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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1. 2022

10. 우리 옛것과의 만남

'용'의 상징성

용이 나르샤     


멀고 먼 옛날, 상상의 세계에 새로운 종의 동물이 나타났다. 

낙타 머리에 사슴뿔, 뱀 몸뚱이에 잉어 비늘, 호랑이 발에 독수리 발톱...... 옛사람들은 들짐승, 물짐승, 날짐승의 강점을 모으고 또 모았다. 용의 탄생이다.     


수신水神

용은 물에 살며, 물을 지키고 비를 관장한다. 물은 살포시 맺힌 이슬에서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성난 파도까지, 대지를 풍요롭게 하고 때로는 무자비하게 파괴한다. 용은 변화무쌍한 물의 성질을 그대로 반영한다. 본성이 거칠고 맹렬하며 천변만화한다. 

몸의 색은 오색五色을 마음대로 하며, 능히 어둡거나 밝을 수 있고, 가늘거나 커질 수 있다. 

무궁무진한 조화를 부리는 용은 신격화된다. 국가적 차원의 용신제, 용왕제를 지내 풍작과 풍어를 빌었다. 경기도의 용지龍池와 용두산龍頭山, 충청도의 용연龍淵, 황해도의 용정龍井, 경상도의 용수암龍水巖...... 전국에 걸쳐 용에게 제를 올린 기우처祈雨處가 다수 분포한다. 

1997년 경회루의 연못에서는 길이 146.5cm, 무게 66.5kg의 청동용이 출토되었다. 근정전의 종도리에서는 용이 그려진 진홍 종이, ‘龍’을 1000번을 써 ‘水’ 자를 메운 부적이 나왔다. ‘하늘의 재주로 사람을 키우고, 물의 기운을 머금어 궁궐을 보호하소서......’, 청동용의 고사 제문은 물을 다스려 불을 제압하는 용의 막중한 책임을 말한다.     


사신四神

삼국시대의 용은 백호, 주작, 현무와 함께였다. 음양조화와 벽사를 뜻하는 신령스러운 네 동물은 네 방향과 짝을 이루어 각 방향의 수호신이 되었다. 동방에 배속된 용은 청룡이 되어 방위신方位神의 역할을 맡고 있다. 사신은 고분벽화나 부대의 깃발 같이 동서남북 방위를 지닌 공간과 기물을 장식한다. 특히 동(좌) 청룡·서(우) 백호는 풍수지리 상 명당의 조건과 인재를 등용하고 배치할 때의 전략으로 널리 쓰인다.      


호법신

신라의 삼국통일을 전후하여 용의 상징성에는 불교적인 성격이 포함된다. 원래 고대 인도 신화의 용은 뱀이나 코브라의 형상인데 불교가 중국에 전래될 때 중국식 도상을 따르게 되었고 우리나라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였다. 불교의 건축, 조각, 공예, 회화에 등장하는 모든 용은 천왕팔부중의 하나로 호법의 임무를 수행 중이다. 사찰의 이곳저곳 눈길 닿는 곳마다 청동, 돌, 종이, 나무 재질의 크고 작은 용이 자리한다. 이중 법당 기둥머리와 계단 소맷돌의 용두는 사바세계에서 피안의 극락정토로 건널 때 타는 배, 반야용선의 선수를 나타낸다.

금광사金光寺, 망해사望海寺, 해룡사, 천룡사, 황룡사 같은 많은 사찰 연기 설화는 용과 관계된다. 해룡이 되어 불교와 국가를 지키겠다고 유언을 남긴 문무왕은 호법신이자 호국 신의 자리에 오른 용의 높아진 위상을 잘 보여준다.

설화에 의하면 불교 세계에서 용의 등장은 부처의 탄생 때부터다. 하늘에서 내려온 아홉 마리 용이 물을 뿜어내어 석가모니를 씻어 주었다고 한다. 지혜와 덕망이 높은 고승을 용상龍象, 법력은 용상지력이라 하고, 불상을 모신 감실을 용감龍龕, 부처의 설법을 법보의 다른 이름인 용장龍藏이라 하니, 용은 승려를 거쳐 부처에 비유되는 단계에까지 이른다.     


