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원제는 'Burnt'이다. 한국에서 개봉할 때는 '더 셰프'로 개봉했다. '더 셰프'라는 제목은 이 영화에서 요리라는 소재에 더 초점을 맞춘 제목이다. 'Burnt'는 주인공의 심리를 보여주는 제목이다. 나는 원제가 보다 이 영화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가 요리를 다루고 있지만, 요리는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강박을 가진 어느 한 사람이 어떻게 마음의 여유를 찾아가는가가 이 영화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요리사인 아담 존스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과 과거에 저지른 실수에 대한 죄책감을 안고 살아간다. 그에게 요리란 항상 완벽해야 하기에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한다. 그가 미슐랭 3 스타에 집착하는 모습도 그의 완벽주의에 의한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주변 인물들이 항상 그 성격을 감당해야 한다. 아담 존스가 과거에 저지른 실수들 악행들도 모두 그의 강박적으로 완벽함을 추구하는 성격에 의한 결과이다.
이 영화에서는 아담 존스가 이런 강박을 어떻게 내려놓는지를 보여준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아담은 그가 자신의 마음속에 세워놓은 완벽이라는 성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모래성임을 깨달은 듯하다. 그에게 완벽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니었던 것이다. 불처럼 번져 통제하지 못하고 주위에 있는 것들을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아담이 완벽을 추구했던 것은 자기 자신의 대한 불안감의 표출이다. 결국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알고 주위에 도움을 청함으로써 그는 강박에서 비로소 벗어나기 시작했고 주변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완벽은 항상 긍정적인 영향만 주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완벽은 한 치에 모자람도 과함도 없다. 그야말로 이상적인 상황인 것이다. 그래서 공허하다. 어딘가 모자라 도움을 받을 수도 넘쳐흘러 베풀 수도 없다. 그리고 완벽이라는 이상을 유지하기 위해 여유가 사라진다. 완벽에서 조금은 벗어나 주위를 둘러보면서 살 수 있는 게 더 행복해 보인다. 아담도 완벽이라는 성을 만들어 스스로를 고독하게 만들었다. 이미 그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 그에 마음에 도움이 들어올 수도 다른 이에게 마음을 줄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언젠가 아담처럼 자신의 문제로 혼자 앓는 시기가 올지도 모른다. 그때는 우리가 자신을 더 채찍질하면서 끝없는 감정의 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주위에 도움을 청해야 하는 순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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