 새끼를 일곱 마리나 낳았다고 했다. 갈 때마다 한 마리 키워볼까 맘이 커졌지만 결국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몇 주가 지나고 다시 언니네를 찾았을 때는 우리만 보면 으르렁대며 주변을 맴돌던 어미 개 까미도 그 까미가 낳은 새끼 일곱 마리도 볼 수가 없었다. 주변에서 다들 탐을 내고 다 키울 수가 없어 분양했다고 했다. 정말 똘똘했는데 이젠 더 이상 볼 수 없다니 괜히 서운했다. 나와 연이 안 닿은 거지 애써 위로하지만 나를 쳐다보던 그 눈망울이 떠오른다.


아파트로 이사 오기 전 주택에 살았을 때는 '해피'란 이름의 발바리 한 마리를 키운 적이 있었다. 동네에 나갔다가 피투성이가 되어 대문 앞에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강아지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던지. 울면서 엄마 직장에 전화를 걸어 엄마와 함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던 기억이 있다. 그 후로 난 강아지를 멀리하게 되었다. 아마 그때 충격이 너무 커서 다시 강아지를 키울 생각을 못했던 거 같다. 아예 집에서 강아지를 키웠던 기억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TV 속 강아지와 고양이들을 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그들만의 세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갑자기 주인에게 버려져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강아지. 밥을 주고 놀아주며 자기만을 이뻐해 주던 엄마 아빠라 칭하던 주인을 따라 좋은 곳에 가는 줄 알았는데 어딘지 모를 차가운 거리에 버려지고 만 강아지들을 보며 맘이 무거워졌다. 그래서일까! 그날부터 집을 나서면 아파트 근처에서 견주와 산책을 하고 있는 강아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종종거리며 주인을 따라 앞서 걸어가는 강아지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래! 넌 아주 행복한 견생을 보내고 있구나. 앞으로도 변치 않는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렴.' 혼잣말을 하곤 한다.  


고양이나 강아지들을 키우는 사람들은 알겠지. 고양이가 강아지가 사랑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키우지 않는 나는 잘 모르지만 나름 자기네들끼리는 우리 인간들처럼 소통을 하고 있다. 질투도 하고 사랑도 하고 의리도 있고 꼭 우리네 인간들처럼 그들의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외롭게 울고 있는 고양이가 무얼 원하는지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족이라고 여긴다면 처음 분양받을 때의 그 설렘을 오래오래 간직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가족처럼 생각했던 고양이와 강아지가 차가운 거리에서 헤매지 않게. 이렇게 자신 없어하는 나에게도 고양이든 강아지든 연이 닿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처럼 망설이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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