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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나 Feb 25. 2022

17. 우리 옛것과의 만남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2014년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산수(山水)에서 영원(永遠)으로 


옛사람들이 꿈꾸어 온 세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우리 전통문화의 사상적 근간인 유·불·도교에 의하면 천지만물이 조화를 이룬 현실의 대안적 세계이거나 현실을 초월한 내세적이며 환상적인 공간이라고 한다. 

유교적 관점에서는 대도(大道)가 행해져 공의(公義)가 구현된 대동(大同) 세계, 불교에서는 깨달은 자만이 다다를 수 있는 극락정토, 도교에서는 신선들이 산다는 곤륜산이나 무릉도원이 해당된다. 이러한 비가시적인 이상 세계를 구체적 이미지로 ‘번안’해낸 예술 영역이 산수화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산수화는 당대의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기호이기도 하다. 17세기 들어서 풍경화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 서구에 비해 이른 시기인 4세기부터 독립된 장르로 발전해온 동아시아의 산수화, 동서양에 걸쳐 광범위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이상향에서 산수를 중요시한 동양적 사유의 특성을 반영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기획전 <산수화이상향을 꿈꾸다(2014.7.29.~9.28)>는 이상향이란 개념을 종교적 신앙세계보다는 인간과 사회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방점을 두고 ‘도해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전통회화 세계를 시대별, 장르별, 작가별로 구분 짓는데서 나아가 시대 담론을 표상하는 회화의 역할을 살펴보는 기회를 제공한다.

전시실 앞에는 18세기 단원 김홍도와 함께 이름을 알린 궁중화원 이인문(1745~1824)의 <강산무진도>가 파노라마로 펼쳐져 있다. 8m가 넘는 가로길이의 풍경이 뒷면 조명인 스크린에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이동하여 높이 올라 바람을 가르며 비행하는 새가 되어 장대한 광경을 조망하는 실재감을 선사한다. 얼핏 파도가 되어 부딪치거나 용솟음치는 바닷물처럼 보이게 산세를 표현하여 산수화에 내재된 비가시적인 힘, 기운생동이 넘친다. 역작을 보기 전 마음의 준비를 위한 쉼터 인양 시선의 여정이 시작되는 왼쪽이 여백인 다른 산수화에서 볼 수 없는 구성도 인상적이다. 이러한 대규모는 북송시대 거비파의 ‘산수는 대물이다’는 이론의 반영이며, 조선 후기 정치·경제적 부흥을 이룬 군주의 위세와 관련 깊다. <강산무진도>는 왕을 위해 제작된 궁중의 소장품으로 자연 풍광을 사생한 것이 아니라 제왕의 힘으로 우주적 질서가 유지되는 유교국가 조선의 이상향을 시각적으로 구현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김홍도(1745~1806)의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와 바로 대면한다. 자연 속의 삶을 고위관직과도 바꾸지 않는다는 문인들의 이상향을 표현한 대작이다. 화면 왼쪽 부분은 산수화처럼, 오른쪽은 풍속화처럼 보이는 구성으로 중국 송 대 시인의 시 구절을 제목으로, 후한 시대 유학자의 ‘樂志論’을 주제로 하여, 단원이 우리네 산하와 가옥 같은 전형적인 조선스타일로 ‘번역’ 한 것이라 한다. 조선 후기 들어 국가 정치 이념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 현실적이고 개별화되는 옛사람들의 욕망을 드러낸다고 해석 가능하다.      

동아시아에서 북송 이후 천년 이상 회화사의 주제였던 ‘소상팔경’,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 전래되어 조선시대까지 여러 양식으로 그려졌다. 절경으로 이름 난 실제의 풍경이 이상향이 된 경우로 여덟 경승지 중에는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기러기’란 뜻의 ‘평사낙안平沙落雁’처럼 쉽게 이미지가 그려지는 경우와 ‘저녁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가운데 들리는 종소리’란 뜻의 ‘연사만종烟寺晩鐘’처럼 후각과 청각까지 동원되어 구현하기 어려운 주제들도 있다. 여러 <소상팔경도>을 감상하면서 화제를 보지 않고 그림과 여덟 주제를 연결하거나 시대마다 나라마다 그리고 작가마다 다르게 풀어내고 구체화한 방식을 비교하며 동아시아의 서로 다른 미감을 느낄 수 있다. 


중국 명 대, 시·서·화에 모두 능한 문인 문진명(1470~1559)의 <소상팔경도>에서는 비교적 간략한 선묘로 서정성을 표현한 그림과 함께 담담하면서 강건한 서체에도 주목하게 된다. 명대의 유명 서화가이자 이론가인 동기창(1555~1636)의 <연오팔경도>는 북경과 그의 고향 경승지를 담았는데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비단을 바탕으로 채색하여 마치 비행기의 창을 통해 경치를 감상하는 듯 이채로웠다. 우리식 변형인 겸재 정선(1676~1759) <장동팔경도>에서는 권문세가들의 최고 주거지로 알려진, 인왕산과 백악산 일대를 일컫는 장동이 표현되어 있다. 귀에 익은 지명과 작은 화면이라 소략하나 운치 있고 익숙한 풍경이 반갑기만 했다. 여덟 장면을 모아 옛 장동의 모습을 구성하면 <인왕제색도>에 필적하는 장관이 연출되고 강한 동세가 되살아날 것 같다. 무로마치 시대 소야미(?~1525)의 <소상팔경도>에서는 윤곽선이 없이 형태를 그려내는 일본의 전통 화법(몰골법)이 먼저 눈에 띈다. 여백이 많아 부드럽고 아스라하며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사시팔경도>처럼 계절감을 중시하는 우리와는 달리 병풍의 폭에 따라 그림이 나눠지지 않고 여섯 폭이 한 장면을 이루는 일본적 특성을 드러낸다. 우리의 관동팔경처럼 현재까지도 명승지를 지칭할 때 쓰이는 ‘~ 팔경’의 오래된 유래를 많은 작품에서 확인한다.    

