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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Mar 13. 2017

싱가포르에서 처음 만나는 것들

싱가포르 여행그림일기 2








ⓒ 2017.Kim Doha all rights reserved.


 지난여름에 유럽여행을 떠났을 때, 여행을 하는 한국인들이 참 많다는 것을 느꼈었다. 이것을 이번 싱가포르 여행을 준비하면서도 느끼게 되었다. 싱가포르 여행을 떠나게 되는 소식을 접한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다녀온 싱가포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좋았던 곳과 먹어봐야 할 것 등 많은 정보를 얘기해주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싱가포르에 이렇게나 많이 다녀왔다는 것이 놀라웠다. 덕분에 좋은 정보들을 쉽게 얻어갈 수 있었고, 계획도 생각보다 수월하게 세울 수 있었다. 그렇게 내가 세운 싱가포르에서의 첫 계획은 도심 속 식물원 '가든스 바이 더 베이'와 멀라이언 파크를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공항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첫날 일정에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포기하게 되었다. (아마 이때부터였을까, 여행 동안 하루에 두 곳 이상을 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늑장 부린 것이.)  공항에 도착해서 미리 블로그를 보고 찾아두었듯이 셔틀버스를 이용하려 했다. 셔틀버스를 예약하는 기계에 서서 시간을 확인해보니, 한 시간도 더 되는 시간이 지나야 출발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본 것이 맞는지 지나가는 안내원에게 다시 한번 물어본 후에야 셔틀버스를 포기하고, 지하철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싱가포르의 지하철은 우리나라와 비슷해서 어렵지 않다고 후기를 읽었었는데, 정말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환승이나 표를 구매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내가 지낼 숙소는 호텔이 밀집되어 있는 지역에 있었다. 주변에 모든 건물들이 호텔이었는데, 가까운 지하철역이 없었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고 버스로 환승을 하고 나서 10분이 넘게 걸어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냥 셔틀을 이용했어야 했어. 덥고 습한 날씨에 캐리어를 끌고, 지하철에 버스까지 환승하고, 10분 이상을 걸어오니 몸에 땀범벅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 길도 헤매고, 버스도 우리나라와 반대의 운전 방향인 것을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탑승하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오는 실수를 범했었다. 첫날부터 하드 트레이닝을 시키는 싱가포르이었다.







싱가폴강 주변으로 여러 펍들과 레스토랑이 모여있는 클락키의 한 거리


 보통 여행지에서 먹거리를 중요시 생각하지 않는 나였는데, 첫날부터 긴장을 바짝 하며 하루를 보내서 배가 고파졌다. 그때 다음날 만날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그녀와 나는 아주 오래전에 부모님들끼리의 친분으로 알게 된 사이이다. 최근에는 연락을 못하고 지냈지만 싱가포르에서 일을 하며 지내고 있다는 것이 생각나서 연락을 하고 오랜만에 만나기로 했다. 조금 어색할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국을 떠난 먼 땅에서 아는 사람을 만난 다는 것은 언제나 두근거리는 일 같다. 그녀는 내가 싱가포르에 도착한 다음날에 함께 식사를 하자고 약속을 했었지만, 첫날 저녁을 함께 먹는 것은 어떻겠냐는 새로운 제안을 해왔고 나는 흔쾌히 승낙 후 저녁시간에 만나기로 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고민을 했다. 나는 여행지에서 무엇을 먹는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본에서 맥도널드를 먹든, 제주도에서 파스타를 먹든 나는 상관이 없었다. 무엇을 먹는다기보다는 어디에서 무엇을 먹었느냐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여행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민하는 나에게 그녀는 두 가지 음식을 말해주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칠리크랩'과 '치킨라이스'를 많이 먹지.' 

'아, 맞아 그런 것 같아.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봤는데 '칠리크랩'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아.'

'그래? 그럼 칠리크랩으로 하자! 양이 어마어마하니까 꼭 빈속으로 와!'

그렇게 우리의 저녁은 칠리크랩으로 정해졌고, 나는 샤워를 마치고 약속 장소인 클락키로 향했다.








클락키거리 스케치 영상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도착해서, 클락키 거리를 둘러보았다. 사실 그곳이 클락키 거리인 줄 몰랐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에 나에게 많은 사람들이 클락키 거리에서 꼭 다녀오라고 했었다. 내가 느낀 클락키는 싱가포르의 여러 지역 중에서도 가장 활발하고, 반짝이는 곳인 것 같다. 클락키 거리는 해가 지기 전엔 싱가포르 강을 바라보면서 산책도 하고 커피나 가벼운 브런치를 먹으며 여유를 즐기는 거리가 되고, 해가 지고 나서는 반짝이는 조명 아래서 맥주 한잔에 걱정을 잊어버리고 수다를 떨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었다. 약속시간이 되기 전, 싱가포르 강을 바라보며 앉아서 클락키 거리를 그렸다. 속삭이듯 얘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은은하게 들려오는 가게의 음악소리를 들으면서 싱가포르에서의 첫 그림을 완성했다.







