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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5. 2022

18. 우리 옛것과의 만남

'십이지'에 대하여

네버엔딩 스토리


 ‘살아 있는’ 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통일신라실>에는 두 발로 선 말이 있다. 서커스 장면이 아니다. 전쟁에 나서는 용사처럼 무복을 입고 긴 칼을 높이 치켜든 당당한 자세의 말 석조 부조상이다. 

실재의 재현이 아닌 옛사람들의 상상력이 ‘다듬어낸’ 유물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무사가 되어 누구를 지켰을까, 인신 수면(人身獸面)은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상상이 낳은 또 다른 생명체는 어떤 모습일까. 

감각적으로 디자인된 갑옷과 신체의 곡선미를 유려하게 표현한 조각 기술에 감탄하다 영화 속 가상 세계를 기억해냈다. 오래전 개봉되어 인기를 얻은 ‘박물관은 살아있다’, 어둠이 찾아오자 동물 박제나 모형 인물상 같은 모든 전시품이 생명을 얻는다. 

半人半獸의 유물 앞에서 영화 속 환상에 빠져든다. 우리처럼 말소리를 내려나? 네 발로 기어갈까 아니면 서서 걸어가려나...... 답이 요원한 스무고개처럼 의문만 이어진다.     


십이지에서 십이신장으로

말의 獸首人身 부조상은 우리 문화에서 각자의 이름과 함께 나란히 기억에 새겨있는 띠 동물,  十二支와 밀접하다. 십이지는 시간적으로는 삼천 년 전까지 거슬러 오를 만큼 유래가 오래되고, 공간적으로는 이집트, 동·서아시아, 베트남, 인도,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다. 변천을 대략적으로 살펴본다.

예부터 땅을 지키는 신으로 보편적인 개념이었던 십이지는 문화권에 따라 차이를 보이나 주로 동물들로 형상화된다. 이후 불교 세계 속 四方의 잡귀나 악신을 몰아내는 신장에 습합 되며 십이신장(十二神將)이 된다. 신장은 불교가 전파되면서 지역의 토착신을 수용하여 생긴 개념인 神衆의 한 형태이다. 신중은 제석천이나 범천 등과 같은 고대 인도 신화의 신부터 용과 호랑이는 물론 도깨비까지 아울러 다른 종교에 비해 개방적이고 포용력인 큰 불교의 특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신중 가운데 사천왕은 힌두교의 四方神이 중국에 전래되며 무장한 장군의 모습으로 자리 잡는다 우리의 십이지신상은 중국 당의 영향으로 초기에는 평복이나 바로 벗어나 사천왕의 복장을 차용한 것을 특징으로 한다. 

김유신 묘 십이지상 중 말

우리나라에서는 십이지 신앙 초기, 중생을 질병에서 구제한다는 약사신앙과 연관되어 호국적 성격을 띠었으나 도교의 영향 이후에는 각 동물이 맡고 있는 시간과 방향서 오는 邪氣를 막는 수호신 개념으로 변한다. 무덤 속 작은 인형(토우, 도용)에서 무덤 둘레돌의 부조나 무덤 밖 입체 조각상으로 독립되어 크기와 놓이는 위치, 재료와 제작 기법이 달라지는 가운데 동물상이 반인반수의 형태로 변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일신라시대 왕과 귀족의 능묘에 조각 장식된 십이지신 상의 경우, 양식의 독자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다. 


십이지는 방대한 시·공간을 아우르며 十干과 결합하여 六十甲子가 되어 紀年에 쓰이고, 도교와 불교의 영향 속에 민간신앙의 형태로 영속한다. 

옛사람들은 자연을 정복하며 문명을 일으키면서 인간에게 위협적인 동물들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숭배해왔다. 인간보다 빠르고 힘센 능력을 탐내는 한편 동물을 부려내는 지혜를 과시하고도 싶었을 것이다. 십이지신상은 태곳적부터 함께한 동물에 대한 유대감과 동시에 신체 능력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옛사람들의 욕망을 반영한다고 생각이 든다.     


열두 동물의 위대한 경주

모두에게 익숙한 십이지 동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야기다. 

도교의 최고신인 옥황상제가 등장하여 동물들을 연회에 초대하고 도착한 순서대로 각 연(年)들의 이름을 붙일 것이라 알린다. 그 후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12 동물이 옥신각신 실랑이하며 경주에 참여하고 우여곡절 끝에 차례를 정한다. 

한·중·일의 동물 구성은 동일하고 베트남에서는 토끼 대신 고양이, 인도에서는 호랑이 대신 사자, 닭 대신에 공작새라고 한다.      


오래된 미래 이야기

십이지의 순서는 동물의 외형과 관련된다는 해석도 있다. 발가락 개수가 짝수인 소(4), 토끼(4), 뱀(0), 양(4), 닭(4), 돼지(4)와 홀수인 호랑이(5), 용(5), 말(7), 원숭이(5), 개(5)가 교차 배열되는데 쥐의 경우는 앞발 발가락 수는 홀수, 뒷발은 짝수로 조화롭고 특수한 형태이기에 첫자리에 올랐다는 것이다. 

십이지는 음양오행의 개념과 결합되어 현대의 우리에게도 친숙한 내용인 각 띠끼리의 상생 또는 상극 관계를 구성한다. 재미있는 속설로 치부하다가도 한 번씩은 반신반의하게 된다. 우리네 삶의 갈등과 사회적 모순이 동물 세계의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 관계와 유비될 때이다.  

옛사람들이 후대에게 전하고 싶은 깨달음과 지혜를 한데 모아 눙치듯 전하는 이야기가 십이지에 담겨있는지 모른다. 십이지의 상생과 상극은 미리 경계하고 조심하여 다투지 말고 서로 도와가며 잘 살아가야지 하는 당부의 말이었으리라.      


다시 ‘살아있는 박물관’의 촬영장을 그려본다. 

열두 동물을 한자리에 모으니 자신만의 독특한 표정과 음색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한다. 시끌벅적한 가운데  열두 동물 모두가 같은 내용을 말한다는 걸 깨닫는다. 21세기 들어 새롭게 조명받는 문학, 영화, 게임 등 대표적 대중문화에서의 판타지 장르, 그 세계의 주인공임을 너나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힘주어 덧붙인다. 그들이 있었기에 현대의 우리가 꿈꾸는 상상의 세상이 넓어지고 깊어져 간다는 것이다. 

 ‘유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 신화의 세계는 거짓이 아닌 실제의 것으로 탈바꿈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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