 

유교의 성리학이 전성을 이룬 조선 시대에는 주자학의 시원을 다룬 <무이구곡도>가 많이 그려진다. 주자가 강학을 펼친 무이산은 주자의 체취가 남겨진 곳으로 여겨져 동아시아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녀왔는데 중국보다 조선에서 더 성행한 화제였다고 한다. 아홉 굽이 계곡에서 가운데인 오곡의 무이산 정사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적이고 가로로 긴 구도가 일반적인데 강세황(1713~1791)의 <무이구곡도>는 여러 암산, 계곡, 지역의 이름과 특징을 자세히 써넣어 당대의 여행 안내서로 손색없을 것 같았다. 조선 후기 어진화사로 유명한 채용신(1850~1941)의 <무이구곡도>는 빽빽하게 경물이 가득 찬 구성과 한층 다채로워진 색상으로 이전과는 달라진 무이구곡의 해석을 보여준다. 셀 수 없이 많은 붉은 선을 둘러친 흰 바탕 네모에 지명과 건물명 등을 적어 넣어 흡사 도시의 네온사인 간판들이 화면 가득 찬 듯 보인다. 뗏목을 타고 드높은 절벽과 거친 물줄기를 바라본다고 여기니 거대한 자연 풍광에 감탄하며 당시 사람들이 지닌 학문적 열망을 떠올릴 것 같다. 소상팔경이 확장되어 적용되듯 무이구곡 역시 학문적 완성을 이루어 자의식이 커진 시기 들어서는 한국식 변용을 거친다. 퇴계와 이익의 사상이 펼쳐진 곳을 담은 <도산도>와 <고산구곡도>가 실례實例이다. 

    

도연명(365~427)의 시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을 그려낸 <도원도>와 귀향과 전원생활을 노래한 <귀거래사>를 구현한 <귀거래도>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 배를 탄 어부가 도화원 입구 동굴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조선의 마지막 화원인 안중식(1861~1919)의 <도원문진도>와 <도원행주도>, 세로로 긴 구도로 물길이 이루는 유려한 곡선의 조형미가 뛰어나고 명도를 달리 한 녹색계통의 채색으로 당대 청말 사왕 화풍의 특징인 청록산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실과 환상의 세계를 매개하는 모티브 중 하나인 동굴은 동·서양 공통이라고 생각하다 문득 우리의 <몽유도원도>를 떠올렸다. 안평대군의 꿈속 세상은 험준한 암산이 둘러싼 복사꽃 가득한 마을이다. <몽유도원도>가 전시되었더라면 일본, 중국의 도원도와 비교·감상하며 조선 초기 우리만의 독자적인 사유방식과 표현기법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텐데, 아쉽기만 하다. 도원도와 함께 꽃향기가 가득한 그림에는 조선 후기 대표화가 전기(1825~1854)의 <매화초옥도>와 이한철(1812~1893)의 <매화서옥도> 있다. 한밤중에도 환하게 빛나는 하얀 매화꽃이 지척이라면 그림 속 인물처럼 책장을 넘기지는 못했으리라. 중인 출신 화원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문인들의 ‘은거’와 ‘안빈낙도’의 개념을 빌어 표현하였다는데, 화법 상 전통 산수화의 삼원법에서 벗어나 평원에 이전보다는 크기가 커진 인물의 묘사도 눈에 들어온다. 

 

안중식,<도원행주도 >,국립중앙박물관

   

이상향은 별천지, 선계, 선경, 동천, 이상경, 파라다이스, 낙원, 유토피아 등과 유사한 개념이다. 많은 용어는 복잡해지는 생활과 다양해지는 욕망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며 전시장을 나설 때 청전 이상범(1897~1972)의 <산수>을 발견한다. 이전 시대보다 훨씬 작아진 작품 크기의 실경산수로 나지막한 산야에 소를 몰고 가는 농부를 묘사하여 전형적인 고향의 심상을 담아낸다. 이와 함께 나란히 전시된 장욱진 화백(1917~1990) <산수>와 <풍경> 아기자기하고 단순한 구성과 밝은 색채로 동화책의 삽화처럼 보인다. 동양화와 서양화 영역의 20세기 버전 산수화는 지필묵에서 캔버스와 유화물감으로 매체를 달리해도 자연이 전하는 물소리, 새소리 그리고 편안하고 아늑한 정서는 변함이 없었다. 도시 생활로 시대와 장소는 급변하고 현대인의 이상향이 자연과 멀어진다 해도 산수화가 표상하는 심리적 안식처는 영원하리라 싶어진다.

     

<산수화, 이상향을 꿈꾸다> 전은 동아시아 사람들의 삶과 사유 속에서 산수가 어떻게 이상향을 구현해내고 있는지를 조망케 한다. 그리고 묻는다. 현대의 이상향은 어디에, 어떻게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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