권위와 위엄

치수治水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농경사회의 용은 수중세계뿐만 아니라 지상에서도 제왕의 지위에 오른다. 임금의 얼굴은 용안, 앉는 자리는 용좌, 의복은 용포, 수레는 용가며, 심지어 눈물은 용루였다. 임금의 즉위는 용비龍飛였으니, 세종 때 만들어진 선조先祖의 행적과 공덕을 찬양하는 한글 서사시 <용비어천가>를 바로 떠올리게 한다. 

경복궁의 교태전, 강녕전 같은 침전에는 여느 전각과 달리 용마루가 없다. ‘한 못에는 두 마리 용이 살 수 없다.’ 속담이 그리된 까닭을 밝힌다.

용은 건국설화와 탄생설화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석탈해는 용성국龍城國 왕의 소생이고 박혁거세의 부인인 알영은 계룡鷄龍의 옆구리에서 태어났다. 고려 태조 왕건은 서해 용녀의 소생인 용건의 아들이고, 백제 무왕인 서동, 후백제 시조 견훤, 창녕 조 씨의 시조 조제룡 역시 용의 후손이다.     


어변성룡魚變成龍

장원급제한 자를 용두龍頭, 용수龍首라 하여, 출중한 인물 역시 용과 동급으로 대우했다. 입신출세의 관문을 뜻하는 등용문에서 알 수 있듯, 용의 비상을 상서롭게 여겼다. 하늘에 오르는 용은 만사형통도 의미하니 선비의 문방구와 사랑방을 장식하는 그림에는 유독 용 문양이 많았다. 

권력층에게는 주로 권위와 입신의 상징이었던 용이 민간에서는 벽사와 기복의 의미였다. 우물이나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놓고 집안의 평안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터주신이나 토지신과 함께 용왕신을 모셨다. 용은 서수瑞獸이기도 해 입춘방으로 ‘龍’, ‘虎’ 두 글자를 크게 써 붙였다. 동해용의 아들, 처용이 노래와 춤을 추어서 역신을 물리친 후, 처용의 화상畫像을 문에 붙여 사기를 물리치고 경사스러움을 맞이했던 풍습과 일맥상통한다. 조선 후기에는 새해를 맞이하여 대문에 붙이는 세화에 용 그림이 성행했다.     


용생구자

전설에는 용이 구름 속에서 학과 연애하여 봉황을 낳고, 땅에서는 빈마牝馬와 결합하여 기린을 낳는다. 태평한 시대에 나타난다는 신령스러운 두 동물 외에도 자손이 더 있다. 연기와 불을 좋아해서 향로에 앉은 사자모양의 산예, 큰소리로 울기를 잘해서 범종에 오른 포뢰와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해서 비석 받침이 된 비희 등 개성 강한 아들들이 무려 아홉이다. 자식농사에서 대풍을 거둔다.      


생생활활生生活活

언제 어디서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최상의 동물, 용. 옛사람들의 일상에서 용과 무관한 것은 없다 할 정도로 영향력이 깊고 넓었다. 민속, 민간신앙, 설화, 미술품, 지명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모습을 전방위로 드러냈다.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 불교적 종교 코드와 유교의 왕도 등을 알아야 해석이 가능한 상징성을 지녔다.  

과학은 말했다. 용오름은 바다에서의 회오리 현상으로 하늘로 치솟은 물기둥이다. 그리고 구름에 숨은 용처럼 보인 것은 순간적인 번개 현상이다. 생물학적 존재가 아닌 용의 실체를 하나둘 밝혀 낸지 아주 오래다. 

그럼에도 과학 세계의 진리와는 별개인 독자적인 영역에서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다.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사는 문화적 존재로서 실재하는 동물처럼 친근하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은 나지 않는다.’, 속담의 변용을 통해 달라진 시대적 상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재물운으로 풀이하는 돼지꿈과 더불어 길몽의 쌍벽인 용꿈을 빌려서, 또한 십이지에서 유일한 상상의 동물로 당당히 용띠 자리를 차지하며, 지금 여기 우리의 삶 속에 머문다. 더할 나위 없이 생생하게 영생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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