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일기
수영을 배운 지 세 달째. 기초반으로 시작해 초급반을 지나 어느새 중급반이다. 과정 설명에 따르면 중급반은 자유형과 배영으로 25미터를 갈 수 있고, 평영을 배운다.
"자꾸만 킥판에 의지하면 안 돼요! 킥판 놓고 오세요!" 제일 깊은 곳이 1미터 50센치니까 어떻게든 일어나기만 한다면 물에 빠져 죽을 일은 없다. 혹시 다리에 쥐가 나서 못 일어난다고 해도 구해줄 선생님들이 레인마다 존재한다. 무서울 게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맨 손이 되는 순간 무섭다는 감각이 앞선다. 그동안 힘겹게 배운 동작은 1초 만에 잊히고, 자세가 무너지니 호흡이 될 리 없다. 물을 먹고 컥컥거리며 벽을 잡고 일어난다. 누군가는 자기 몸 자체로 물에 떠서 앞으로 나아가는 걸 자유롭다고 말할 테지만, 나에겐 그저 무서울 뿐이다.
이쯤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난 중급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민망할 만큼 진도가 느리다. 다른 사람들은 자유형과 배영을 하고 이제 평영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나는 킥판 없이는 자유형을 못하고 배영 뜨기를 배우면서 가끔 외마디 비명도 지른다. 킥판이 있어도 25미터 중간에 한 번쯤 멈춰 설 때가 많으니 자연스레 맨 뒤로 가서 선다. 선두인 회원은 내가 반대편에 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출발할 테니까.
살면서 특출 나게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남들보다 심하게 뒤처지는 것도 없었다 싶다. 그런 건 애초에 시작도 안 했을 테니까.
수영은 잘 못 할 게 뻔했다. 물 공포증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물을 무서워는 하니까. 그래서 남들보다 느릴 건 예상했지만 솔직히 이렇게까지 느릴 줄은 몰랐다. 진도가 느려서 선생님과 같은 반 회원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아닐까 걱정도 되고, 수업이 있는 날엔 '가지 말까?' 하는 유혹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꾸역꾸역 수영 가방을 챙겨 나선다. 모든 게 그렇듯 수영에도 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말, 꾸준히 하면 언젠간 할 수 있다는 말을 되새기며. 사실 바쁘거나 아픈 것도 아닌데 딱히 포기할 핑계가 없다. 그리고 이미 남들보다 느린 진도, 계속해서 천천히 배운다고 달라질 것도 없지 않나.
언젠가 포기하지 않은 나에게 고마워하며, 물속에서 무서움 말고 자유로움, 고요함, 편안함을 느껴보고 싶으니까. 언젠가 이곳에 ‘드디어 킥판을 놓고 25미터를 완주했다’고 쓰고 싶으니까. 사실 이유는 그거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