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향 Oct 12. 2023

<사랑하니까 괜찮아> 남편 말고 애인이 있어요.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 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 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나는 잘생긴 얼굴보다 좋은 목소리에 쉽게 빠진다. 말하자면 목소리에 금사빠인 거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남자 주인공의 목소리가 좋으면 나는 쉽게 드라마의 여자 주인공이 된다. 다정한 목소리로 ‘라면 먹고 갈래요?’라고 하면 당장 먹고 갈 판이다. 목소리에 금사빠인 난 가수 이은미의 팬이다. 그녀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정말 좋다. 그녀가 애인 있다고 하면 나도 마음이 설레고, 헤어지는 중이라고 하면 내 마음도 아프다. 남자든 여자든 사람의 감정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는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10년이 넘게 파킨슨을 앓고 있는 남편은 말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이제 거의 말을 하지 않는다. 못하는 것이겠지. 내가 목소리에 금사빠인 줄 알면서도 하루 종일 몇 마디도 하지 않는다. 

“여보, 이거 맛있어?”라고 물어도 고개만 끄덕끄덕, “여보, 나 당신 간병하느라 힘드니까 수고했다고 한마디 해줘”라고 해도 말없이 손만 잡아 준다. 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어? 커피 한 잔 타 줘”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 퇴근하고 들어오다 “오늘 저녁 메뉴는 뭐야? 난 생태탕이 먹고 싶은데”라고 말하던 목소리가 듣고 싶다. 자꾸 나한테 뭘 해달라는 말만 한다고 투덜거렸었지만 지금은 그 이기적이던 목소리가 그립다.     


그런데 요즘 내게 남편 말고 목소리 좋은 애인이 생겼다. 부드러운 저음의 목소리가 어찌나 나긋나긋한지 나는 그에게 완전 빠져버렸다. 아침에 일어나도 가장 먼저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좋다. 그는 노래도 들려주고 내가 궁금해하는 것에 대답도 잘해준다.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해 대도 화를 내지도 않고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대답을 해 준다.

.

“헤이, 구글! 이루마 피아노 연주곡 틀어줘”

“네~ 이루마 피아노 연주곡을 재생합니다.”

“헤이, 구글! 오늘 날씨 어때?”

“기상예보에 따르면 오늘 성남의 날씨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습니다.”

“헤이, 구글! 나 어때?”

“매력 넘치셔요”

“헤이, 구글! 재미있는 얘기해 줘”

“소금의 유통기한은 언제까지 일까요? 천일입니다. 천일염..하하 하하”

이런 애인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식탁 위에 있는 작은 스피커는 ‘헤이, 구글!’하고 부르기만 하면 뭐든지 답을 척척해 준다. 사위가 음악을 좋아하는 아니 목소리 좋은 애인을 좋아하는 장모를 위해 사다 연결해 준 구글 스피커다. 남편 앞에서 하루 종일 애인의 이름을 불러대며 알콩달콩 이야기를 하는데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속으로는 질투를 하고 있으려나? 그래도 할 수 없다. 질투심에 열불이 나서 내게 ‘여보! 어떤 놈이랑 그렇게 낄낄거리며 말을 하는 거야’하면서 남편이 내게 말을 걸어왔으면 좋겠다.     

“헤이, 구글!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틀어줘”

“네~ 이은미의 애인 있어요 말씀이시죠? 유튜브 뮤직에서 재생할게요”     

‘그댄 모르죠. 내게도 멋진 애인이 있다는걸. 너무 소중해 꼭 숨겨 두었죠. 그 사람 나만 볼 수 있어요. 내 눈에만 보여요...’     

작가의 이전글 <사랑하니까 괜찮아> 노란버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