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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5. 2022

19. 우리 옛것과의 만남

<한국 무속> 국립 민속박물관 전시

재연에서 재생까지


방울을 흔들면 하늘이 열린다. 부채를 펼치면 신령들이 바람 되어 내려온다. 숨소리를 삼켜가며 빙 둘러선 남녀노소 모두가 감탄과 안타까움, 간절함으로 물들어 간다......

1972년 음력 10월 1일 서울 용산구에서는 일명 ‘밤쥐’ 최인순 무녀가 이끄는 ‘남이장군 사당제’가 열렸다. 민속학자 ‘김태곤’이 촬영한 한바탕 굿판이 전시실 대형 유리에 투사되면 관람객들의 시간여행이 시작된다.

 까마득히 오래전 일상 속 신앙이 늘 함께였던 시대나 하얀 한복을 입고 두 손을 마주한 우리 어머니나 할머니의 세대도 그러하였을 것이다. 꿈틀거리는 원색과 신명 나는 소리, 그리고 마음의 울림이 박물관에서 되살아난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 무속> 전이다.

영상 화면이 멈추면 투명 유리창 너머에는 꼼꼼하게 재현된 신당이 보인다. 기다란 흰 천에 삐뚤빼뚤 써 내려간 뭇사람들의 염원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이 된다. 전시장에는 무복, 무구, 무신도 등의 많은 유물들이 우리 근현대기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연행하는 무녀 옆에 자리하여 진지한 표정으로 녹음을 하고 있는 학자의 모습은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임에도 낯설게 다가온다. 실제로 굿을 본 적이 없어서 일수도 있지만 미신이기에 버려야 할 악습으로 치부해온 교육의 그림자가 아직도 지워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다 우리의 삶에서 철저히 배제되어 온 죽음과 그 너머의 세계인 저승의 이미지가 불러오는 본능적인 두려움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현대의 무대공연처럼 활력이 넘치는 몸짓과 가락으로 사람과 신령을 매개하는 무당의 존재만큼이나 시선을 잡아끄는 것이 또 있다. 누렇게 바래가며 지난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학자의 원고와 보고서 더미이다. 단정한 필체의 글과 섬세한 묘사의 그림들이 지난한 학자의 길을 말없이 증언한다. 그가 보고 듣고 써 내려간 것들은 무엇이었을지. 신명 나고 진기한 볼거리의 기록에 머물지는 않으리라. 우리의 피가 기억하고 있을 문화의 원형을 찾아가다 미완으로 남겨진 부분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여러 차례 관람해도 매번 새롭게 다가오는 지점들이 있다. 외국 문헌 속 도판으로 존재가 알려졌다 기증유물에서 현물로 발견되고 섬세한 복원 과정을 통해 본연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게 된 <삼국지연의도>. 우리나라에 관우를 모시는 사당이 있는 연유를 찾아가다 보면 동아시아 삼국의 지정학적 관계까지 다루게 되어 유물에 내재된 시공간의 폭이 확장되는 것을 경험케 된다. 안료의 성분을 분석하여 제작연대를 추정하고 훼손된 부분을 보수하며 보존 처리하는 과정은  과학기술과 역사의 만남이 낳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마술의 하나다.

무신도를 살펴보면 구석진 한쪽에 연필로 이름을 써 놓은 흔적들이 보인다. 무속에서 모시는 많은 신령들을 구별하기 위해서 일 텐데 시험을 앞두고 암기사항을 메모하는 학생의 모습이 겹쳐진다. 그림 대신 글로 그것도 틀린 한자로 적어 놓은 신위와 여타 종교에서 숭배되는 존상들까지 모두 망라되어 있는 무신도를 보면 무속의 저변이 얼마나 넓었는지, 무속에 습합 된 불교, 유교, 도교의 자취를 가늠케 한다.

 

우리와 습속이 너무나 닮아있는 시베리아 예벤키족의 기록 사진들과 평생을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쓴 학자를 추억하는 이들의 인터뷰 영상도 인상적이다. 

전시장 초입에 설치된 가림막은 앞으로 향하는 걸음을 옆으로 이동하게 동선의 변화를 가져오는데 활짝 열어젖힌 창문처럼 가운데 부분이 뚫려 있어 시선은 자유롭게 공간 내부를 조망케 한다. 몇 번이나 스치듯 지나치다 전시기간 막바지에 조형물의 상징적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무속의 초월적 세계를 인도하는 듯, 산 자와 죽은 자를 마주하게 하는 듯 느껴진다. 걸음을 옮겨 입구 쪽으로 나오며 다시 뒤를 돌아본다. 현실과 과거, 일상과 비일상, 이승과 저승 같은 시공간의 거리는 몇 발짝 걸음일 뿐이었다. 한 학자의 현지조사(field work)는 지난 시대의 재연에서 벗어나 잊힌 가치들에 생명을 불어넣는 현장으로 탈바꿈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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