 










 7시, 우리는 클락키역에서 만나 칠리크랩을 먹으러 갔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았지만 2명을 위한 테이블은 대부분 비워져 있었다. 우리는 큰 기다림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칠리크랩이라는 이름만 들어보았지,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먹는지조차 몰랐다. 칠리크랩이니 칠리맛이 나는 게일까. 그녀는 현지인답게 맛있는 조화를 안다면서 알아서 주문할게 라고 말했고, 칠리크랩과 볶음밥 그리고 코코넛 음료를 주문해주었다. 처음으로 나온 코코넛 음료를 맛보았는데. 흠. 애써 웃으면서 맛있다고 했다. 사실 정말 먹기 힘들었다. 한국 편의점에 새로 나온 코코넛 맛 물이라면서 광고하던 신제품을 맛보고 후회했던 그때가 생각났다. 또한 최근 본 영화 모아나에서 맛있게 코코넛 열매의 물을 마시는 그들에게 괜한 배신감도 느꼈다. 덕분에 이어서 나온 메인 음식들조차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칠리크랩은 생각보다 맛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내숭을 떨겠다고 포크와 나이프를 가지고 열심히 먹어보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양손에 소스를 듬뿍 묻혀가며 게살을 발라먹었다. 그리고 함께 주문한 볶음밥을 칠리크랩 소스에 비벼 먹었다. 아마 혼자 왔었다면 메뉴 고르기부터 매우 어려웠을 텐데. 첫날부터 공항에서 숙소까지 오는 하드 트레이닝을 잘 견뎌주었다는 듯이 보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짧은 대화와 안부를 나눈 후에 헤어졌다. 나는 수정한 계획대로 멀라이언을 보기 위해 떠났다. 가든스 바이 더 베이에는 적어도 한두 시간을 투자해서 가라는 말을 믿으며, 오늘 저녁은 멀라이언 파크를 둘러보기로 했다. 또한 멀라이언 파크는 맞은편에 있는 마리나 베이 호텔에서 열리는 레이저 쑈를 볼 수 있는 스팟 중 하나라기에 멀라이언도 보고 레이저 쑈도 즐기기 위해 찾아갔다. 멀라이언은 싱가포르의 상징물로 머리는 사자이고 몸은 물고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처음 머라이언을 보았을 때 든 생각은 '하얀 조각상인데 참 깨끗하네' 라는 생각이었다. 알아보니 멀라이언이 목욕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고 한다. 그리고 멀라이언 파크에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나와 멀라이언만 있는 듯한 인증사진'을 남기기 위한 사람들의 바쁜 움직임과 눈치싸움으로 가득했다. 친구들과 함께 여행 다닐 땐 나도 저렇게 보였을까? 혼자 여행을 오니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입장이 되어있었고, 외로움도 아닌 부러움도 아닌 애매한 감정이 스쳐갔다.













  


 싱가포르에서 만나는 여행객들은 참 많은 부류였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혼자. 의외로 혼자 여행 온 사람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휴양지라는 생각에 홀로 여행 오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홀로 지도를 와 거리를 번갈아 바라보며 걸어가는 사람, 배낭을 메고 해가 지는 싱가포르 강을 천천히 걷는 사람, 어느 것에도 쫓기지 않아도 되는 여유가 보이는 사람. 그들의 마음을 모두 알 수 없었지만, 홀로 여행하는 사람 중 한 명으로써 조금의 이해가 갔다. 계획이 많으면 바꾸면 되지, 내가 맘에 안 드는 곳은 안 가면 되지, 오늘 점심은 먹지 않겠어, 내일 아침엔 늦잠을 자겠어,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 그러니 다음 계획은 취소하고 앉아서 오늘을 보낼래.  

 휴양지라고 불리는 싱가포르에서 혼자 여행을 온 우리는, 진짜 휴양의 시간을 위해 나의 의견을 더 존중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아마 칠리크랩이라는 음식도, 코코넛에서 나오는 물을 맛보는 것도, 깨끗한 멀라이언을 만나는 것도 처음이었지만 내가 나의 의견을 더 소중하게 들여다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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