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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월 Dec 03. 20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영 일기

수영은 특출 나게 번거로운 운동이다. 물을 무서워하는 것 말고도 수영을 배우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걸림돌은 또 있었다. 수영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표준 체중의 끝을 잡고 살아온 터라, 무릎 위로 오는 옷도 입어본 적 없는데... 수영복이라니.

회사를 다닐 땐 매일 화장을 하고, 다른 옷을 골라 입었다. 매일 밖에 나가지 않게 되니, 화장은 일주일에 한두 번, 그 외는 선블록을 바르고 눈썹을 그리고 립밤을 바르면 끝! 편한 착장 몇 개를 만들어놓고 돌아가며 입는다. 타인에게 보이는 모습을 조금 덜 신경 쓰게 돼서 그런가, ‘운동하러 가는 거지 내 몸을 보여주러 가는 건 아니잖아?’하고 겨우 마음을 다독일 수 있게 됐다.

결심하는 데까지도 쉽지 않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또 있었다. 바로 강습 신청. 신규 신청은 오전 7시부터, 번호표 배부는 5시 30분부터. 밤새고 가볼까 싶었지만 내 침대는 그 의지를 꺾기에 충분히 편안했다. 온라인 동시 신청이 열린 후에야 기초반 신청에 성공할 수 있었다.

다음 단계는 준비물이다. 수영복과 수경, 수모 그리고 세면도구. 친구가 선물해 준 나이키 수모에 맞춰 수영복 브랜드를 정했다. (H가 “그냥 브랜드 맞춰서 사!”라고 하기 전까지 몇 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수영복 브랜드 10개쯤 섭렵한 건 비밀.) 이제 예쁜 걸 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패스트 백, 크로스 백, 스파이더 백 등 다양한 사양이 등장했고, 그에 따라 맞는 사이즈도 다르단다. 과도한 정보에 ‘아 몰라 몰라’ 상태가 돼버려서 결국 매장을 찾았다. 힘겹게 수영복을 입고 벗는 걸 반복하다 지쳐 수경은 진열되어 있던 것 중 첫눈에 들어온 걸로 선택, 그리고 샤워실용 메시 가방으로 준비물 준비가 끝났다.

수영은 씻는 것부터 시작된다. 여자 샤워실은 매시 50분이면 수업이 끝난 사람과 수업을 들을 사람으로 전쟁터가 되기에, 수업 시작 20분 전엔 도착해야 격전을 피할 수 있다. 수업이 끝나도 아직 끝난 게 아니다. 다시 씻고 젖은 수영복을 챙기고 영 시원찮은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려야 비로소 끝이 난다. 그러니까 수영 가는 날은 하루에 세 번을 씻고, 머리를 두 번 말린다.

집에 돌아와서도 해야 할 일은 있다. 수영복과 수모를 헹궈 말리고, 수경은 김이 서리지 않도록 안티 포그액을 뿌려둔다. 그나마 습식 타월을 쓰면서부터 수건 빨래 과정은 사라졌다.

수영 강습 장소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골랐다. 한 시간에 한 번 셔틀버스가 있지만, 내가 가는 저녁 시간엔 운행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배차 간격이 20분인 버스를 타거나 30분을 걸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수영장에 간다. 오늘은 혹시 발차기와 호흡과 팔 동작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중간에 멈추지 않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조금이나마 달라진 나를 기대하면서. 물속에 들어가서 선생님 말을 따라 한 바퀴, 두 바퀴 돌다 보면 심장이 터질 것 같지만, 물속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기분이 꽤 짜릿하다. 50분 동안은 물속에서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말고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힘들어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뒷사람이 기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씻고 나와 탈의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과 눈이 마주치면 잠시 누군가 싶다. 블러셔 없이도 혈색이 도는 얼굴이 낯설다. 수모와 수경 자국이 빨리 옅어지기를 바라며 미지근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린다.  

한껏 몸이 따뜻해진 터라 차가운 공기가 상쾌하기만 하다. 어떤 걱정도 떠오르지 않는다. 오늘은 지난 수업 시간보다 조금 잘했는지 생각할 뿐. 몸에 힘을 빼고 배운 대로 호흡을 하며 팔을 돌리고 리듬을 살려 발차기하는 나를 상상한다. 몸도 마음도 개운하다. 집에 돌아와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탁 꽂고 한 모금 삼키면, 행복 그 자체. 달달하고 부드러운 액체가 미처 눈치 못 챈 갈증과 피로를 씻어 내린다. 다음 시간에도 끝나고 오는 길에 바나나 우유를 사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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