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 일기
초등학교 시절, 내 번호는 늘 한 자리였다. 키 순서대로 번호를 정해 앉는 게 공평한 일이라고 누군가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어린이에게 ‘세상에는 외모만으로 결정되는 게 있단다’하고 알려주기 위한 건 아니었기를.
두 자릿수 번호를 가진 친구들과 수영장에 간 날, ‘별로 안 깊어’라는 말을 믿고 물에 들어간 나는 잠시 후 눈물과 콧물을 쏟으며 다시 땅 위에 올라와있었다. 이 날을 기점으로 20여 년 간 수영장과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살았다.
러닝, 헬스, 요가 등을 섭렵한 친구도, 운동 한 번 해 본 적 없는 친구도 언젠가부터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수영하면 좋은 점을 주워들으며 귀가 팔랑였고, 퇴사 후 넘쳐나는 시간에 규칙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해져 덜컥 강습을 신청했다.
강습 시작은 일주일 후부터였지만, 준비물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이틀의 쇼핑 끝에, 메쉬 가방 안에 수영복, 수영모, 수경, 세면도구, 머리끈, 수건, 로션을 차곡차곡 담을 수 있었다. 수영 강습 하면 떠오르는 검은색을 지워버리고,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 화사한 녹색 수영복을 샀다. “수영복이 마음에 들어야 꾸준히 가지.”
11월의 첫날, 강습 시작 2시간 전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에서 찾은 수영 일기에서 ‘수영장 기본 규칙’을 읽고 또 읽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몇 번이나 탈의실에 들어가 옷을 벗은 다음 샤워를 하고 수영복을 갈아입은 후, 선반에 가방을 두고 강습을 받고 나와 다시 씻고 옷을 입었다.
귀를 팔랑이게 했던 친구 1에게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라고 말하고 응원을 받은 후 집을 나섰다. 화사한 색깔의 수영복도 걱정됐고 (내 수영복은 화려한 축에 못 낀다는 걸 금방 알게 된다),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옷을 벗는 것도 수영복 차림이 되는 것도 걱정됐고 (벗은 몸도, 수영복 입은 몸도 많아서, 그 몸의 모양이 다양해서 특별히 관심받을 일이 없는 데다가, 강습 중엔 내 몸이든 다른 몸이든 생각할 여유 따윈 없다. 샤워실에서의 관심사는 ‘언제 빈 샤워기가 생길 것인가’ 일뿐), 진도를 전혀 못 따라가면 어쩌나 걱정됐다 (첫날 수업, 선생님이 말했다. ‘각자의 속도가 있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4주 차, 다른 사람들이 자유형 비슷한 걸 하는 지금도 나는 계속 음-파 발차기를 한다. 여전히 한두 바퀴 돌고 나면 얼굴이 터질 듯 벌겋고 숨이 가쁘다. 머리카락 같은 게 둥둥 떠다니는 물을 자꾸만 먹게 된다. 그래도 더 이상 등에 (거북이 등딱지를 상상한 건지 거북이라고 부르는) 헬퍼를 매지 않는다. 내 키랑 별 차이가 없어 공포를 느꼈던 수심 1미터 50센치가 죽도록 무섭지만은 않다. 음-파 호흡은 연속 두 번이 한계인 줄만 알았는데, 레인 중간까진 멈추지 않고 갈 수 있게 됐다. 덕분에 뒷사람의 킥판이나 손이 내 발끝에 닿을까 걱정하는 일도 줄었다. 수영은 물속에 있는 시간만큼 는다는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간 덕분인가.
남들보다 좀 느리면 어때. 앞만 보고 달리면 빨리 도착하지만,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걷는 게 풍경은 더 많이 보는 법. 정해진 시간 안에 해내야 하는 건 안 그래도 많으니까.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조바심 내지 말고 내 속도를 따라 가보자.
그런데 이러다 정말 다른 도움 없이 내 몸의 움직임만으로 물살을 가르는 날이 오는 거 아닐까? 아직은 희미해 보이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나는 수영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