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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향 Oct 11. 2023

<사랑하니까 괜찮아>
파킨슨이 뭐예요?

남편은 퇴직 후 서예와 사군자에 푹 빠졌다. 나는 남편과 인사동이나 대형 문구점에 한지와 물감을 사러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문방구에 가면 어찌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은지, 남편이 종이를 고르는 동안 나는 예쁜 표지의 공책이나 책갈피 같은 것을 둘러보곤 했다. 그날도 필기감이 좋은 펜을 고르기 위해 옆쪽에 붙은 메모지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 한지를 한 아름 안고 계산대로 향했다.

“어휴, 왜 한꺼번에 왜 이렇게 많이 사? 1년은 쓰겠네.”

“이상하게 요즘은 글씨가 잘 안 써져. 자꾸 망치니까 종이가 빨리 떨어지네...”

“하긴, 당신 요새 글씨가 좀 흔들리더라. 줄도 잘 안 맞는 것 같고. 너무 많이 써서 팔에 힘이 없는 거 아니야? 우리 보약이라도 해 먹을까?”

생각해 보니 얼마 전부터 남편의 글씨가 조금 달라지긴 했었다. 글씨에 힘도 빠진 것 같았지만 무엇보다 세로로 쭉 써내려오는 글씨가 줄을 맞추지 못하고 삐뚤빼뚤 한 것을 몇 번이나 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좋아하는 우럭 매운탕 거리를 샀다. 나이 들어 힘 빠지면 큰일 난다며 남편과 나는 매운탕 한 냄비를 싹 비웠다.     

다음날 여느 날과 같이 나는 수필 수업을 하러, 남편은 서예실로 나섰다. 그날따라 문우들과의 대화가 재미나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집에 돌아왔다. 살그머니 거실로 들어서는데 남편이 소파에 조용히 앉아있다. 방에서 글씨를 쓰거나 거실에서 뉴스채널을 보고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였다. 내가 좀 늦어서 화가 났는지도 모른다. 서둘러 저녁상을 차리고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로 저녁식사를 마쳤다. 

“내가 늦었다고 화난 거야?”

“여보 나 병원에 다녀왔어.”

“병원? 왜요? 어디 아팠어요? 아침엔 괜찮았잖아.”

“내가 자꾸 손에 힘이 빠져서 글씨도 잘 안 써지고... 좀 이상해서...”

“그래서? 그래서 뭐라는 건데?”

“의사가 파킨슨 같다고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라고 하네.”

“파킨슨? 파킨슨이 뭐예요?”

“근육이 약해지고 점점 굳어가는 병이라는데...”

“아닐 거야. 당신은 스포츠맨인데. 무슨 근육이 굳어요. 오진일거야. 그 의사 정말 이상한 의사네. 왜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 말이나 하고 그래....”     

서울대학병원 신경과 대기실에 남편과 앉아 있었다. 움직임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들의 모습을 애써 외면했다. 이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라는 의사는 검사 결과지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남편을 유심히 보더니 쇠방망이로 팔과 다리를 툭툭 쳤다. 그러더니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같이 메마른 목소리로 말했다.

“파킨슨입니다.”

“네? 선생님, 파킨슨이 뭐예요?”

“도파민의 신경세포가 소실되어.... 점점 근육이 굳어가면서 행동이 느려질 수 있고.... 퇴행성 질환입니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병원에 오기 전에 남편과 인터넷으로 파킨슨이 어떤 병인지는 충분히 찾아보고 왔으니 새로 알게 될 것도 없었다. 나는 그냥 ‘잘 드셔야겠네요. 영양상태가 좀 안 좋으세요.’라는 정도의 진단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면 돌아가면서 한우를 사서 실컷 구워 먹자고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의사는 파킨슨이라고 했다.     

남편의 얼굴은 화가 나있었다. 아마 내 얼굴도 그랬을 것이다. 

“애들한테는 이야기하지 맙시다.”

“왜? 애들하고 의논도 하고 방법도 찾아보고 그러는 게 낫지 않을까?”

“싫어.”


남편은 아이들에게 병을 알리길 원하지 않았고 단호했다. 언젠가는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니 그때까진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다음날부터 꼬박꼬박 처방약을 챙겨 먹고 아침저녁으로 공원을 걸으며 운동을 했다. 정기적으로 만나는 의사에게 진행이 나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그리고 또 약을 먹고 운동을 하고 기도를 했다.      

1년쯤 지났을 때 결국 남편의 변화는 아이들에게도 보였다. 아이들이 달려와 물었다.

“아빠가 왜... 왜... 파킨슨이 뭐예요?”

이제부터는 온 가족이 마음을 모아 남편을 살피게 되었다. 남편은 괴로워했지만 나는 외롭지 않아서 좋았다. 혼자서 감당하기엔 너무 큰 산이었다. 그렇게 10년의 투병이 시작되었다. 남편의 파킨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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